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거 누가 만들었냐고요 떼잉
'이제 놓아줄 때가 된 걸까?'
옷장 정리를 하다가 깊은 고민에 빠졌다. 원래는 간단히 정리를 마치고 쉴 생각이었는데, 생각지 못한 '체면 이슈(?)'로 정리하는데 두 시간이나 걸렸다. 예전에 입던 옷을 아직도 입는 게 맞는지를 고민하느라.
나의 취향은 확고하다. 어렸을 때부터 단정, 심플한 옷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렇다고 노출이 심하거나 꾸밈이 파격적인 스타일을 좋아한 적도 없다. 하지만 분명 내가 좋아하는 무드가 있다. 히피스럽고 따뜻한 색감, 혹은 밝은 색감에 귀여운 핏!
같은 옷이라도 너무 단정하기만 하면 재미없다. 20대 때는 자주 듣던 말이 있었다.
"너는 어떻게 그런 옷만 사?"
친구들은 내 옷이 특이하다며 한 번씩 입어보곤 했다. 아예 다 같이 내 방으로 놀러 와 한 번씩 체험(?)을 해보기도 했다. 평범해 보이는 니트를 입고 오면 반드시 내 등 뒤를 확인하곤 했다. 그럼 등 뒤에 리본이 달려 있거나 트여 있는 걸 보고 한바탕 웃었다.
그때는 그랬다. 아주 샛노란 카디건을 입고 다니기도 하고, 집시풍 미니 원피스를 입고 기타를 치고 놀았다. 긴 머리카락은 고데기로 굵게 웨이브를 준 다음 앞머리는 꼭 벼머리 스타일로 땋고 다녔다. 나만의 스타일이 있다는 건 즐거운 일이었다.
분명한 취향이 있는 사람은 기억 속에 각인되기 쉽다. 늘 초코 우유를 달고 살던 친구가 있었는데, 초코 우유만 보면 그 친구가 떠오른다. 나의 친구들은 아주 쨍한 색감의 옷이나 히피풍의 블라우스, 원피스 등을 보면 아직도 나를 떠올린다.
나의 옷장이 비교적 단조로워진 건 직장 생활을 하기 시작하면 서다. 출근할 때는 대부분 얌전하게 하고 다니기 때문에 적당한 셔츠나 블라우스가 많아졌다. 내 취향의 옷은 주말에만 입어야 하는데, 주말에 집에 있거나 편한 옷을 입고 다닐 때가 많다 보니 점점 안 사게 됐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다 보니 내가 좋아하지만 입지 않는 옷들이 옷장 속에서 잠만 자고 있었는데, 그렇다고 지금 억지로 깨워서 입는 건 불편한 일이었다. 체중이 변하면서 맞지 않는 옷이 절반은 됐고, 맞는다고 해도 어쩐지 부끄러워졌다.
'나이에 맞는 옷'은 아니지 않을까 싶었던 것이다. 이십 대 초반에 고수하던 스타일을 삼십 대 중반에 한다는 건 남들 보기에 우스운 일이 아닐까. 그다지 어울리지도 않는다. 한때 자주 했던 독특한 스타일의 머리띠나 머리핀, 모자 같은 액세서리도 마찬가지다.
나 또한 '나잇값'에 대해 야박하게 굴 때가 있다. 오십 대에 아이돌 스타일을 고수하는 이를 보고 나도 모르게 고개를 저을 때가 있었고, 적당히 단정히 입고 다니는 이들을 좋게 보곤 했다.
그러다 보니 옷장 정리가 얼마나 힘들던지. 결국 이제 놓아주기로 한 옷들은 '아름다운 가게'에 보내기 위해 박스에 잘 정리해 놨다. 그리고 차마 보내주지 못한 옷들은 다시 옷걸이에 잘 걸어놨다. 언젠가는 입겠지,라는 철없는 생각이 또 발동한 것!
내가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이 옷을 오늘 안 입어야 입지, 10년 뒤에 입으면 어울리겠어?!"
오늘이 제일 젊은 날인데 오늘은 그냥 보낼 수는 없는 거 아닌가. 나는 조금쯤은 더 나의 취향 기한을 연장해 보기로 했다. 그럼 10년 뒤에는 어쩔 거냐고? 그때 봐서 한 번 더 연장하지 뭐. 헤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