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신 있게 말하건대 짠순이는 아니다. 한때는 아끼고 아껴서 열심히 돈을 모으던 시절이 있었다. 월급을 받으면 먼저 저축을 하고 남은 돈을 체크카드에 넣어 사용했다. 신용카드도 이십 대 후반이 돼서야 만들었다. 내가 가진 돈 안에서 알뜰히 쓰며 살았다.
그렇게 인생의 보릿고개를 보내고 나니 어느 정도 여유가 생겼다. 누군가에겐 나의 여유가 너무 보잘것없어 피식 웃음이 터질지도 모를 일이지만, 내게는 값진 여유다. 나는 서른을 기점으로 조금쯤은 마음이 편해졌다.
적게나마 모은 돈이 있었고 연차가 오를수록 연봉도 (찔끔) 올랐다. 아등바등 사는 것에 지친 언젠가부터는 규칙적으로 저축을 하거나 소비를 제한하는 식의 '절제'는 하지 않게 됐다. 나는 크게 절약하지 않을 뿐 사치하진 않았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었다.
생활 패턴이 고만고만하니 쓰는 돈도 거기서 거기였다. 명품을 사지도 않고 맛집을 찾아다니거나 장비가 필요한 취미도 없어 큰돈을 쓸 일이 드물다. 주로 가족에게 돈을 쓰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밥 한 번, 차 한 잔 사는 것에 즐거움을 느낀다.
고로 지금의 나는 '짠순이' 수준은 아니라는 걸 장황하게 설명한 건데… 아주 오랜만에 마트에 갔다가 생각이 바뀌었다.
물가가 비싸도 너무 비싸잖아!
나는 보통 평일 중 이틀 정도만 집에서 저녁 식사를 한다. 주말에는 이곳저곳 다니면서 하루에 한 끼는 외식을 하기 때문에 집에서 요리를 하는 건 평균적으로 일주일에 세 번 정도.
직장인 치고는 요리를 자주 하는 편인가. 아무쪼록 그때마다 장을 보기엔 귀찮고 한 번에 몰아서 보기엔 음식을 바로바로 먹지 않기 때문에 처치 곤란이다. 그래서 이용하는 게 쿠팡의 로켓프레쉬다. 새벽 배송이 되기 때문에 굉장히 편하다.
로켓프레쉬의 식재료는 생각보다 저렴하고 품질도 괜찮다. 한 번 주문할 때 2만~3만 원 정도, 한 달에 6번 이상 쓴다. 이참에 10월 로켓프레스 사용 내역을 계산해 봤다. 총 5번, 9만 6090원을 사용했다. 평소보다 훨씬 적게 사용한 이유가 바로 마트다.
신혼 초에는 마트를 꽤 자주 갔었다. 하지만 딱히 저렴하지도 않은데 견물생심이 들어 필요 없는 물건을 많이 샀다. 왔다 갔다 하며 에너지를 쓰는 것도 피곤하고 주말엔 사람이 너무 많아 기가 쏙 빨리기도 했다.
그래서 마트를 끊었다가(?) 만료 기한이 임박한 상품권을 쓰러 이마트에 갔다. 먹고 싶었던 과일도 사고 몇 가지 요리를 생각하며 야채를 담았다. 유제품이나 즉석식품도 담고 냉동 고기도 담았다. 두 식구라 나름대로 양이 적고 저렴한 제품 위주로 골랐다.
하지만 바코드를 찍을 때마다 가격이 어쩜 그리 빨리 올라가는지, 거의 코인 그래프 수준이었다. 총액은 약 11만 원. 한꺼번에 장을 본 게 워낙 오랜만이었던 우리는 '물가 미쳤다'를 연발하며 장 본 물건들을 한 아름 안고 들어왔다. 나는 다음 날 친구와의 대화에서 한 번 더 놀랐다.
-어제 마트에 가서 별로 담지도 않았는데 10만 원이 넘게 나왔어.
-그 정도면 양호한데?
-우리는 2인 가구인데?
-우리 집도 2인 가구인데 한 번 장 보면 10만~20만 원은 기본이더라고.
'기본'의 기준이 올라도 너무 올랐다. 식료품비에 군것질, 외식 비용 등을 더하면 그게 다 얼마인가! 좀 전에 길가에서 본 호떡 트럭에선 호떡 한 장을 2000원에 팔았다. 과자 한 봉지가 2000원 가까이하고, 카페에서 파는 조각 케이크는 6000~7000원이다.
올여름 무서운 영화를 꽤 많이 봤는데 그때보다 등골이 더 서늘해진다. 물가가 점점 미쳐간다. 내 연봉은 너무나도 침착한데 말이다. 엉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