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쓰고 햇살이가 그리다 7
illustrator by 햇살
엄마가 저녁을 준비하는 동안 햇살이에게 요술이를 부탁했는데 그만 햇살이가 요술이를 자신의 몸에 묶어버렸네요. 족히 1시간이 넘는 그 시간 동안 햇살이가 요술이를 돌보는 건 버거운 일이었나 봅니다. 상황이 귀엽기는 한데 햇살이의 노고가 그대로 전달되어 엄마가 햇살이에게 살짝 미안해지는 순간입니다.
아이들과 함께 있는 시간에 갑자기 부모가 무언가 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이럴 경우 대부분의 부모는 첫 아이에게 동생을 봐 달라고 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를 당연시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지요. 아이들을 키울 때 부모가 꼭 명심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첫 아이 양육은 부모가’, ‘동생 양육도 부모가’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첫 아이는 동생을 돌봐야 할 의무도 책임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부모는 첫 아이에게 먼저 태어났고 나이가 조금 더 많다는 이유로 동생을 돌봐야 한다는 의무를 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부모의 의무와 책임을 첫 아이에게 전가하게 되는 것으로 첫 아이는 점 점 더 동생이 부담스럽고 귀찮아질 수 있으니 주의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첫 아이에게 동생을 돌보게 하면 안 되는 중요한 또 다른 이유는 바로 ‘안전’ 때문입니다.
한 어머님이 아이가 다쳐서 너무 속상하다며 하소연을 한 적이 있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첫 아이에게 4살 동생을 맡겨놓고 잠시 은행에 다녀왔는데 동생이 의자에서 떨어져 다쳤다는 것입니다. 어머님은 첫 아이가 동생을 돌보지 않고 혼자 텔레비전을 보고 놀았다며 첫 아이에 대한 비난을 쏟아내었습니다. 이 상황에서 잘못을 한 건 첫 아이가 아니라 어머님입니다. 초등학교 1학년 아이가 4살 동생을 돌보는 건 버거운 일입니다. 이렇게 두 아이만 있다가 동생이 다치면 동생은 다쳐서 아프고, 첫 아이는 자신 때문에 동생이 다쳤다는 것에 놀라고 엄마에게 야단맞을까 봐 눈치를 보고, 이를 보고 있는 어머님은 첫 아이에게 동생을 맡긴 자신을 자책하게 됩니다. 모두에게 좋지 않은 기억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절대로 첫 아이에게 동생을 돌보지 못하게 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첫 아이가 감당할 수 있는 정도에서, 의무를 주는 것이 아니라 부탁을 하면 된답니다. 햇살이가 요술이를 태권도 띠로 자신의 몸과 묶은 사건 이후로 엄마는 저녁을 준비하는 시간에 요술이를 볼텐트에서 놀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햇살이에게는
“엄마가 저녁 준비하는 동안 요술이가 볼텐트에서 탈출하는지만 봐줘.
그리고 요술이가 탈출하려고 하면 꼭 엄마에게 알려줘.”
라고 부탁을 하였습니다. 그다음부터 햇살이는 여유롭게 자신의 시간을 보내었고 요술이도 볼텐트에서 최소한의 안전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요술이는 엄마를 찾으며 안아달라고 울고 보채기 일쑤고 그때마다 햇살이는 “엄마, 요술이 울어.”라고 외치고 엄마는 저녁 준비를 하다 말고 요술이를 안아주거나 아예 요술이를 업고 저녁을 준비하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요술이가 조금 더 자라 잠깐씩 혼자 놀 수 있을 때까지 엄마가 힘든 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요술이도 언제까지나 어린 아기는 아니지요. 시간이 지나는 만큼 정확히 요술이는 자랐고 그만큼 엄마도 조금씩 편해졌습니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변화는 햇살이에게서 나타났습니다. 햇살이는 요술이를 돌봐야 하는 의무가 없어졌고, 요술이에게 문제가 생길 것 같으면 바로 엄마에게 알려주기만 하면 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요술이가 옆에 있어도 불편해하거나 귀찮아하는 것이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서서히 요술이를 대하는 햇살이의 태도도 부드러워지고 편해졌습니다.
우리가 가족끼리 그 정도는 해도 된다고 당연히 요구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절대로 당연하지 않은 것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당연하다는 생각은 서운함을 데리고 와 서로의 마음에 생채기를 내기도 합니다. 당연하다고 생각하기보다는 감사하다고 생각하고, 요구하는 말보다는 부탁하는 말이 좋겠습니다.
[오늘의 양육표어 - 첫째양육 부모의무 둘째양육 부모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