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모습과 뒷모습
지하철역에 들어설 때마다 늘 자문한다. 오늘은 어느 칸에 타야 하지? 대답은 목적지에 따라 달라진다. 환승을 해야 한다면 환승구와 가까운 칸. 그게 아니면 출구 계단과 가까운 칸에 타는 게 좋다. 잘 모르겠으면 그냥 가운데 칸에 탄다. 쫓기듯 빠듯하게 다니진 않지만 그렇다고 시간을 넉넉히 두는 편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 사이 어디쯤이 좋다.
어제는 앞 칸에 타는 날이었다. 빈자리가 드문드문 보였지만 앉지 않았다. 대신 언제나처럼 기관실 벽에 살짝 몸을 기대고 가방에서 책을 꺼내 읽는다. 그러고 있으면 이따금 자리에 앉은 할머니들께서 말을 붙여오신다. 학생, 여기 자리 있으니 편하게 앉아서 봐. 표정도 말투도 뭔가 기특해하시는 눈치다. 책을 읽는 건 전부 공부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다. 나는 금방 내릴 거라 괜찮다며 어영부영 둘러댄다. 할머니, 사실 저는 학생이 아니에요. 그리고 이건 공부가 아니라 그냥 놀이고요. 책 읽는 것도, 서 있는 것도요. 라고 굳이 말하진 않는다.
세 정거장을 이동하고 나면 잠시 책을 덮는다. 앞 칸에 탈 때마다 기대하는 시간이 곧 다가오기 때문이다.
네 번째 역. 지하철이 멈추고 문이 열리면 기관실 쪽에서 뭔가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문 밖에는 아직도 탑승하지 않은 사람이 한 명 서 있다. 그런데 서 있는 방향이 어째 좀 기묘하다. 활짝 열린 문이 아니라 살짝 비스듬히 앞을 향하고 있다. 나는 그가 교대를 기다리고 있는 기관사라는 걸 알아차린다. 이내 기관실 문이 열리고 그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떠오른다. 그렇게 내 눈 앞에서 막간 교대가 이루어진다.
수고 많았어.
수고하세요.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해.
앞모습은 서둘러 기관실 안으로 사라지고, 뒷모습은 출구를 향해 천천히 사라진다. 나는 그 뒷모습을 한동안 바라본다. 얼굴은 볼 수 없지만, 걸음걸이만 봐도 표정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왜 종점이 아닌 이런 애매한 위치에서 교대를 하는 걸까. 나야 모른다. 하지만 바로 그 점이 이 광경을 더욱 특별하게 만든다. 세상에 관한 아주 사소하지만 중요한 비밀을 엿본 것만 같다. 왜인지 기운이 난다. 어김없이 작은 감동을 느낀다. 그래서 앞 칸에 탈 때면 늘 이 간소하기 이를 데 없는 교대를 볼 수 있길 고대한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문이 닫히고 지하철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나는 방금 맛본 작은 감동을 안고 다시 책을 펼친다. 기관사가 바뀌었지만 승객 대부분은 그 사실을 모른다. 하지만 알든 모르든 우리는 모두 각자의 하루를 보낼 것이다. 때로는 앞모습을, 때로는 뒷모습을 보여가면서. 조금 유난스럽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그건 가끔 기적 같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