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처음부터 잘 키우자 Aug 07. 2023

살려는 드릴게.

70대까지 40대의 몸으로 살길 바라는 아줌마의 필라테스 이야기 10

"아랫배를 납작하게. 상체는 컬업. 팔은 앞으로 나란히. 다리를 곱게 펴서 들어요."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동작을 하는데 여기저기서 곡소리가 난다. 드디어 나는 설렘과 기대와 긴장 속에서 선생님의 온전한 관심을 받았던 내 생애 최초의 필라테스 개인 수업을 마치고 그룹 수업에 들어왔다. 예상은 했지만 필라테스의 강도가 처음부터 상상 이상이다. 그룹 수업이다 보니 나 같은 초보에게 프로그램을 맞춰 줄 수 없을 테니 내가 프로그램에 몸을 맞춰야 하는 상황이었다. 숨쉬기는 곤란하고 온몸은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이 떨림이 바로 말로만 듣던 사시나무의 떨림이던가. 이미 내 몸이 내 몸이 아닌 듯하다. 몸은 포기하고 영혼만이라도 잘 붙들고 동작이 빨리 끝나기만을 기다리는데 왜 꼭 선생님은 동작을 시켜놓은 채로 설명을 하는지. 온몸의 근육이 불타는 것 같고 숨이 멎을 것 같다. 그렇다고 포기하기에는 너무 자존심이 상하여 낑낑대며 버텨본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선생님이 외치는 숫자 10을 듣고 몸을 편안히 매트에 눕혔다.


"선생님. 죽을 것 같아요."


나도 모르게 선생님께 진심을 전달해 버리고 말았다. 그 순간 그 특유의 상냥하고 나긋나긋하며 다정한 목소리로 '죽지는 않아요.'라는 답변을 들었다. 나는 그 순간 짤로만 보았던 한 장면이 머리에 번뜩이는 것을 느꼈다. 영화 신세계에서 박성웅이 연기했던 이중구의 유명한 대사.


"살려는 드릴게."


순간 모두의 헉헉 거림이 사라지고 피식피식 웃음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곡소리가 희미한 웃음소리로 바뀌었다. 아마도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한 모양이다. 순간 옆에 있던 처음 보는 회원들과 동지애를 느끼며 온몸이 불타고 터질 것 같은 이 순간을 잘 버티고 버텨 마침내 선생님과 같은 날씬하고 예쁜 몸을 가질 수 있을 거라는 전투적인 마음을 주고받았다.


같은 마음으로 느끼는 공감은 참 신기하다. 순식간에 사람들을 한 덩이로 만들어 버려 길고 긴 설명을 하지 않아도 텔레파시처럼 통하게 하니 말이다. 아마도 우린 서로에 대한 정보도 기대도 기억도 없이 순수하게 같이 운동을 하는 사람일 뿐이니 공감도 쉬운가 보다. 사람들과의 관계도 이렇게 단순했으면 참 좋겠다. 사람이 좋아서 상담을 시작했는데 상담을 하면 할수록 사람들이 싫어질 때가 있다. 싫어짐을 조금 더 세세하게 들여다보면 공감해 주고 싶으나 내 공감이 부족해서 오는 스스로의 좌절감일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내 공감 뒤에는 바꿔주고 싶다는 욕심과 오만과 성급함이 따라왔었나 보다. 가끔 선생님의 나긋한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거칠게 커질 때가 있다. 그 때가 바로 힘듦에 대한 공감과 더불어 필라테스를 제대로 시켜주고 싶다는 욕심이 꿈틀댈 때인 듯 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시간 동안 선생님은 우리의 마음에 대해 분명 공감을 하고 있을 거라는 추측을 해 본다. 선생님도 처음부터 잘한 것이 절대로 아닐테고, 우리 보다 더 먼저 이 힘듦을 겪어 보았을 테니까. 죽지는 않는다는 선생님의 말과 살려는 드릴게라는 나와 옆 동지들의 해석에 기대어 이 고통을 잘 견뎌 보려 한다. 나는 다시 한번 모범생에 빙의하여 선생님을 믿어 보려 한다. 등록도 다 해 버렸는데 선생님을 안 믿으면 어쩔 텐가.




#필라테스 #운동 #다이어트 #살려는드릴게  






이전 09화 필라테스가 사람 이름이었어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