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차] 나헤라 > 산토도밍고 데 라 칼사다
[Day 8] Najera > Santo Domingo de la Calzada
순례길에 오른 이래로 가장 흐린 날씨이다. 해는 어디로 숨었는지 구름만이 하늘을 뒤덮는다. 리오하 평지를 걷다 보면 길 양옆으로 포도밭이 보이지만, 모두 겨울 준비를 하는 듯 앙상한 가지만 남아있다. 순례길 초반에 가득했던 풀은 온데간데없고 사방이 황량하다. 길이 지루해서 발에 치이는 돌을 괜히 힘껏 차 본다. 차인 돌을 따라 걷고 또다시 돌을 차고. 아무 의미 없는 돌과의 반복된 사투를 벌이던 중, 앞선 순례자가 길 위에 돌로 만든 화살표를 발견한다. 분명 나보다 생산적으로 이 길을 즐겼다는 증거다.
시야가 탁 트여있어 저 멀리 순례자들이 하나둘 보인다. 대부분 나처럼 걸어가지만, 간혹 가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나 뛰어가는 사람도 보인다. 각자의 속도의 방향이 모두 다르지만, 우리는 이 두 개가 겹치는 찰나의 순간에 길 위에서 서로를 마주치게 되어있다. 우리는 서로에게 낯선 존재이지만, 신기하게도 각자가 걸어온 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때로는 가족이나 친구에게조차 하지 못하는 대화가 이루어지기도 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생각지도 못한 깨달음을 얻기도 한다. 그 시간은 상대방과 내가 여는 마음의 크기에 따라 유연하게 흘러간다. 우리는 앞으로 걸어갈 각자의 길을 응원하며 또다시 만날 날을 기약한다.
길이 지루해지던 찰나에 생각지 못한 이벤트가 하나씩 찾아온다. 조그마한 돌무더기 사이로 누군가의 이름이 적힌 석판이 보인다. 주변에는 꽃들이 가득하다. 걷다 보면 이렇게 길의 가장자리에 한 사람의 무덤이 보이곤 한다. 멈춰 서서 그 사람의 명복을 빌어준다. 나는 죽어서 이 세상에 어떻게 흔적을 남기고 싶을지에 대해 생각해 본다. 납골당의 좁은 구석 한 칸에 놓이는 것보단 이렇게 본인에게 의미 있는 길 위에서 많은 사람들을 마주하는 게 좋아 보이기도 한다.
오늘도 여전히 왼쪽 어깨가 아프다. 또 욱신욱신한 것을 보니 아마 10km 정도 걷지 않았나 싶다. 핸드폰을 켜서 확인해 보니 정확히 그만큼 걸었다. 아픈 어깨를 부여잡고 순례길을 계속 걷기 위한 나름의 루틴을 세웠다. 10km 걷고 쉬기. 그다음부터는 5km마다 쉬기. 수없이 많은 방법으로 가방을 조절해 보았지만 해결이 안 된다. 급기야는 같이 걷는 부산 친구와 배낭을 바꿔서 들어봤지만 여전히 아프다. 돌이켜보니 예전에 군대에서 행군할 때도 유독 왼쪽 어깨만 아팠던 기억이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신체에 좌우 밸런스가 맞지 않는다는 결론밖에 나지 않는다. 한국에 돌아가면 병원에 가서 검사라도 받아봐야 할 것 같다. 다행히 참을 수 있을 정도이기 때문에 우선은 끝까지 걸어보기로 한다. 옆에 걷던 부산 친구가 물어본다.
"쓸데없는 짐을 좀 버리는 건 어때?"
"더 이상 버릴 게 없는데..."
말 끝을 흐리며 대답한다. 아직 모든 걸 내려놓지 못한 듯하다. 현재는 사용하지 않더라도 나중에 필요할 수 있는 것들을 꾸역꾸역 배낭 안에 넣고 걸어가고 있다. 나는 왜 아직 집착하는가. 이것들을 버린다 해도 어깨가 나아지지 않을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물건을 버리고 나서 나중에 후회할 수 있기 때문에? 더 이상 아프지 않다고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며, 괜히 배낭을 고쳐 매고 다시 걷는다.
산토도밍고 데 라 칼사다(Santo Domingo de la Calzada)에 도착한다. 도착하기 전부터 부산 친구가 여기 알베르게가 평점이 진짜 좋다고 기대하라고 헛바람을 불어넣었다. '뭐 알베르게가 얼마나 좋겠어.' 하며 시큰둥하게 대꾸했지만, 실제로 알베르게에 도착해 보니 평점이 괜히 좋은 게 아니었다. 침실은 알베르게의 맨 위층에 위치하고 있어 걸어올라 가는데 좀 불편함이 있었지만, 모든 침대가 1층 침대였다. 2층 침대가 없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는데 침대 사이의 공간이 넓었고 청결하게 관리가 되고 있었다. 각 침대마다 개별 라이트가 있었고 무엇보다 따뜻한 온기가 몸을 감쌌다. 아늑하고 편안한 공간이었다. 샤워를 하고 잠시 누웠는데 일어나 보니 2시간이 지나있었다. 개운하게 일어나서 주위를 둘러보니 함께 온 부산 친구 역시 꿈나라를 다녀온 표정이었다. 스페인에 도착한 이후 첫 낮잠이었다. 잠시나마 시에스타를 즐기는 스페인 사람이 된 것만 같았다.
아늑한 침대에 누워 한국으로 돌아가면 구할 집에 대해 생각해 본다. 돌이켜보면 지금까지 내가 속한 사회와의 접근성을 최우선 순위로 집을 구했던 것 같다. 대학생 시절에는 학교와 가까워야 했기 때문에 신촌에 자취방을 구했다. 마침 근처에 학교를 다녔던 친한 동생이 있어서 오피스텔에서 같이 살았다. 졸업 후 구한 일자리는 분당에 있었다. 본가가 회사 근처였기 때문에 3년 간의 자취생활을 뒤로한 채 부모님 집에 얹혀살았다. 본가가 서울로 이사를 하고 나서는 회사 바로 앞에 살고 있는 사촌형 집에 얹혀살았다. 몽골인도 혀를 내두를 유목민 생활이었다.
집은 소비의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며 그 대가로 '나만의 공간'이 줄 수 있는 여러 가치를 제공한다. 막상 돌이켜보니 나는 집이라는 공간의 본질은 깊게 생각해보지 않은 채, 그저 상황에 맞게 살아왔다. 나는 어떤 형태의 집을 좋아하는지. 어떤 주변 환경을 선호하는지. 조금 더 윤택한 삶을 제공해 줄 조건은 무엇인지. 이러한 요소들은 고려 대상에 없었다. 그저 학교나 회사와의 접근성과 낮은 월세만이 기준이 될 뿐이었다.
더 늦기 전에 '내가 살고 싶은 집'을 구하기로 한다. 업무의 대부분을 집에서 하기 때문에 잠자는 공간과 일하는 공간의 분리가 최우선이다. 다른 조건을 포기하더라도 분리형 원룸이나 투룸을 구해야 한다. 같은 가격이라면 평수가 좁은 대신 편의성을 갖춘 신축 오피스텔보다는, 불편하더라도 평수가 넓은 구축 빌라나 주택이 선호된다. 주변 환경 역시 중요하다. 먹는 데서 오는 행복이 크기 때문에 근처에 다양한 음식점이 있어야 한다. 원활한 교통을 갖춘 복잡한 시내보다는, 조금은 불편하더라도 편하게 산책을 즐길 수 있는 자연과 가까운 동네가 좋다. 사람들이 집을 잠자는 용도로만 사용하는 배드타운보다는, 유동인구가 많아 다양한 개성 있는 사람들을 마주칠 수 있는 지역이 좋다. 동시에 내가 주로 활동하는 지역과의 접근성이 너무 떨어지지만 않으면 된다. 이러한 조건들을 따져봤을 때 이태원이나 용산 쪽이 좋을 것 같다는 결론이 나왔다. 내가 가봤던 지역 중 가장 마음에 들었고, 무엇보다 '여기에 살고 싶다'라는 생각을 했던 몇 안 되는 동네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한국에 돌아가자마자 복덕방부터 찾아다닐 생각에 벌써부터 설렌다.
산토 도밍고 마을을 둘러보면 닭 그림이 꽤 많다. 궁금해서 찾아보니 이곳에 닭과 관련된 전설이 있다고 한다. 요약하자면 이런 내용이다.
"어떤 잘생긴 청년 순례자가 부모님과 함께 산티아고로 향하던 중 어느 숙소의 딸에게 고백을 받는다. 신앙심이 깊은 청년은 거절했고, 상심한 여자는 복수를 하려고 은잔을 청년의 가방에 몰래 놓고 도둑질로 고발했다. 결국 청년은 교수형에 처해졌고, 절망에 빠진 부모는 산티아고 성인에게 기도를 올리며 순례를 계속했다. 어느 날 아들이 살아있다는 하늘의 음성을 들은 부모는 재판 간에게 이 소식을 전했다. 그러자 저녁식사를 하던 재판관이 웃으며 말했다. '당신의 아들이 살아 있다면 지금 먹으려던 이 닭도 살아 있겠구려.' 그러자 그릇에 담긴 닭이 살아나 노래하기 시작했다."
이런 전설 때문에 순례자들에게 여행 중 수탉이 우는 소리를 듣는 것은 좋은 징조로 여겨졌다고 한다. 전설을 믿지는 않지만, 괜히 산티아고에 도착하기 전 한 번쯤은 우는 소리를 듣고 싶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