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나, 그리고 나의 나 9화

by 설다람


다음날부터 하미는 미토를 산책시키기 시작했다. 자신이 세록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은 맞았다. 그 명제와 미토를 돌본다는 명제는 충돌하지 않는, 별개의 층위에 놓여 있었다. 세록을 위해서 존재하면서, 미토도 돌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미토를 들였던 최초의 목적이 정서적 안정이었다고 가정했을 때, 미토가 본래의 역할을 다해 세록에게 정서적 안정감을 주는 것 역시, 세록을 위한 일이었다. 하미가 오기 전까지 미토는 방치되고 있었을 것이다. 버리지 않기 위해서, 가까스로 키우고 있는 상태는, 미토에게도, 세록에게도 바람직하지 못했다. 한서로 유학을 온 뒤, 세록의 사회성은 고등학생 때보다 더 후퇴해 있었다. 완전히 회복할 순 없더라도, 적어도 지금보다는 나아지게 할 수 있을 것이다. 하미가 오랫동안 품어온 인공적인 신앙이었다. 언제라도, 어떤 순간에라도, 어떤 상황에라도, 앞으로 가다보면, 다른 장면이 반드시 나온다. 다른 장면에 대한 집요한 추구가 신앙의 정체였다.


맨션 근처 폐철도길은 산책로로 적당했다. 녹슨 레일 옆에 잡초가 듬성듬성 나있었다. 이 구역에서 보기 쉽지 않은 ‘녹지’였다. 미토는 식물을 볼 때마다, 자리에 앉아 두 손으로 매만졌다.

육교 다리 아래를 지나고 있을 때, 맞은 편에서 누군가 달려왔다. 집게핀으로 머리를 올린 아아이였다. 집게핀 아아이를 보고 미토는 하미 뒤로 숨었다. 하미는 미토에게 괜찮다고 말하며 손을 잡아주었다. 미토는 하미 옆에 바짝 붙었다.

“너 인간 아니지?”

집게핀 아아이가 펄쩍 뛰어 하미 코앞으로 와, 물었다. 너무 가까웠다. 미토가 떠는 것이 느껴졌다.

“조금 물러서주실 수 있을까요. 아이가 겁먹으니까요.”

“쟤가 무슨 아이야?”

갑자기 집게핀 아아이는 빠르게 돌아, 하미의 허리를 잡고 있던 미토에게로 갔다. 놀란 미토가 비명을 질렀다. 그 모습이 재밌는지, 집게핀 아아이는 때릴 것처럼 팔을 휘둘렀다. 하미가 아아이의 팔목을 잡았다. 세게 쥔다면 으스러뜨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깔끔한 옷차림에서 잘 관리 받고 있는 아아이란 걸 알 수 있었다. 주인이 있는 아아이를 함부로 해칠 수 없었다. 유기 아아이였다면, 하지 않았을 고민이었다.

“자청비, 얌전히 좀 굴어! 밖으로 나오면 아주 그냥 신나가지고.”

뒤늦게 나타난 아아이의 주인이 아아이를 나무랐다. 한서대에서 보았던 자열이라는 남자였다.

하미가 손을 풀어주자, 자청비는 자열에게 쪼르르 달려갔다.

“이런 데서 뵙네요.”

자열이 다가오며 말했다.

“그러게요.”

“산책 방해해서 미안해요. 처음 나온 곳이라 자청비가 평소보다 훨씬 신났네요. 이해해주세요. 워낙 기운 넘치는 애라. 혹시 산향 역 방향으로 가시는 거면 같이 걸으실래요?”

하미의 계획은 육교 다리에서 반대로 방향을 돌려,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것이었다. 자열의 제안을 사양하려던 순간, 하미는 자열에게서 들을 이야기가 생각났다.

“좋아요.”

두 사람과 두 아아이는 보폭을 맞춰 걷기 시작했다.

“요즘 세록은 학교에서 좀 어때요? 집에서 보는 일이 거의 없어서.”

“졸업은 다가오는데, 지도 교수가 좀처럼 협조적으로 나오지 않으니, 고생도 고생이죠.”

“지난 랩미팅이 때문인가요?”

“꼭 그렇지는 않아요. 그냥 두 사람이 안 맞는 거죠. 왜 사람이란 게 케미가 있잖아요. 쟤들처럼 처음 봐도 친하게 지낼 수 있는 사이가 있는가 하면, 처음엔 괜찮은 것 같아도, 알고 보니 최악인 경우도 있죠. 다이어 교수도 어떤 면에선 최악이고, 세록도 어떤 면에선 최악이에요. 그 부분이 충돌하고 있는 거예요. 흔히 있는 일이죠. 실험에서도, 현실에서도..”

자청비가 미토 주위를 돌며 노래를 흥얼거렸다.

“제 말은, 하미 씨가 그렇게 죄책감 안고 계실 필요없다고요.”

여유가 깊게 밴 말투였다.

“죄책감은 없어요. 다만 개선시키고 싶을 뿐이에요. 이 공동체가 조금 더 건강하도록.”

하미는 손으로 작게 원을 그렸다.

“혹시, 세록이랑 진지한 관계세요?”

“진지한 관계를 어떻게 정의하냐에 따라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겠네요. 제 쪽에서는 늘 진심이었어요.”


바람이 불었고, 머리 위로는 고가도로로 반이 갈라진 하늘 사이로 새들이 무리지어 날았다. 이 근방에 서식하는 검은머리불새였다. 소화를 돕기 위해 콘크리트 조각을 먹는 종으로, 유익 조류였다. 자청비가 바닥에 있는 돌을 잡아 새를 향해 던졌다. 힘은 약했지만 방향은 정확했다. 성체 정도의 근력을 지니고 있었더라면, 한 마리를 떨어뜨렸을 것이다. 자청비는 미토에게도 돌 하나를 건넸다. 미토는 머뭇거리다 돌을 받고는, 자청비를 따라 하늘로 던졌다. 미토의 돌은 멀리 가지 못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자청비가 키득거렸다. 자열이 취미나 좋아하는 음식 따위를 물었다. 하미에게 유효한 질문은 아니었다. 무슨 음악을 듣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다행히도 산향역이 나타났다.


“저흰 이만 돌아가볼게요.”

하미가 정중히 말했다.

“아쉽네요.”

“아쉬워! 아쉬-”

자청비가 자열의 말을 크게 따라하자, 자열이 자청비의 머리를 가슴에 품어, 소리를 막았다. 미토는 그 모습을 오래 바라보았다. 끝날 것 같지 않았던 오후가 노을에 바스러지고 있었다.



“하미 씨한테 남친 있어?”

자열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이자열 진짜 그만 좀 밝혀.”

나준이 자열에게 눈을 흘겼다. 랩미팅 사건 이후, 하미를 모르는 사람은 연구실에 없었다. 이목을 끌만한 존재였다. 지나치게 매력적으로 설계되었으니까.

“이번엔 진심이야.”

자열이 목소리를 깔았다.

“하미, 반려체야.”

세록의 말에, 자열과 나준의 표정이 굳었다. 전혀 생각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하미 씨가 반려체였어?

얼빠져 있는 나준과 달리 자열의 표정은 다시 밝아졌다.

“그럼 나 하루만 빌려주라.”

거슬리는 말이었다.

“너 자청비 하루만 빌려주면.”

“자청비가 무슨 물건이냐?”

불쾌한 표정으로 자열이 대답했다.

“하미도 물건 아냐.”

“물건이 아니라서, 그렇게 소리지르고 막 대했냐?”

“야, 야, 그만해, 주먹이라도 뻗겠다. 식기 전에 밥이나 마저 먹어.”

나준이 주제를 돌리기 위해 숟가락을 들었다. 그러나 세록이 주제를 다시 낚아채왔다.

“재미 좀 보겠다고, 아아이한테 링크 삽입시켜서 쾌감 증폭시키는 인간보다는 낫지”

“자청비한테 물어봐, 누가 더 좋은지.”

어이없다는 듯이, 자열이 피식하며 말했다.

그릇에 반이나 남았지만, 세록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처음부터 재수 없는 녀석이었다. 자신의 편에 있는 것들은 끔찍히 사랑하면서, 그 밖에 있는 것들에는 눈꼽만큼의 인정도 없었다.


학생식당에서 제2공학관으로 넘어오는 복도에 있는 대형 스크린 게시판에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중간 고사 응원 간식 행사 장소 발표 공지 정도겠지,라고 생각하며 지나치려던 세록은 가다가 발걸음을 멈추고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게시판을 바라보았다.

사이언스 포춘 연구소 연수 프로그램 지원자 모집 공고가 올라온 것이었다. 작년을 끝으로 한 동안 공식 선발은 없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번 공고는 비정규 특별 모집이었다.

사이언스 포춘은 인도, 헝가리, 미국, 러시아, 중국, 대만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융합학문 연구소로, 해당 연구소에서 근무한 이력만으로, 참여국 주요 대학의 박사 과정을 이수한 것으로 인정해주었다. 연구소 출신으로는 생체 내장형 노심을 개발한 앤 프레이, 자기 교란 심해류의 발생 원리를 밝힌 롤로노아 에이치로 등, 세계적인 석학들이 있었다. 연구소에서 발행하는 네이처 리퍼블릭은, 교수들이 직을 유지하기 위해 매년 투고하는 학회지였다.

세록은 공모 요강을 봤다. 어학 수준과 전공성적 자격 요건은 충분했다. 장애물은 재정 증명이었다. 연구소가 위치한 곳은 태국의 푸타무이였다. 유학을 빌어, 불법 체류자로 잔류하는 경우를 방지하기 위해 태국은 엄격하게 단기 취업, 유학을 목적으로한 입국자들의 재정 상태를 철저하게 확인했다. 재정 증명을 위해서는 계좌에 6만 달러가 있어야 했다. 세록에겐 6만 달러는커녕, 1만 달러도 없었다.


연구실에 돌아오자, 다들 공고 이야기로 웅성였다.

"재정 증명 빡세게 하네, 6만 달러는 좀 심했다. 주식 계좌는 아예 안 쳐주네."

뒤늦게 들어온 자열이 공고를 확인했는지 우는 소리를 했다. 실제론 본인에게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조건일 텐데.

"넌 걱정 없잖아?"

세록이 짜증난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6만 달러는 누구에나 큰돈이야."

얄밉게 자열이 비꼬았다. 오늘따라 유난히 시비를 걸었다.

"빌려줄게, 어차피 재정 증명할 때만 계좌에 들어 있으면 되잖아. 끝나고 다시 나한테 돌려주면 돼."

"6만 달러를?"

누구는 1만 달러도 구하지 못해 벌벌 떠는데, 누구는 만 원짜리 한 장 빌려주듯, 6만 달러를 빌려줄 수 있다는 사실에 자괴감이 들었다. ‘됐어’라는 말이 바로 나오지 않았다.

"물론, 하미 씨만 빌려주면."

자열이 웃음기 없이 말했다. 평소와 다른, 끈질긴 눈빛이 돈을 빌려준다는 이야기가, 그냥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말해줬다. 세록은 애써 자열의 눈을 피했다. 계속 보고 있으면, ‘그래’라는 대답이 나올 것 같아서였다. 그럴 순 없었다.


세록은 이무에게 연락했다. 그래도 유일한 핏줄인데, 얼마는 보태주지 않을까. 이무의 대답은 ‘네가 할 수 없다면, 네가 할 일이 아니야.’였다. 본인이야말로, 당신이 평생을 노력해도 할 수 없는 일에 매진하고 있으면서. 이무는 열을 있는 대로 받게 하고선 마지막으로 한 마디를 덧붙였다. ‘네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네가 하게 되겠지.’ NGO 슬로건 같은 첨언의 목을 비틀고 싶었다.

다음 선택지 가진 것을 파는 것이었다. 세록이 가진 물건 중 가장 비싼 것은 입자 운동을 모델링을 하기 위해 구입한 태블릿이었다. 연구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물건이었다. 경제 여건에 맞춰 필수적인 삶을 살아왔다. 세록의 인생에 필수적이지 않은 것은,


미토, 하나였다.


팔아도 돈도 안 되는 아아이였다. 세록은 검색창에 ‘아아이 비싸게 파는 법’을 쳐보았다. 분양 사이트들이 떴다. 희귀 품종의 아아이가 아닌 이상, 푼돈도 되지 않는 가격에 매매되고 있었다. 자유게시글에서도 품종 아아이들만 입양 받고 싶다는 글이 도배되어 있었다. 넷을 뒤지던 세록은 우연히 ‘장난감용 아아이 매매’, ‘아아이 촬영물 판매’의 키워드를 발견했다. 키워드를 입력하니. 끝없이 이어진 결과가 나왔고, 그중 하나를 클릭했다. 새창이 열리자 불법 유해 사이트 차단 경고 페이지가 떴다. 다른 사이트들도 시도해보았다. 몇몇에 접속이 가능했지만, 도움이 될만한 내용은 없었다.


세록은 창을 모두 닫고 눈을 감았다. 추하기 짝이 없었다.

매거진의 이전글안녕 나, 그리고 나의 나 8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