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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만화를 아시나요?

OST만 들어도 두근두근한

by 삼십대 제철 일기

내가 아주 어렸을 때는 주말 아침에 KBS 2TV에서 <디즈니 만화동산>을 방영해 줬다. 인어공주, 알라딘, 티몬과 품바 등의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틀어줬는데 그걸 보는 재미에 주말에도 일찍 일어나 TV 앞에 앉곤 했다.


겨울엔 내복만 입은 채로 부스스한 머리를 하고 애니메이션에 푹 빠져 미동도 하지 않았던 게 생각난다. 줄거리가 잘 이해가지 않았던 때도 있었지만 상관없었다. 조용하고 한갓진 주말 아침, 재밌는 만화를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지금도 만화 줄거리보다는 그때의 기분이나 분위기가 떠오른다. 모든 것에서 자유롭고 기대하는 것 투성이의 그 어린 날 말이다. 아빠는 뚫어져라 TV를 바라보는 나를 들어 올려서 이부 정리를 하고, 엄마는 부엌에서 보글보글 찌개를 끓이고, 나는 탱자탱자 먹고 노는 것만으로 잔뜩 지쳐 꿀잠을 자던 그때가.


그래서 가끔은 주말 아침이 되면 유튜브로 옛날 만화를 검색해서 보거나 책꽂이 한편에 쌓아놓은 만화책을 꺼내 뒤적이기도 한다. 애니메이션 오프닝 영상을 찾아서 OST를 더듬더듬 따라 부르기도 한다.


<보거스는 내 친구>도 종종 찾아서 다시 본다. 주인공 보거스는 토니 애니바디의 집 벽 속에 사는 노란색 캐릭터다. 토니의 일상에 들어가기도 하고 거울을 통해 자신만의 세계인 보거스 나라로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설정도 독특했지만 스톱 모션 효과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한 에피소드에 하나는 전통적인 셀 방식의 애니메이션을 보여줬고 나머지 하나는 스톱 모션을 보여줬다. 보거스의 몸이 찰흙 같아서 스톱 모션과 더 잘 어울렸다.


<날아라 슈퍼보드>는 한국 애니메이션이다. TV 만화 중에서 애니메이션 기술이 국내 최초로 적용된 작품이라고 한다. 시청률도 최대 42.8%를 기록한 적 있다고. 이 만화야 말로 여러 가지 교훈으로 꽉꽉 채워진 듯하다.


주인공 손오공이 하늘로 가서 말썽을 부린 대가로 억만 근 쇳덩이 밑에 깔린다. 삼장법사가 손오공을 구해준 뒤 요괴들을 물리치기 위해 함께 여행을 떠나는 내용이다. 불심이 깊은 스님이 출연(?) 하는 만큼 만화를 보면서 가끔 경건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하하.


또 다른 한국 만화 <두치와 뿌꾸>도 있다. 흡혈귀, 늑대인간, 미라, 프랑켄슈타인 등 괴물과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다. 괴물들이 꽤 무섭게 느껴졌던 기억이 나는 걸 보면 내가 꽤 어렸을 때 방영했던 것 같다. OST로 쎄쎄쎄를 하기도 했다.


한치 두치 세 치 네 치 뿌꾸 빵 뿌꾸 빵~ 한치 두치 세 치 네 치 뿌꾸 빵 뿌꾸 빵~


옛날 만화를 떠올리기만 해도 자꾸 웃음이 난다. <아기공룡둘리>에서 둘리가 엄마 찾아 울 때 함께 눈물을 훌쩍였고 <세일러문>이나 <웨딩피치>는 나의 워너비였으며 <패트와 매트>는 누군가와 함께 뚝딱거릴 때면 아직도 그들을 별명 삼아 붙이곤 한다.


특유의 옛날 감성이 포근하고 명랑한 OST가 아주 중독적이었던 그때 그 시절, 가장 그리운 건 온통 만화에 관심이 뺏겨 신이 나 있던 어린 내가 아닐까. 엄마 아빠가 지금의 내 나이쯤 되어 나를 번쩍 들고 야단치고 함께 늦잠 자던 그때의 우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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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