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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처음부터 잘 키우자 Aug 08. 2023

배 고플 땐 드라마를 봐요.

70대까지 40대의 몸으로 살길 바라는 아줌마의 필라테스 이야기 12

저녁을 샐러드로 간단히 먹었다. 다이어트를 하는 주제에 감히 많이 먹을 수는 없지. 그러나 별이 초롱초롱 달이 휘영청 밝은 밤이 되면 이내 배고픔이 나를 찾아온다. 드라마 악귀에 나오는 태자귀보다 더 하다. 문을 열어주지 않아도 성큼 내게 오니 말이다. 그리고 내 머릿속을 맛난 것들로 꽉 채워 버린다. 이 놈의 배고픔 따위는 지구에서 완전히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다. 아무리 얼르고 달래고 살벌하게 화를 내며 협박을 해도 내 옆에 끈덕지게 찰싹 달라붙어 자꾸만 힘들게 한다. 그리고 자꾸만 속삭인다. 핸드폰을 들라고, 배달앱을 열라고, 시키지 않아도 되니까 메뉴를 보기만 하라고. 나는 요런 요망한 배고픔에게 지지 않으려 핸드폰 말고 텔레비전 리모컨을 든다. 그리고 텔레비전을 켜고 리모컨을 꾹 꾹 눌러가며 드라마를 찾는다.


요즘은 아주 다양한 드라마를 볼 수 있어 참으로 좋다. 지금 하고 있는 본방을 볼지, 가장 빠른 재방을 볼지, 새로 시작한 것을 볼지, 예전에 봤던 걸 또 볼지, 로코를 볼지 공포를 볼지. 선택지가 너무 많아 리모컨을 잡은 손가락이 어디를 향해야 할지 어려울 수도 있지만 난 결코 어렵지 않다. 내게 필요한, 내가 선택할 드라마는 장르 상관없음, 본방 재방 상관없음이니까. 다만 예쁘고 날씬한 여배우만 나온다면 무조건 콜이다. 내게 지금 필요한 건 재미가 아니라 배고픔을 잊기 위한 나의 불타는 의지이니까.


드라마에 나오는 여배우들은 얼마나 날씬한지 원피스를 입어도 울룩불룩 군살 하나 없다. 심지어 겨울에 입는 두꺼운 스웨터도 바지 안에 넣어 입는다. 진짜 대박은 겨울 코트다. 코트를 입어도 허리가 한 줌이다. 하루 한 줌 견과류도 아니고 뭐람. 물론 난 이 정도로 날씬해지기를 바라는 것은 결코 아니다. 사람이 욕심이 과하면 탈이 나니까. 난 그저 내가 작년에 입었던 원피스를 예쁘게 입고 싶은 소박하디 소박한 바람이 있을 뿐이다.


이런 소박한 바람을 소중히 가슴에 품고 드라마를 켠다. 그리고 드라마에 나오는 여배우들의 날씬하고 예쁜 몸을 부러움에 가득 찬 눈으로 바라본다. 그리고 텔레비전 맞은편에 있는 자전거에 올라앉는다. 나는 안다. 저 여배우들의 날씬하고 예쁜 몸은 단순히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전도 아니고 운이 좋아 거저 얻은 불로소득도 아니라는 것을. 필시 죽지 않을 만큼 먹고 죽을 만큼 운동한, 끊임없이 노력한 결과라는 것을. 대단한 의지의 결과라는 것을. 그래서 나도 나의 의지를 단단히 굳혀 보려 한다. 강렬한 눈빛으로 드라마 속 예쁜 여배우들을 보며 몸으로 자전거를 타고 있으면 어느새 나도 여배우가 되어가는 기분이 든다. 단순히 예쁘고 날씬한 사람 말고 자신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말이다. 그리고 마침내 솟구치는 식욕이 힘을 잃어버린다. 내가 지금 야식을 먹지 않고 자전거를 타면 하루라도 빨리 저렇게 아니 비스므리하게 되겠지라고 생각하며.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하루하루 생활하는 것. 이게 학창 시절 귀에 못이 박히게 지겹도록 들은 꿈을 이루어가는 과정이다. 40 넘어 이렇게 꿈을 이루기 위해 목표를 세우고 실천하려 애를 쓰다니. 아직 나라는 사람은 퍽 괜찮은 모양이다.


꿈을 이루기 위해 지금 나는 꿈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야겠다.


"70대 할머니가 되어도 힐 신고 원피스 입고 싶어요. 지난봄에 입었던 원피스 지퍼도 잠그고 싶어요."




#필라테스 #다이어트 #운동 #꿈 #원피스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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