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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처음부터 잘 키우자 Feb 03. 2023

그냥 등록해 버렸다.

70대까지 40대의 몸으로 살길 바라는 아줌마의 필라테스 이야기 1

넉 달 동안의 글쓰기가 마무리되었다. 내게 남은 건 원고와 울퉁불퉁한 살. 원고는 출판사 전문 선생님들을 통해 탈피를 거듭하며 두 권의 책으로 세상에 나오게 될 것이니 크게 걱정이 안 된다. 아니 그보다는 원고에 대한 수정이나 추가 요청이 없어 원고가 아주 나쁘지는 않구나라고 생각하며 애써 걱정을 외면하고 있다. 그런데 나의 살은 다르다. 온전히 내가 혼자 탈피를 해야 하는 상황이다. 다이어트는 평생의 숙제라고 하지만 쪘다 뺐다 하는 이 반복의 과정이 참 귀찮고 싫다.


30대까지는 열심히 움직이고 조금 굶으면 살이 더러 빠지기도 했다. 옷으로 감춰지기도 했다. 그런데 40대 후반이 되면서 더 이상 이런 기적은 나에게 일어나지 않았다. 지난봄에 입었던 원피스의 지퍼가 안 잠긴다. 배에 아무리 힘을 줘도 배가 들어가지 않는다. 몸 전체가 위에서 아래로 흘러내리는 느낌이다. 노화의 과정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40대 초반까지만 해도 나는 자신 있게 말했다. 자연스럽게 늙어가는 것이 가장 품위 있다고. 세월이 남긴 고운 주름은 예쁠 거라고. 그리고 나이가 들면서 근육이 서서히 지방이 되는 과정도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의 생각보다 노화가 너무 빨리 진행되고 있어서 자연스러움 따위를 논하고 있을 때가 아님을, 그런 건 사기에 가까운 사치이고 착각임을 직감했다. 실망과 우울함이 겹겹이 쌓인다.

 

실망과 우울이 살을 태워 없애주지는 않을 듯 하니 이제는 해결을 위한 방법을 모색해야 할 때이다. 내가 선택한 첫 번째 방법은 아주 멋지게 살을 빼려 스스로 노력하는 것.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훌라후프도 돌려보고 줄넘기도 해 보고 드라마를 보며 자전거도 타봤다. 결론은 해결 어려움! 노력에 배신을 당했다. 어쩜 내가 한 몸짓이 노력이 아니었을지도…


그렇다면 지체 없이 두 번째 방법으로 빠른 태세 전환을 해야 한다. 불가능을 기대하고 바라며 스트레스를 받기보다는 조금 더 쉬운 포기와 합리화를 하는 것이 무엇보다 나의 정신건강에 이로우니까. 특히 죽고 사는 일도 아닌 것으로 속상해하며 시간 낭비를 하는 것이 싫으니까. 그래서 나는 생각을 바꾸었다. 몸무게를 정해 놓고 살을 빼는 걸 하지 않기로 했다. 사실 살이 찌면서 허리도 덜 아프고 얼굴에 잔주름도 조금 옅어져 쬐끔은 아주 쬐금은 좋은 것도 있었다. 그래서 내 키에서 100을 뺀 숫자를 몸무게가 넘어서는 일만 없도록 하자고 다짐했다. 지금 몸만 유지해도 원피스에 힐을 신은 할머니의 몸으로는 완전 멋질 거라고. 그러나 지난 넉 달 동안의 내 몸무게는 그 마지노선의 숫자를 넘기고야 말았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할 때 술래의 눈을 피해 조금씩 내달리는 아이처럼. 눈치를 보며 조금씩 야금야금. 진짜로 얄밉다. 결론은 해결 불가! 세상의 일은 생각하기 나름이라 생각을 바꾸면 해결되는 것도 참 많은데 이 놈의 살은 생각을 바꿔 해결될 일이 아닌 강적임에 틀림없다.


이제는 하나 남은 선택지를 선택할 수 밖에. 마지막 세 번째 방법. 전문가에게 도움 청하기. 그래서 나는 핸드폰을 들고 엄지 손가락의 빠른 움직임의 도움을 받아 단번에 가장 가까운 곳을 찾아 내었다. 그리고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번호를 눌렀다.


"거기 필라테스하는 곳이죠?"

"네.^^"

"등록하고 싶어서 전화했어요."

"네. 먼저 오셔서 상담받으시고 등록하시면 되세요."

"아니요. 그냥 등록해 주세요."

"아~ 네... 언제가 좋으세요?"

"가장 빠른 날이요."


남편은 후기글도 보고 선생님도 만나보고 시설도 보고 꼼꼼히 따져보고 운동할 곳을 결정하라고 했다. 그러나 운동은 해 봐야 아는 것이지 말로 듣고 생전 처음 보는 운동기구 몇 개 살펴본다고 해서 잘 하는 곳인지 아닌지 알 수 있는 것이 아니지 않나?


그냥 등록했다.


그냥 등록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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