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디는 중입니다.

잘 살아주어 고마워.

by 여름둘겨울둘

착하고 순하고 너무나 조용했던 아이였다. 말없이 눈치를 보고, 불편한 기색도 삼키고, 화가 나도 조용히 고개를 떨구던 아이. ‘화를 내면 더 화를 내는 부모’라는 걸 일찍이 배워버린 아들은, 억울해도 따지지 않았고, 울음마저 숨기곤 했다. 자아가 움트기 시작하면서부터 그 억제된 감정들은 더 깊은 곳으로 파고들었고, 학교생활은 점점 무기력해져 갔다.

고등학교 1학년을 마치고 자퇴했다. 누구도 쉽게 꺼내지 못할 결정을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내렸다. 그래도 스스로 검정고시를 준비했고, 동시에 바리스타 자격증을 땄다. 자격증을 손에 쥔 후에는 며칠간 동네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도 했다. 그 노력과 움직임은 부모가 끌어낼 수 없는, 아이 자신만의 의지였다.

그리고 대학에 합격했다. 입학식 날, 그 아이는 옷을 단정하게 차려입고 학교에 갔다가, 그날 밤 자퇴를 선언했다. 다시, 스스로 깊은 동굴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지난 3년 사이에, 태어나 한 번도 반항하지 않던 아들은 처음으로 격렬하게 엄마를 향해 분노를 쏟아냈다. 말보다 몸이 앞서는 날도 있었다. 몸싸움은 여러 번 있었고, 그중 두 번은 둘째의 신고로 경찰이 집에 다녀갔다. 집 안은 뜨겁고 팽팽했다. 불이 났다는 말보다, 불이 아직 꺼지지 않았다는 말이 더 어울리는 날들이다. 3년째 상담을 받고 있는데 도대체 뭐가 되어가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결국 답은 ㅡ너 자신에게 있다ㅡ는 의사의 처방전이 오늘도 목에 가시처럼 박혀 따갑다.

집은 점점 화마가 삼킨 듯 뜨겁고 불편한 곳이 되어갔다. 서로의 마음이 타들어 갔고, 말은 재가 되어 쌓였다. 바닥에 깔린 불씨들은 언제든 타오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

돌아보니 이 시간들이 잔잔하게 8년이나 이어져 있었다. 유난히 격렬했던 3년은 선명하다. 누구든 쉽게 ‘위기’라 부를 시간들이었다. 그 이후는 소강상태일까, 회복의 시간일까. 이름을 붙이기조차 조심스럽다. 지금은, 적어도 오늘은, 다시 눈을 마주쳐 주는 아들이 있다. 밥을 먹어주고, 엄마의 존재를 거부하지 않는다. 감사하다. 말이 아닌, 살아있음으로 서로를 견디고 있다는 그 자체가.

언젠가부터 나는 ‘사랑’을 말로 하지 않게 되었다. 말로 꺼낼 수 없을 만큼 지쳐 있었고, 내가 꺼낸 그 한마디가 오히려 아들의 잔잔했던 마음에 돌을 던지는 꼴이 되었고 내게 상처가 되어 돌아올 때도 많았기 때문이다. 대신 하루 세끼를 지켰고, 밤새 깨어 있는 아이의 눈에 잠시라도 힘이 되길 바라며 아침밥을 지었다. 감정은 말로 쏟아내는 것이 아니라, 깨끗이 씻은 손으로 자른 ㅡ그 아이가 좋아하는 ㅡ과일 속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 한 그릇에, 그 속에 눌러 담았다.

매일 반복되는 이 풍경 속에서 아이는 조금씩 달라졌다. 아니, 달라졌다고 믿고 싶었다. 어느 날은 혼잣말처럼 “응” 하고 대답을 했고, 또 어떤 날은 내게 먼저 질문을 건넸다. 그 사소한 징후들이 가슴을 벅차게 했다. 눈물이 나올 것 같아 고개를 돌렸다. 겨우, 여기까지 왔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이 아이가 또다시 사라지지 않기를, 이 집이 다시 불에 타지 않기를 바라며 나는 매일을 살았다.

여전히 불완전한 가족. 분노는 가끔씩 다시 들이닥쳤고, 침묵은 오랫동안 벽을 만들었다. 하지만 아주 가끔, 벽에 금이 가는 소리가 들린다. 말 대신, 함께 앉아 있는 시간이 늘어났고, 서로를 향한 시선이 조금은 길어졌다. 그 몇 초의 눈 맞춤이, 나에겐 계절이 바뀌는 소리 같았다.

이 아이를 구할 수 있는 사람은 결국 아이 자신 뿐이라는 걸, 너무나 잘 안다. 그래서 나는 기다린다. 다그치지 않고, 조바심 내지 않으려 애쓰며. 마치 바람 부는 날 창문을 열어두고, 향기 하나 스며들기를 기다리듯이.
어쩌면 지금 이 잔잔함은 진짜 봄의 전조일지도 모른다. 아니, 그랬으면 좋겠다. 매일이 지뢰밭 같던 시간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걸어온 우리에게, 이제는 조용한 들판이 허락되기를.

오늘도 아들은 내게 와서 밥을 먹고, 고개를 들었다. 그 얼굴 위로 햇빛이 흘렀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살아 있다는 것.
그걸로 충분하다고, 나는 스스로에게 조용히 말했다.



ㅡ잘 먹었습니다. 감사합니다. ㅡ
하는 아들에게

ㅡ잘 먹어주어 감사하지.ㅡ라는 대답은

잘 살아주어 감사하다는 말이다.

오늘도 이렇게 어제처럼 또 하루를, 딱 하루씩만큼을 조용히 살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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