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쉬운 것투성이다. 당최 마음의 접점이 없어 소원해지는 관계도, 조금만 더 노력했으면 내 것이 되었을 성과도, 쓸데없이 몰빵한 주식도! 그리고 이 모든 것들 중에서도 가장 아쉬운 건 그 누구도 붙잡을 수 없는 '시간'이다.
올여름은 뜨거워도 너무 뜨거웠다. 폭염 주의보가 시도 때도 없이 울렸고 잠깐만 햇볕을 받아도 온몸에 열이 올랐다. 소매가 짧은 옷을 입자니 피부가 금방 탔고 긴 팔을 입으면 금방 땀이 흘렀다. 출퇴근길 버스는 누군가의 땀 냄새와 마르지 않은 쉰내가 풍기기 일쑤였다.
여름이 중간쯤 지났을 땐 지겨움을 느꼈다. 갑갑한 더위가 빨리 지나가기를 바랐고 이제는 찰나 같아진 소나기도 따분했다. 늦은 밤에도 창문을 모두 닫고 에어컨을 틀다 보니 여름이라는 계절을 온전히 느낄 새도 없었다. 나는 어느샌가 여름을 싫어하고 있었다.
지겨웠던 여름이 끝나간다. 지난주부터는 열대야가 사라졌고 이번주는 아침저녁으론 제법 선선한 바람도 분다. 한 밤에는 창문을 모두 열고 선풍기 하나만 켜 놓아도 괜찮아졌다. 가을 냄새가 조금씩 비집고 들어오다 보니, 반가움과 함께 아쉬움이 든다.
모든 헤어짐에는 아쉬움이 깃들기 마련이니, 뜨겁게 좋아할 필요가 있는데 말이다. 나는 왜 다시 오지 않을 2024년의 여름을 그토록 질색했는지 이제야 후회가 든다. 더운 날은 집에서 에어컨 틀고 쉬는 게 최고라며 하지 않았던 모든 것들이 아쉬워진다.
계곡이나 바다 한 번 가지 않았고, 반팔에 반바지를 입고서 청량한 자연을 배경으로 사진을 남기지도 못했다. 워낙에 돌아다니지를 않았던 터라 훗날 사진첩을 뒤적여봐도 여름날을 제대로 떠올리기도 힘들 것 같다. 아쉬워라.
그렇다면 뭐가 남았을까. 냉장고에 넣어둔 수박을 꺼내 먹으며 수다 떨었던 밤, 남편과 땀 뻘뻘 흘리며 했던 우리만의 배드민턴 올림픽, 폭우가 쏟아지던 날 가족과 함께 비를 맞으며 블루베리를 따고, 시장 한복판에서 여름 잠옷 바지를 사던 재미까지.
아쉬움 사이사이 남은 즐거움들이 꽤 많다. 이제 날이 점점 더 풀려 선풍기를 창고에 넣어두는 날이 오면 나는 그 기억들을 고이 접어 가을바람에 날려 보내겠지. 그리고 새로운 날씨와, 기분과, 시간을 맞이할 테고. 뭐든 떠나는 것이 있으면 다가오는 것이 있다. 어쩌면 세상은 그래서 살 만한 게 아닐까.
잔나비의 <뜨거운 여름밤은 가고 남은 건 볼품없지만> 노래를 틀었다.
뜨거운 여름밤은 가고 남은 건 볼 품 없지만 또다시 찾아오는 누군갈 위해서 남겨두겠소
다짐은, 세워 올린 모래성은 심술이 또 터지면 무너지겠지만 뜨거운 여름밤은 가고 남은 건 볼 품 없지만 또다시 찾아오는 누군갈 위해서 남겨두겠소
올여름 나는 그리 뜨겁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볼품없진 않았다. 도무지 감당이 안 되는 일들을 만날 때면 바짝 마른 감정으로 밤을 지새우곤 했지만, 그만큼 자랐다. 내가 사랑하는 글도 자주 쓰고 더 많이 생각하고 되돌아봤다. 조금 더 단단해졌겠지. 앞으로 만날 나의 가을과 겨울이 벌써부터 가득 차서 다가오고 있음을 느낀다. 안녕, 여름. 안녕, 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