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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희수 Jul 15. 2021

나의 빌 에반스적 환상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북카페가 하나 있다. 인상 좋은 젊은 부부가 운영하는 그곳은 커피와 큐레이션은 물론 인테리어도 세련되어 인기가 많다. 한쪽 창 전체가 공원과 바로 맞닿아있어 안에서 내다보이는 풍광 또한 특별하다.


   작년 여름, 나는 그곳을 자주 찾았다. 집에서 오전 작업을 마치고 점심을 먹고 나면 늘 가방을 들쳐 메고 집을 나섰다. 콧노래를 부르며 자전거 페달을 밟았다. 도착해선 시원한 커피를 마시며 오전에 쓴 글을 다듬거나 새 글을 썼다. 테이블이 몇 없다 보니 종종 발걸음을 돌려야 할 때도 있었다.


   카페는 대체로 조용했다. 그러나 언제 어떤 소리가 집중을 방해할지 모르기 때문에 나는 자주 이어폰을 꼈다. 당시에는 진행 중인 작업이 막바지였을 때라 특히 더 예민했다. 음악은 가사가 없고 느린 템포의 재즈가 좋다. 주로 제리 멀리건의 《Night Lights》와 빌 에반스 트리오의 《Waltz for Debby》 두 앨범을 번갈아가며 들었다.


   그날 낮에도 나는 그곳에서 글을 쓰고 있었다. 귀에서는 빌 에반스 트리오의 <My Foolish Heart>가 막 시작된 참. 갑자기 주변이 소란스러워졌다. 뭔가 웅성웅성대는 소리가 사방을 에워싸고 있었다. 커널형 이어폰을 끼고 있었음에도 그랬다. 나는 ‘이상하네, 이렇게 소란스러울 곳이 아닌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카페 내부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평화로운 모습. 창밖을 내다봐도 별다른 징후는 보이지 않았다. <My Foolish Heart>라는 곡과 너무도 잘 어울리는 차분한 한낮의 풍경이 평소대로 거기 있을 뿐이다.


   이어폰을 빼고서야 소음의 근원을 알아차렸다. 소음은 음악에서 나는 것이었다.


   사실 나는 일찍이 그 앨범—그러니까 <My Foolish Heart>가 수록된 《Waltz for Debby》가 클럽에서 라이브로 녹음됐다는 걸 알고 있었다. 1961년 6월 25일 일요일. 뉴욕의 재즈 클럽 빌리지 뱅가드. 그날 진행된 라이브 중 다른 일부는 《Sunday At the Village Vanguard》란 앨범으로 발매되기도 했다. 그런 시시콜콜한 사실은 잘만 기억하면서, 정작 클럽 내부 소음이 그렇게나 크게 녹음되어 있는 줄도 몰랐다니. 나는 왠지 부끄러웠다.


   그때부터 쓰던 글을 멈추고 집중해 음악을 들었다. 정확하게는 거기 포함된 소음에 바짝 귀를 기울였다. 유심히 들으니 다양한 소리가 있었다. 어디선가 잔들이 이리저리 부딪히고, 뭔가 바닥에 떨어지고, 어떤 이는 지독한 감기라도 걸렸는지 시종 기침을 해댄다.


   그 혼란 통 속에서 빌 에반스 트리오—즉 빌 에반스와 스콧 라파로, 폴 모션 세 사람—는 서로를 마주한 채 자신들 앞에 놓인 음악적 과업에만 완전히 몰입하고 있었다. 저마다 속에서 따끈한 뭔가를 꺼내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었다. 섬세한 음악적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다.


   신기하게도 소음을 인지하고 나자 연주에 잔뜩 몰입한 세 사람의 모습과 그들이 속한 풍경이 무척 자연스럽게 그려졌다. 나는 그제야 그들이 당시 무슨 일을 하고 있었는지. 무엇을 추구했으며 무엇을 이룩하려 했는지 희미하나마 알 것 같았다. 가끔 음악과 무관한(오히려 방해될 소지가 있는) 사소한 요소가 음악에 대한 이해를 몇 뼘쯤 키워놓기도 한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런 일은 유독 재즈에서 자주 일어나는 것 같다.


   그날의 기분을 나는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한다. 더없이 고요하고 한적한 장소에서 웅성대는 사람들에게 에워싸여 있는 그 이상한 기분을. 2020년 한국 신도시의 평화와 1961년 뉴욕 그리니치 빌리지의 혼란이 내 안에서 어지럽게 교차하던 순간을. 그곳에 있었던 사람들의 모습과 그곳에 없었던 사람들의 기척을.


   그런 이유로 나는 지금도 <My Foolish Heart>를 들을 때마다 주위를 두리번거리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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