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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where Nov 04. 2024

생마르탱 물멍

파리를 떠나며

거리 포스터에서 보고 오후 4시에 시작하는 가스펠송 콘서트를 보려고 생마르탱 운하 근처 성당을 찾아왔는데 굳게 문이 잠겼다. 두 시간 전이라 아직 문을 안 연 것일까 하며 기웃대며 벽에 붙은 포스터를 한참 보는데 어제였다.

11월 1일이라고 알고 있으면서도 철석 같이 오늘이 그날이라고 생각했다. 어제는 어제대로 11월 1일이라 만성절이어서 몽마르트르 깔베흐 묘지가 열렸구나 했으면서ᆢ

덕분에 생마르탱 운하에 앉아 물멍을 때린다.

걸을 때는 괜찮은데 가만히 앉아 있으면 손 시리고 춥다.

기온이 많이 내려갔다. 따스한 초콜릿이라도 한 잔 사서 마시려 했는데 매몰차게 없다고 한다. 지난번 왔을 때는 분명히 팔았었는데 ᆢ그러거나 말거나 아침에 숙소에서 담아 온 커피를 마시며 물멍을 때린다.

바쁘게 지나는 사람, 손 잡고 달달하게 걷는 사람, 혼자 중얼중얼 거리며 가끔씩 큰 소리 내며 걷는 사람, 벤치에 혼자 앉아있는 노인ᆢ

사람들 군상은 어디든 같다.

젊은이가 혼자 앉아있으면 분위기 있어 보이는데 노인이 혼자 앉아있으면 왜 그리 외로워 보일까. 늙어 닥칠 외로움 앞에는 당할 재간이 없을 것 같다.


혼자 있어도 외로움이라는 걸 잘 몰랐는데, 아니 기를 쓰고 좀 혼자 있으려 하는 편이었는데 갈수록 늙어 겪는 로움이 어떨 것인지 감이 오는 것은 나이가 많이 들어가는 탓이리라.


온전히 혼자서만 하는 여행이 처음인지라 어느 순간부터는 여행이 아니라 배회하는 것 같다. 오늘은 어디를 배회할까 ᆢ내일은 어디를 가나ᆢ

뚜렷이 목표를 세우거나 계획을 세워오지 않은 여행이라 날마다 그날그날의 기분대로 움직인다.

샹젤리제 숲ᆢ프루스트가 자주 산책했다는

샹젤리제 숲에서 그랑팔레 ㆍ쁘티 팔레를 돌아  몽소공원을 걷는 것이 오늘 코스였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서너 시간이니 끝나버렸다.

가을빛이 깊어가는 몽소공원에서 아이들 회전목마 타는 것을 보며 따뜻한 크레페를 한 입 먹으니 어릴 때 호떡 먹는 것 같이 입안 가득 달콤함이 퍼져 기분이 좋다.

몽소공원 ᆢ어린이 회전목마
몽소공원 입구 ᆢ가을 나무들

어제 찾아간 몽마르트는 또 얼마나 좋던지.

나는 몽마르트의 그 흥청망청한 분위기가 참 좋다.

소매치기가 많다 해도 별로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 축제 행렬에 이끌려 다니듯 밀려가다 작은 언덕들로 빠지며 한적한 언덕길을 오른다. 르노와르가 살았다는 집, 그 옆 에릭사티가 살았던 집, 가난한 피카소가 친구들과 뭉쳐 살았다는 집, 또 그들이 몽땅 어울려 술 마시고 놀았다는 카페나 라팽 아질 같은 카바레 이런 곳을 보는 것이 좋았다.

또 어느 길가에서는  진지한 고흐가 탕기 영감의 화구상에서 물감을 구입하고 몽마르트르의 바람에 나부끼는 나무들과 선술집을 그렸겠지.

내가 좀 더 용기가 있다면 늦은 밤이어도 라팽 아질에서 샹송공연을 보고 돌아올 텐데 ᆢ

몽마르트 언덕길
달리 뮤지엄
세탁선 ᆢ피카소랑 가난한 화가들이 모여 살았다는 집
수잔 발라동이라는 당대 최고 여류화가가 살던 집
르노와르집 정원 <그네> 그림을 그린 자리
와인을 마셔가며 정말 노래를 잘 하던 버스커
라팽 아질 ᆢ많은 예술가들이 드다들던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다니다 보면 <미드 나잇 인 파리>처럼

진짜 그들이 술 먹고 노래 부르고 토론하던 그 시끄러운 카페로 들어가질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우디 앨런도 그렇게 파리를 돌아다니다 그런 영화를 만들어 낸 게 아닐까 ᆢ


젊은 날 헤밍웨이가 파리서 지내며 쓴 글을 읽다 파리여행을 생각했는데 그래서 헤밍웨이가 살던 집들과 다니던 카페들을 지도에 다 표시했는데 결국 화가들 발자취만 따라다닌 것 같다. 그랬든 어쨌든 파리다.


밤에 퐁뇌프 다리를 지나가면 <파리는 언제나 축제>라는 말이 실감 난다. 멀리 에펠탑은 마술처럼 반짝이며 불빛을 보내오고 세느강에 어리는 밤의 불빛들은 고흐 터치처럼 뭉실 뭉실 흘러간다. 연인들이 허리를 감싸며 지나가고 거리의 가수들은 우리의 발걸음을 멈춰 세우게 한다.

이 모든 것들이 흘러 흘러 축제가 된다. 강 건너 루브르 마당엔 이집트처럼 찬란한 피라미드가 불을 밝히고 사람들은 이리 저리로 몰려다닌다.

퐁네프 다리에서 바라 본 에펠
몽마르트에서 돌아오는 길 ᆢ루브르에서 버스 내려




이제 내일이면 떠난다.

일치 감치 들어와서 짐을 쌌다.

충분히 가을이 깊어졌다. 이곳 파리에.

내 기억 속에서도 파리는 언제나 축제처럼 흥청일지 모르겠다.


나는 나의 일상으로 돌아갈 테지만 지구 반대편 머나먼 어딘가 늘 축제로 불빛이 반짝이는 곳이 있다는 걸 알면 나도 가끔 멈춰 서서 혼자 웃음 지을 것이다.

헤밍웨이처럼.

그것이 그리움이든 허상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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