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에게는 아주 오래되고 친숙한 물건
여성 핸드백에 하나쯤은 들어 있을 필수품 중 하나가 립스틱(lipstick)이다.
립스틱의 목적인 입술 화장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BC 69~30년쯤의 클레오파트라가 헤나(Henna)에서 추출한 붉은 물감을 입술에 칠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정확한 시기는 모르겠으나 이처럼 입술 화장의 역사는 꽤나 오래된 것만은 분명하다.
내 어린 시절이었던 70년대에 립스틱이라는 말은 아직 흔치 않았다. 루주(Rouge)라는 말이 많이 쓰였다. 입술에 바르는 색조화장품을 ‘루주’라고 하나보다 어렴풋이 생각했다. 어르신들은 구찌 베니(口紅)라고 부르기도 했다. 나중에 알고보니 일본어였다. 우리 조상들은 입술과 뺨에 바르는 화장품을 연지(臙脂)라고 호칭했다.
루주, 구찌 베니, 연지의 공통점은 모두 붉은색 또는 빨간색을 의미한다.
프랑스어 루주도 빨갛다는 의미가 있고 일본어 구찌 베니의 베니(紅)가 한자 붉은 홍 자를 나타낸다. 연지 역시 붉은 빛깔의 염료를 의미한다고 한다.
Lip제품의 색깔은 수십여 종이 될 정도로 많지만, 역시 립 제품의 대표 색상은 Red이다.
그래서 Red가 입술 색조화장품을 나타내는 단어로 차용된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루주라는 말 대신에 입술 색조 제품을 ‘립스틱’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립스틱 짙게 바르고’나 ‘분홍 립스틱’이라는 가요가 80년대 후반에 히트했다. 루주라는 단어 대신 립스틱이라는 단어가 넓게 쓰이기 시작했다. 그러는 와중에 루주와 구찌 베니라는 말은 잊혔다.
2014년 디올 화장품에 세일스 매니저로 입사했다.
디올의 대표 립스틱 제품 중 하나가 Rouge Dior이다. 아련하게 Rouge라는 말이 다시 떠올랐다. 60~70년대에는 입술에 바르는 색조화장품을 ‘루주’라고 불렀지 하고 말이다.
‘구찌 베니’라는 말은 일본 화장품 회사 영업본부장으로 재직하는 지금 간혹 듣는다. 일본 사람들은 ‘리쁘스띠꾸’라고도 하지만 くちべに(구찌 베니)라고도 한다. 잊힌 물건들이 소환될 때 아련한 감정 같은 것이 생긴다. 어휘도 그런 것 같다.
낡고 촌스럽다고 생각되었던 것이 다시 조명되고 힙하다고 떠오르는 경우가 있다.
오래되고 낡은 인쇄공장들이 모여있던 을지로가 힙지로로 바뀌어서 젊은이들의 문화장소로 변화한다.
제화공장 골목이었던 성수동도 힙하게 바뀌어서 '제2의 가로수길' 같은 장소로 느껴진다.
한때는 잊혔던 루주라는 단어에서 다시 고혹적인 이미지를 떠올리고
‘구찌 베니’라는 단어가 명품 구찌와 베니스라는 도시를 합성한 단어처럼 고급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2001년쯤 영화 '엽기적인 그녀'가 인기를 얻자, 영화 속 주인공 전지현이 발랐던 브랜드 베네피트의 ‘베네틴트’ 제품이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다.
피겨여왕 김연아가 2013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연기 순서 추첨을 기다리는 중에 입술에 바른 제품이 디올 '립글로우'였다. 그 장면이 TV 화면에 잡혀서 전 국민에게 김연아 립스틱으로 불렸다.
디올은 그 당시 김연아와 광고모델 계약이 되어 있지 않았다. 그야말로 김연아의 ‘내 돈 내산’이었다. 2013년 디올 립 제품은 몇 배의 매출 성장을 기록했다. 프랑스 본사에서도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깜짝 놀랐다.
보떼 리서치 자료에 따르면 코로나 전인 2019년에 백화점 화장품 브랜드 립스틱 매출은 약 2500억 원이었다. 2021년에는 1200억 원으로 52%가량 감소했다.
반면 향수는 1720억 원에서 2800억 원으로 60% 이상 성장했다
마스크로 입술을 가려야 하는 기간 동안 립스틱 매출은 자연스레 정체되었다.
색깔로 어필하지 못하니 냄새(향기)로 자신을 표현하는 사람이 늘어났다.
코로나가 멈추고 다시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온다면 립스틱 매출도 다시 성장할 것이라 생각한다.
여성에게 있어, 이름은 바뀌고 좋아하는 브랜드는 바뀌더라도
립스틱은 영원한 필수품일 테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