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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처음부터 잘 키우자 Aug 03. 2023

필라테스가 사람 이름이었어요?

70대까지 40대의 몸으로 살길 바라는 아줌마의 필라테스 이야기 9

첫 번째 필라테스 수업을 마치고 며칠 동안 온몸이 뭉치고 쑤셨다. 원체 운동 그게 뭐니라는 생각으로 살다 보니 약간의 운동에도 몸이 격하게 반응을 한다. 그런 온전치 못한 몸으로 두 번째 수업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러나 마음만큼은 왜 이리 즐거운지. 근육에서 느껴지는 이 아픔들이 날씬한 몸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일까...


'띵~띵~' 오늘도 어김없이 쨍한 종소리가 울린다. 그리고 선생님의 반가운 인사가 들린다. 난 지금부터 '경아님'이 될 시간이다. 신난다. 아~ 날씬한 몸에 대한 기대감도 즐거움의 원천이지만 아마도 불리는 이름도 한몫을 하고 있는 것이 분명한 것 같다. 지난번 바디 체크에 이어 오늘은 기본 동작도 더 많이 해 보고 몇 가지 기구도 써 보기로 했다. 텔레비전에서만 보던 그 기구들을 직접 보니 너~무 신기했다. 의자처럼 생긴 아이도 있고, 침대같이 생긴 아이도 있고, 초등학교 때 그렇게 날 괴롭혔던 뜀틀같이 생긴 아이도 있고, 늑목처럼 생긴 아이도 있고 하여간 되게 신기하고 왠지 엄청 멋져 보이는 아이들이었다.


선생님의 설명이 이어지고 동작 시범도 보았다. 드디어 내가 직접 해 볼 시간이다. 선생님의 지도에 맞추어 동작을 하는데 많이 이상하다. 이 동작이 아까 선생님이 보여준 동작과 같은가라는 셀프 검증을 결코 통과하지 못하고 있었다. 몸이 자꾸만 흔들린다. 헉! 이렇게나 균형감각이 없다니. 그리고 잠시만 딴생각을 하면 자세가 바로 무너져 넘어질 듯 기우뚱했다. 만약 선생님이 남자였다면 로맨스 드라마에서 자주 나오는 그런 장면을 연출할 뻔. 선생님이 여자라 참 다행이네. 민망한 마음에 선생님께 조금만 집중을 안 하면 바로 동작이 틀리네요라고 멋쩍게 웃어 보였다. 그러자 선생님은 처음에는 다 그렇다는 격려와 함께 조셉 필라테스가 처음 필라테스를 만들 때라고 말하며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하였다. 순간 들숨과 날숨이 조화롭고 혀가 잇몸과 입천장에 부딪히는 꽤나 복잡한 과정을 통해 나의 입에서 한 마디가 툭 튀어나왔다.


"필라테스가 사람 이름이었어요?"


땡그란 토끼 눈으로 이런 근본 없는 질문을 하는 나로 인해 조금 당황한 선생님은 이내 평정을 되찾으며 그 친절하고 나긋하고 상냥한 특유의 표정으로 그렇다고 말해 주었다. 어찌어찌 두 번째 수업을 마치고 뭉치고 결리고 너덜너덜해진 나의 몸을 이끌고 집으로 걸어가면서 계속 생각했다. 자신의 이름으로 불리는 운동을 만들다니, 한 장르가 되다니, 멋지다, 너무 대단하다라고. 지구별 소풍을 마친 사람이 지구별에 머문 시간보다 더 오랜 시간 지구별에 남길 수 있는 유일한 것, 이름일 것이다. 필라테스님은 그 멋진 걸 해 내셨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왠지 더 열심히 필라테스를 해 봐야겠다는 야무진 결심을 하게 된다.


이름이란 녀석은 참 특이해서 내 것이지만 내가 부를 일이 없다. 다른 이로부터 불리는데 누가 어떻게 불러주느냐에 따라 그 느낌이 참 많이 달라진다. 내가 필라테스 센터에서 '경아님'이라고 불려 기분이 좋은 건 성을 빼고 이름이 불리는 것에 다정함이 묻어 있고, 이름 뒤에 '님'자가 붙어 있어 귀하게 여겨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이름을 부를 때 다정함과 귀하게 여김은 필요충분조건이다. 왜냐하면 내가 이름을 부를 수 있는 대상은 나 보다 어린 사람이기 때문이다.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해, 좋은 어른인 척 좋은 사람인척 하기 위함이 아니라 어린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서다. 그리고  이제 막 자라고 있는 어린 사람의 자존감을 망가뜨리지 않기 위해서다.


상담실에서 만나는 아이들 중에는 자신의 이름을 싫어하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상담실이다 보니 분명 잘 지내는 아이가 올 일은 없고, 대부분 산만한 아이, 말 안 듣는 아이, 공격적인 아이라고 일명 '문제아'라고 낙인이 찍힌 아이들이 온다. 보통 이 아이들의 이름은 다정하게 불리기보다는 강한 톤으로 딱 이름만 불린다. 반드시 앞에 성이 붙은 채. 그래서 아이들은 자기 이름이 싫다고 한다. 자기조차 싫어하는 이름으로 의미 있고 귀한일을 하며 지구별에 오랫동안 남아 기억되는 사람이 되기는 참으로 어렵지 않을까! 혹 말썽을 부리더라도 행동만 나쁘다고 말하고 이름은 다정하게 불러주는 것이 어떨는지. 다정하게 불러주다 보면 정말로 다정함이 마음에 스며들고 행동도 바뀌게 되니까. 그게 우리가 이름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신중에 신중을 기해 짓는 이유이니까.




#필라테스 #다이어트 #이름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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