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으로 배운 것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어릴 적 전남 영광에 할머니 댁 마당에 작은 외양간이 있었다. 소 두세 마리가 있곤 했었는데 여물을 먹는 모습이 너무나 재밌어서 온종일 여물을 물고 놀았던 기억이 있다. 어느 날 할아버지가 손에 깁스하셨다기에 아버지께 물었다.
“할아버지 손 다쳤어요?”
“소가 말을 안 들어서 할아버지가 꿀밤을 때렸는데 손이 부러졌데 ㅎㅎ”
그렇게 건장한 우리 할아버지도 세월을 못 이겨 이제는 허리가 굽고, 치매 증상에, 거동이 불편하기까지 되었다. 며칠 전 아버지가 보낸 사진 속에는 할아버지가 요양원에 들어가셔서 탬버린을 들고 있는 모습이었다. 노란색 탬버린을 들고 있는 모습도, 낯선 할아버지, 할머니들과 한 공간에 있는 장면도 너무나 낯설어서 순간 멈칫했다.
그것도 잠시, 어쩌면 이렇게 사진으로 보는 일도 많지 않겠다 싶어서 바로 광주 기차표를 알아봤다. 그리고 아내에게 물었다.
“혹시 할아버지 인사드리러 같이 갈래?”
너무나 해맑게 웃으며 ‘여행 가는 길 좋아요~’고 답해주는 아내가 온 맘 다해 고맙다. 바이올린을 들고 다른 환자분들에게도 연주할 생각을 하니 벌써 눈물이 날 것 같다. 아내는 친할아버지, 외할아버지를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이 자랐다. 어쩌면 내가 느끼는 감정을 온전히 다 알지는 못하지만, 어느 순간이든 그저 함께 하는 것만이 부부로서의 우선순위라는 것은 알고 있다.
어린 나이에 가진 것도 없는 내게 와준 아내가 정말 고맙다. 결혼을 하고 하루가 다르게 변화한다. 삶은 행복을 차곡차곡 채워가는 것이라는 것을 늦게나마 깨달았다. 이것은 돈으로 살 수 있거나,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것이 절대 아니다.
며칠 전 아나운서와 재벌가 자제의 결혼 소식이 떠들썩하다. 인간은 누구나 배우자에 대한 기대감, 바람, 최소한의 기준 등이 있다. 그 성립 기준은 대부분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 바로 열등감에서 따라온다. 경제적 부족함을 느끼는 이들에게는 상대의 연봉과 집안이 어떤지, 학벌 콤플렉스가 있는 경우는 상대가 최소한 어느 대학을 나왔는지, 나이가 많은 이에게는 어리고 탱탱한 피부 등을 보기도 한다.
아쉽게도 내 부족한 부분을 상대를 통하여 메꾸려는 생각은 망상이다. 그것은 가능치도 않으며, 배우자에게 자신의 매력을 반감시키는 행위이다. 눈에 보이는 수법은 역공을 당하기 쉽다. 삶은 아쉬운 빈자리를 메꾼다고 행복이 따라오는 것이 아니다. 외형적인 모습에서의 행복스러움을 만들 수는 있다. 단기간에, 특히나 물질로 인하여 대체되는 것은 대부분 오래가지 못한다.
나의 부족함을 스스로 채우고, 자신이 누군가의 바람이 되어 상대를 감싸주는 노력을 한다면 더욱이 아름다울 것이다. 2년 차 아나운서가 재벌가에 시집을 가고 나서도 열심히 길에서 인터뷰하고, 불혹이 넘은 나이에도 현직에 있는 모습을 보는 건 왜 대한민국에서 보기 어려운 것인가. 아니면 결혼하며 기업에서 손을 떼는 재벌가 아들의 모습이라도 나오길 희망한다.
결혼하고 더 즐겁게 놀고 있는 내게 고구마 샐러드를 만들고 있는 아내가 오늘은 정말 감사하다.
내가 재벌이 아니라서 다행이다.
재벌이었으면 아내와 결혼 못 했을지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