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가
취준생.
말이 좋아 취준생이지 사람들은 흔히 백수라고 부른다.
라디오 방송에서 취준생을 인터뷰했다.
일정한 직업이 없고 ‘아직까지는’ 근근이 알바로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이야기는 다들 비슷했다.
점점 자존감이 낮아져 가며 친구 관계부터 시작해 사회생활이 힘들어진다고.
그들의 말을 들은 프로그램의 진행자 두 사람의 반응은 사뭇 달랐다.
이들은 현재 꽤 유명한 방송인이 되었지만 모두 긴 무명 생활을 거쳤다.
A는 취준생들의 마음에 격하게 공감했다. 그는 근 10년 간 ‘사실상 백수 상태’였단다.
친구들이 건강보험료 이야기를 할 때면 아무 말 못 하는 자신이 초라해 보여 모임에도 나가지 않게 되었고,
뭔가를 이뤄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면서도 변하지 않는 현실을 보며 더욱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한다.
B는 완전 다른 사람이었다.
그는 백수 시절이 인생의 황금기였다고 말했다.
돈이 없으면 없는 대로
어딘가를 돌아다니고
데이트 비용이 없으면 여자 친구에게 얻어먹고
TV도 봤다가 웹 서핑도 조금 하고
그렇게 주어진 시간을 즐겼다고 한다.
비슷한 나이 대에 백수 시기를 보낸 A와 B는 비슷한 직업적 성과를 냈다.
내 생각엔 아무래도 B가 현명한 거 같다.
어차피 불투명한 시기를 보내야만 한다면 마음이라도 편한 게 낫지 않나.
난 사실 A에 더 가까운 사람이다.
주변의 사람들이 하나둘씩 눈에 보이는 무언가를 이뤄가는 거 같은데 나만 뒤쳐지는 거 같아 압박감을 받는다.
그런데 여기서 웃긴 점.
난 22살 때부터 이런 압박감을 받아왔었다.
도대체 22살이 뭘 안다고 압박감 ‘씩이나’ 받았는지.
지금의 나도 누군가가 보기엔 그냥 같잖은 어린애 일뿐일 거다.
그리고 내가 그동안 한 게 정말 하나도 없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갈수록 똑똑해지고 경험도 풍부해지는 걸 느낀다.
‘최연소’라는 타이틀이 특별하긴 하지만, 그게 최고라는 뜻은 아니다.
나만의 타임라인을 가지고 걸어가도 최고가 될 수 있다.
압박을 받는다고 해서 무언가를 더 많이 하는 것도 아니고
속 편하게 산다고 해서 무언가를 안 하는 것도 아니니깐.
자기 계발서를 혐오하는 사람 중 하나로써 이런 생각이 너무 안일한 건 아닐까 하는 걱정도 물론 있다.
하지만 뭐.
평생 백수로 죽을 게 아니라면 지금 같이 빈둥대는 삶이 그리워지는 날이 오지 않을까.
무조건 그럴 거 같다.
무슬림의 5대 의무에는 자카트라는 게 있다.
적선이라는 뜻으로, 남에게 베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동네 거지들은 적선을 베푸는 사람 개인에게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며 고마움을 표하지 않는다고 한다.
“적선을 하면 네가 좋은 건데 왜 내가 고마워해야 하냐?”라는 다소 뜨억한 생각에서 란다.
그 생각을 받아들이기엔 알라를 향한 나의 믿음이 눈곱만큼도 없긴 하지만 그 당당한 자세 하나는 배울만 하다.
신세를 지는 것도 아무나 질 수 있는 게 아니다.
자존감이 낮아진 상태에선 도움을 받는 것조차 부담스럽게 생각한다.
하지만 도움을 준 사람 입장에선 상대방이 도움을 받았다는 이유로 저자세가 되어버리면 그가 시시하게 느껴질 것이다.
부유한 집에서 자란 사람은 오히려 받는 거에 부담이 없다.
상대방이 여유가 되니까 베푸는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비단 돈 문제만이 아니라, 일이던 연애던 인간관계에선 다 똑같이 적용되는 거라 생각한다.
은혜를 갚지 말라는 게 아니다.
최소한 태도만이라도 동등한 위치에 서있으려 노력하자는 거다.
그 편이 서로에게 훨씬 깔끔하다.
모쪼록 우리 백수 일동은 다가오는 사회의 온정의 손길을 당당하게 붙잡읍시다.
우리가 직업이 없지, 가오가 없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