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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스트 참여자 모두 비교 기능을 사용하게 만드는 데 성공했고, 만족도 또한 90%를 넘었다. 다른 어플에 비해서 훨씬 더 간편했다는 의견도 다수 있었다. 홈화면만 바꿨을 뿐인데 전체적인 인상이 바뀐 것이다. 그때는 틀렸고, 지금은 맞았다. TF는 다시 모여, 피드백을 교환했다. 현재 안을 최종 안으로 정했고, 다음 주에 배포하기로 했다. 이제 진짜 시장과 마주할 일만 남았다. 라선은 퇴근할 때까지 상기된 채로 붕 떠있었다. 해냈다? 해냈다. 해냈어! 살면서 업무에 성취감을 느끼는 날이 올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이것이 진짜로 성취감인지 아니면 수습 전환 전에 뭐라도 해냈다는 사실에서 오는 안도감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한 고비를 넘긴 것이다.
집으로 가는 길에 라선은 아직 모습이 바뀌지 않은 '부자고고' 앱을 켰다. 세상 불편하기 그지없는 인터페이스였다. 와, 이 상태로도 사용자를 어느 정도 모았다는 게 용했네. 새로 리뉴얼한 앱과 비교했을 때, 구 버전은 너무도 꽉 막힌 동작으로 가득 차 무거웠다. '아마 잘 될 거야'라는 희망이 '안 될 수가 없다'라는 확신으로 변했다. 라선에서는 드문 확신이었다. 긍정적인 영역에서는. 부정적인 영역에는 어느 불행한 결말도 언제든 일어날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대부분의 선택도 그런 확신을 따라 굴러갔다. 이번엔 가능한 긍정적인 생각으로 미래가 다른 방향으로 틀지 않게 해야 한다. 수습 전환 결과는 금요일에 확정된다. 그때까지 흔들리지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라선은 다짐하듯 폰을 꽉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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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팀에 오면 단순히 문서 보조 작업만 하고 말 것이다.' 오판이었다. 정확히는 테크니컬 라이터이라는 타이틀로 라선을 지나치게 좁게 보고 있었다. 라선이 테크니컬 라이터로서 전문 역량을 지닌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라선이 테크니컬 라이팅에만 갇혀 있을 필요는 없었다. 오히려 테크니컬 라이터이기에 볼 수 있는 지점이 있었다. 단순 기획자들이 놓치는 기술과 기획서 사이의 미묘한 맥락. 그 둘을 잇는 '명확하고 간결한 전달력'. 웨일은 조직의 관점에서 라선의 역량을 새롭게 비추어 보았다. 성장 가능성이 있다. 그건 자신에게도 해당되는 표현이어야 했다. 웨일은 라선이 평가 대상자가 아니라, 경쟁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도권 사회가 뼛속 깊이 새겨 넣어준 경쟁 본능에 따라서 밀어버려야 할까. 넥스테이트가 대기업이라면, 마땅히 그랬을 수도 있었다. 웨일은 남을 밟으며, 올라오는 게 익숙한 사람이었다. 명문대에 들어갔을 때도, 대기업에 들어갔을 때도. 파이의 절대적인 크기가 먼저 커져야 한다. 유능한 사람이 필요하다, 손바닥 위에 둘 수 있는.
인공 눈물 두 방울을 넣고, 눈을 감았다.
총천연색의 나무와 새, 맹수, 곤충, 열매, 꽃이 어지럽게 공간을 가로지르며 나타났다 사라졌다. 누가 먼저 멸종하는 종이 될 것인가. 인공눈물이 입술에 닿아 씁쓸한 맛이 느껴졌다. 내일은 시차를 내고, 안과를 다녀와야겠다. 5분을 기다렸다 다시 눈을 뜨고 평가서 작성을 마무리했다. 허니맨이 보냈던 요청 메일에 평가서를 첨부해 회신했다. 제목 앞에 [re:]가 마크처럼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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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마침내, 허니맨에게 평가서가 모두 도착했다. 가장 먼저 도착한 토월은 지극히 주관적으로 극단적이었다. 세안나는, 넘어가자. 무효표나 다름없으니까. 웨일은 원래 성격 그대로 점수를 냈다. 평가 의견은 거의 프로파일러 보고서 수준이었다. 한 사람의 명이 달린 일이라 최선을 다한 것이려나. 마지막 난관은 리코의 평가서였다. 허니맨은 파일을 열기 두려웠다. 설마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아니겠지. 명색에 대표이사니까 평가에 가중치를 더 줄 수밖에 없다. 그래도 함부로 권력을 행사하는 형식이 되어서는 안 된다. 조직이 커질수록 합리적이고, 공정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마음의 준비를 마치고, 허니맨은 문서 파일을 더블 클릭했다.
'얘는 대체 무슨 생각이지?'
문서를 읽은 허니맨은 리코에게 전화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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뻐근한 어깨를 풀기 위해 일어나 스트레칭을 한 라선은 라운지로 가 쌍화차를 탔다. 잣이 있으면 더 맛있을 텐데. 라선은 다과 서랍을 열어 마땅한 대용품을 찾았다. 이틀 견과를 발견했고, 안에 있던 호두를 으깨 잣처럼 만들어 컵 안에 부었다. 모양은 없지만 한 번 먹어보니, 잣이랑 비슷했다. 천잰데? 스스로 칭찬하고 라선은 서랍을 닫기 전 생강편강 한 봉지를 꺼냈다. 주머니에 생강편강을 넣고 돌아섰을 때, 바로 뒤에 리코가 있었다. 놀란 라선은 사래가 들려 컥컥 기침을 뱉었다.
"괜찮아요?"
"네."
가까스로 사래를 잠재우고 라선이 대답했다.
"축하해요. 라선. 수습 끝난 거."
리코가 스치듯 말했다.
"네?"
"다음 주 리뉴얼 반응이 기대되네요."
QR코드 도넛을 챙긴 리코는 싱그러운 웃음을 남기고 사라졌다.
라선의 표정이 느리게 밝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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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부동산 밝혀주는 남자 '부밝남'입니다. 오늘은 제 휴대폰에 깔려 있는 부동산 앱과 관련해서 얘기하고자 하는데요. 라이브 방송에서도 그렇고, 오프라인 강의에서도 그렇고. 무슨 앱 쓰세요. 이런 질문 참 많이 주셔서, 이렇게 영상으로 찍게 되었습니다. 절대 제가 받은 앱 받으라는 거 아니고요. 그냥 '이런 걸 써보니, 이게 좋더라.'정도로 들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원래 제가 딱 세 개만 썼어요. 백방, NK 부동산, 아필.
여기서 제가 최근에 새로 부자고고를 추가했습니다. 사실 앱이 있는 건 예전부터 알고 있었는데, 불편해서 몇 써보고 바로 지웠거든요. 죄송합니다. 앱 만드시는 분 죄송합니다. 근데 솔직히 그땐 진짜 별로였어요. 무슨 이 기능, 저 기능, 다 있다고 하는데. 어디서 보고,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감이 안 오더라고요. 그런데 이 '부자고고'가 리뉴얼을 했습니다. 여기."
부자고고 홈화면을 띄우고, 부밝남은 스마트폰을 카메라 앞에 내밀었다.
"깔끔하죠. 딱 제 취향입니다. 가장 마지막에 추가했다면서, 왜 첫 번째로 이 앱을 소개해드리냐 하면, 처음 부동산 시작하시는 분이 사용하시기에 이 앱이 가장 좋아서입니다. 절대 광고하는 거 아니고요. 앱을 깔아서 켜보시면 바로 '비교가 쉬워진다' 이 문구 대로 따라가면, 자 이게 진짜 신박한 게 쇼핑하듯 장바구니에 담고, 한 번에 비교하기를 누르면 넣어둔 아파트를 한 번에 비교할 수 있어요. 보이시나요 여러분?"
이어서 부밝남은 특유의 위트 있는 드립으로 지루하지 않게 기능을 차근차근 설명했다.
"얘기하다 보니,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갔네요. 그럼 백방이랑 나머지 앱은 제가 나눠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여러분 모두 좋은 곳에 둥지 짓고, 등기 치세요. 부동산 밝혀주는 남자 부밝남이었습니다!"
젠틀한 윙크를 날리며, 부밝남의 영상은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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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앱을 쓰는 사람들은 한 앱만 사용하지 않는다. 부밝남의 유튜브 방송에서처럼 그동안 백방과 NK부동산, 아필을 받은 사람들의 부동산 앱 폴더에 '부자고고'가 낄 자리는 없었다. 그 확고한 체제가 뒤틀리고 있는 것이었다.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고, 곧 부자고고 다운로드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실제로 부동산 앱 삼 대장을 논할 때, '백방', 'NK 부동산', '아필'을 꼽던 사람들이 '아필' 대신 '부자고고'를 넣었다. 바야흐로 넥스테이트의 부흥을 알리는 깃발이 올라간 것이었다.
기대했던, 그러나 예상치는 못했던 시장의 반응에 직원들은 모두 들떠 있었다. 이때를 놓치면 안 된다. 웨일은 부자고고를 통한 첫 매물 등록 시 중개수수료를 50% 할인해 주는 프로모션을 기획했다. 이에 더해 세안나가 기존의 개발 중이었던 '직주 근접 매물 추천 기능'을 추가로 업데이트했다. 가입 시 등록한 직장 정보를 기준으로 모든 매물을 비교할 때, 하단에 직장까지의 통근 시간을 알려주는 기능이었다. 넥스테이트가 추구하는 초개인화된 부동산 플랫폼의 시작점이었다. 앞으로 사용자의 보유 자산, 수입, 신용등급 등을 참고해 매물 검색 시 예상 최대 대출액, 월 상환액 등을 함께 보여주는 기능도 기초 작업에 들어갔다.
사용자 수의 증가는 수익으로 이어졌다. 리뉴얼 이후 세 달 동안의 증가한 사용자 수가 부자고고를 론칭하고 나서 1년 동안 모은 사용자 수와 같았다. 이탈율도 낮아지고 있었기에, MAU는 꾸준히 늘어났다.
라선은 성장하는 회사에 있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소속감' 비슷한 것이 피어나고 있었다. 이상하지만, 이상하게 좋은 사람들과 함께 일했다. 비록 친구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상호 이해 가능한 수준에서, 호의를 주고받는 관계가 옆에 있었다. 상황이 조금 나아진 것 같아서 불안했다. 라선에게 나아진다는 것은 곧 언제든 떨어질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렇게까지 부정적이지 않아도 된다'고 고등학교 진로 상담 시간에 선생님이 조언해 준 적 있었다. 그때 '아무것도 모르면서, 어떻게 그렇게까지 부정적이지 않다고, 함부로 말할 수 있어'라고 분노했었다. 지금은 그 말이 믿을 만한 조언이기를 바랐다. 세상엔 더 나은 면들이 많다고. 밝은 세상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너무도 쉽게 믿을 수 있는 사실을, 지하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눈을 감기 전까지도 경험해보지 못하는 경우가 빈번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을 보고 눈이 멀었다고 다른 사람들은 비난한다. 가난은 병이고, 사과의 썩은 부분이라고. 아직도 병을 앓고 있는 것일까, 썩은 부분은 도려낸 것일까. 라선은 스스로에게 되물었다. 답은 아직 병을 앓고 있다고 해도, 썩은 부분이 남아 있다고 해도, 버텨야 한다는 것이었다. 인정하자, 어쨌든 한 계단 올라온 것은 맞으니까. 더 잘할 수 있을 것이다. 겨울나무 가지 같은 믿음을 내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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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남대로 21 4층 규모의 붉은 벽돌로 지어진 네모반듯한 건물 안으로, 초율이 문을 열고 들어갔다. 경비 직원이 소속과 방문 목적을 물었다. 초율은 엔젤윙즈에서 왔고, 대표님과 미팅이 있다고 대답했다. 직원은 초율에게 신분증을 받고는 출입증으로 교환해주었다. 카드를 찍자 게이트가 열렸고 초율은 엘리베이터에 올라타 4층을 눌렀다. 이번이 총 네 번째 방문이었다. 테이블의 기울기가 달라졌다. 그걸 모르진 않을 것이다. 인정하느냐, 하지 않느냐의 문제지.
4층에서 내리자, 직원이 나와 회의실로 안내했다. 잠시 후 훤칠한 키에 뿔테 안경을 쓴 남자가 안으로 들어왔다.
백방 대표 백제강이었다.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