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경력, 앞머리 미용사의 아들 이발기

저 꽤 잘 생겨 보여요.

by 여름둘겨울둘

아들의 머리는, 우울만큼이나 덥수룩해졌다.
처음엔 예약이 힘들어서 엄마인 내게 부탁하기에 그렇게 대신 예약도 해주었고, 그다음엔 혼자 미용실에 가는 게 힘들어져서 같이 가고, 나중엔 앉아서 기다리는 시간마저 견딜 수 없는 것이 되어 졸다가 오곤 했다. 나는 그걸 단순한 피로쯤으로 여겼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건 견딜 수 없는 공간에서 빠져나오려는 마음의 몸짓이 아니었나 생각이 든다.

엄마인 내가 조금 더 일찍 알았으면 좋았을 텐데.
조금만 더 마음을 기울였어야 했는데.


나는 언니가 셋이나 되는 집에서 컸고, 생활력 강한 어머니의 손끝을 보며 자랐다. 어머니는 미용부터 도배까지 못하는 것이 없었고 그걸 보고 자란 나는 중학생 때부터 내 앞머리 정도는 스스로 자르기 시작했고 드라이도 수준급으로 하곤 했다. 30년 경력의 자칭 ‘앞머리 미용사’. 하지만 정작 아들의 흐트러진 머리칼을 바라보며 한 번도 제대로 다듬어주지 못한 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아들의 덥수룩한 머리를 보며 우울의 깊이를 보는 듯 힘겨워서
“엄마가 너 머리 좀 밀어주면 어때?”
“그럴까요? 박박 밀어주세요."
"아니 박박은 무섭고 조금 길게 해 볼까 하는데..."
“삐뚤빼뚤해도 괜찮아요. 마음껏 해보세요. 망쳐도 상관없어요.”

내심 떨리는 마음으로 이발기를 가져갔다.
내 머리는 척척 잘 다듬으면서도, 아들을 앞에 앉히고 뒤에 서니 손이 바르르 떨렸다.
윙— 하고 기계가 울리는 순간, 아들이 소리쳤다.
“아야!”
“미안, 살살할게.”
머리를 가위로 먼저 자른 후 이발기를 밀어야 했었나 보다. 역시 무리였을까 하며 조심조심 손을 움직였다.

땀이 새어 나와 내 이마는 축축해졌고 손끝은 더욱 조심스러워졌다. 거울에 비친 아들의 얼굴은 조금씩 가벼워졌고, 짧게 잘린 머리카락 너머로 아들의 이마가 오랜만에 제대로 훤히 보였다.

한 시간 동안 땀 흘리며 작업(?)을 마쳤다. 머리카락을 주워 담고 버리고 뒷정리하는 사이에 샤워를 하고 나온 아들은 거울을 보더니 깔깔 웃었다.
“엄마, 생각보다 괜찮아요. 오히려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한동안 듣지 못했던 웃음이었다.
나는 말없이, 아주 오래 안도했다.


며칠 후 정신과 상담을 받으러 간 아들은, 평소와 다르게 짧은 머리로 등장했고 의사 선생님은 아들을 보더니 놀라고 웃으며 말했다.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었어요?”
“그냥요. 더워서요.”
“저도 중학교 때 집안에 일이 있어서 머리를 박박 밀었던 적이 있어요. 그때 생각나네요.”
의사 선생님이 자기 이야기를 꺼낸 건 처음이었다.

머리카락 하나로 삶의 이야기들이 스르르 풀린다.
작은 변화가 건네는 마음의 대화.
그날 나는, 짧은 머리가 주는 시원함 속에 그간 진료실에서 느낄 수 없었던 화사한 기분을 느꼈다.

한 달 후, 다시 자란 머리칼을 다듬었다.
이번엔 아들이 더 자연스럽게 허락했다.
나는 말했다.
“아직도 조금 삐죽 대는 데가 있어. 다음엔 더 예쁘게 잘라줄게.”
아들이 웃으며 말했다.
“지금도 지난번보다 훨씬 이뻐요. 저 꽤 잘생겨 보이는데요?”

자기혐오로 가득 차 있었던 아이가
스스로 ‘잘생겼다’고 말했다.
그 말이, 그 웃음이, 그 순간이
눈물 나게 감사했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미용이라도, 요리라도, 운동이라도
좀 더 열심히 배워둘걸.
그랬더라면, 네가 좋아하는 것들로 너를 가득 채워줄 수 있었을 텐데.
네가 좋아하는 음식을 해주고,
네가 편한 머리를 손질해 주고,
네 곁에서 같이 땀 흘리며 걸어줄 수 있었을 텐데.

하지만
조금 늦더라도
엄마는 지금 배워가고 있어.
너를 웃게 하는 법을.
너와 함께 살아가는 법을.
그게, 엄마가 지금 제일 잘하고 싶은 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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