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피스테라 > 서울 >>> 싱가포르
[Epilogue] Fisterra > Seoul >>> Singapore
산티아고에 다녀온 지 7개월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이 글을 마무리하게 된다. 32일간의 여정 내내 잠들기 전 하루도 빠짐없이 그날 느꼈던 감정을 노트에 적어 내렸다. 굉장히 빈약했던 글자들 사이로 나의 기억과 상상을 채워가며 어렵게 하루의 기록을 이곳에 차근차근 완성해 가기 시작했다. 모두가 목표는 거창하게 잡듯이 나 역시 이 글을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종이책을 출판하고 싶어 했다. 그것이 단 1부여도 내게는 큰 의미가 될 수 있었다. 다만 이렇게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곤 전혀 예상치 못했다.
초반에는 글이 술술 써지길래 나름 이 행위를 즐기고 있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산티아고의 기억이 희미해지며 창작의 고통이 빠르게 나를 파고들기 시작했다. 중간에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많았지만, 이것조차 끈기 있게 마무리하지 못하면 산티아고에서 했던 나와의 약속을 하나도 지키지 못한 게 되기 때문에, 어떻게든 이 이야기를 끝맺고자 했다. 그렇게 용두사미가 되어버린 이 글을 다 쓰기까지 꼬박 6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에 나에게는 참 많은 변화가 있었고, 그것이 산티아고 순례길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나는 후암동의 월 50짜리 자취방에서 이 글을 시작해, 싱가포르의 월 300짜리 방에서 이 글을 마무리하게 되었다. 아쉽게도 지리적 제약으로 인해 종이책은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없다.
피스테라에서 하룻밤을 묵은 후, 버스를 타고 포르투로 이동했다. 내려서 이제 막 관광여행을 즐기려는 찰나 나의 조국에서는 계엄령이 터졌다. 곧바로 현금을 인출한 뒤, 핸드폰만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다행히 저녁을 먹을 때 즈음에 해제가 되었다. 사실 6개월 휴직을 한 터라 원하면 다른 나라로 여행을 더 즐길 수 있었지만, 한 달 동안 쉬지 않고 걸었던지라 빨리 집에 가고 싶었다. 귀국행 비행기가 바르셀로나였기 때문에, 잠시 머무르며 가우디에 대해 이제 어느 정도 잘 알게 되었을 즈음 서울로 돌아갔다.
서울에 와서 가장 먼저 한 것은 자취방 구하기였다. 나이 서른 먹고 직장도 휴직해서 월급도 안 나오는 마당에 부모님 집에 얹혀서 밥을 먹다가는 매 끼니마다 체할 것이 분명했다. 성인이 된 후에 혼자 살았던 경험도 없었기에 그간 다짐했던 '홀로서기'를 시작하기에 자취방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선택이었다. 나는 그렇게 처음으로 부모님이 살고 싶은 곳, 학교와 가까운 곳, 직장과 가까운 곳이 아닌 '내가 살고 싶은 곳'에 살기로 했다.
나는 후암동 언덕자락에 10평 남짓한 분리형 원룸을 구했다. 어차피 쉬는 동안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내야 했기 때문에 자는 공간과 일하는 공간의 분리가 가장 중요했다. 넓게 펼쳐진 옥상은 혼자 사용할 수 있었는데, 늦은 밤 이곳에 올라가면 서울의 야경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었다. 먹는 것이 삶에 꽤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나에게 근처 해방촌, 이태원, 남영동 상권은 더할 나위 없는 축복이었다. 걸어서 10분 거리에는 남산이라는 유명한 녹지가 있다. 그 길을 따라 조금만 걸어가면 남산도서관이 있다. 혹시나 회사로 복귀할 가능성도 배제하진 않았다. 이곳에서 빨간 버스를 타면 분당까지 한 시간도 채 걸리지 않는다. 유일한 단점이라면 '언덕'인데, 스쿠터를 가지고 있는 나에게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처음 한 달은 집을 최적화하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 것 같다. 다음 한 달은 주식에 대부분은 시간을 쏟아부었지만 20% 넘게 하락하는 지수를 피해 갈 수는 없었다. 다음 한 달은 뭐라도 머릿속에 있는 사업아이템을 구체화해서 만들기 시작했지만 혼자서는 어려움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봄이 찾아왔고, 6개월의 휴직기간이 점차 끝나가고 있었다. 복귀 혹은 퇴직. 이제는 결정해야 할 때가 왔다.
여러 복잡한 생각 속에 밤을 지새우는 날들이 많았어도, 결국 한 가지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나 역시도 휴직기간 동안 달라진 게 없다. 그렇다고 가만히 누워서 '어차피 바뀌는 것도 없는데'라는 말로 시간을 허비하는 건 내가 추구하는 방식이 아니다. 내가 못 바뀌는 거면 환경이라도 바꿔야 한다. 최소한 이 상황을 벗어나고자 하는 노력이라도 해야 한다. 그렇게 남은 시간을 이직 준비에 할애했다. 넓은 의미로는 이민이 맞을 수도 있겠다. 회사를 바꾸는 것만으로는 환경을 드라마틱하게 변화시킬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운이 좋게도 싱가포르에 지사를 둔 글로벌 기업에서 오퍼 레터를 받게 되었다. 처음 지원할 때까지만 해도 내가 진짜 대한민국을 떠날지 몰랐는데 눈 떠보니 어느새 타지에서 살고 있다.
그토록 바라던 새로운 환경에서 애석하게도 살아남기 위해 열심히 발버둥 치고 있다. 삶을 돌아볼 때마다 스티브잡스가 했던 말이 종종 떠오른다. 'Connecting the dots.' 당시엔 의미 없어 보였던 과거의 경험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낸다는 뜻이다. 스물아홉에 대책 없이 산티아고 순례길을 떠나지 않았다면, 서른의 나이에 홀로 해외로 나와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었을까. 뭐든 의미 부여하기 나름이라, 이렇게라도 내가 순례길에서 시간을 허비하지 않았음을 정당화하려는 얄팍한 수작인지도 모르겠다. 뭐가 되었건 한 달 남짓한 이 여행을 통해 글 쓰는 것에 약간의 정을 붙인 것 같아 그건 참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