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분은
우리가 마장 이사를 와서 마사를 다시 지을 때
공사를 해주신 인부셨다.
말들이 쉴 마방 바닥 다지는 공사를 해주신분이셨는데
그분이 한참 일을 하실적에
우린 그 옆 운동장에서
말들을 훈련시키고 수업을 했다.
점심시간이 되어 공사가 멈췄을 때
그 분은 조심스레 우리에게 부탁을 했다.
잠시 말 위에 올라가서 사진한장 찍을수 있을까요?
우린 흥쾌히 그러시라하고선
그분이 사진을 찍을수 있도록 말을 준비시켰다.
그는 먼지와 땀으로 엉망이 된 얼굴을
물수건으로 정갈히 닦고
잠시만 기다려달라시더니
본인 차로 가서 아주 멋진 썬글라스를 가져와 썼다.
우린 챙이 넓은 멋진 카우보이 모자를 그
씌워드리고서 여러 컷으로
정성스럽게 사진을 찍어드렸다.
그대로 말에서 하마시키기가 아쉬워서
내가 20분정도 간단하게
말을 가고 세우는 법. 좌우로 회전시키는 법을 교육시켜드렸더니 무척 좋아하셨고 잘 따라하셨다
그 양반은 연세가 75세였으나
일로 다져진 근육으로 인해
젊은 사람들 못지않은 밸런스가 있었다.
머리는 긴 생머리 장발이었고
연한 붉은 색으로 염색을 했다.
정갈히 빗어 모아 하나로 잘 묶었는데
그렇게 모두어 묶은 머리는
허리춤에서 늘 찰랑거렸다.
귀 좌우로는 자그마한 귀걸이를 했는데
볕에 그을이고 깊게 굴곡진 주름 가득한 얼굴
양 옆에서 반짝였다.
예사롭지 않은 외양이었고
일하시다가 이렇게 말 탄 사진을 찍고싶어하시다니
말을 무척 타보고 싶으신분이었구나.생각이 들었다.
뒤늦게 그가 말하길 본인은 말을 키워보는게 평생 소원이었다며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다고 했다.
무슨 사연이 있는걸까 궁금했지만 나는 되묻질 않았다.
한달 후
그렇게 그분은 다시 마장에 찾아와
정식으로 말을 배우고 싶으시다며
회원 등록을 하셨다.
마장엔
다양한 연령대
다양한 직업군의 회원들이 있으나
내가 그 분에게 유독 마음이 갔던건
그분이 말을 타러 오실때의 차림새와 태도때문이었다.
모습은 늘 정갈했다.
정성껏 관리되어 단정히 묶은 머리와
언제봐도 먼지하나없이 정갈하게 닦아 신은
윤기나는 검정색 구두가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누구보다도 교양있는 정중한 말투와
평생 몸에 베인듯 보이는 매너있는 모습은
내게 무척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는 마장에 말을 타러 올때마다
잘 손질된 빛나는 정장 구두를 신고
ㅡ어찌보면 정장구두는 운동하러 오는 사람 모습과 이질적이나ㅡ
누가봐도 본인이 소유한 옷중에
최고로 멋지고 좋은 옷으로 갖춰 입었다.
진중하고 교양있지만
과하지않은 타인에 대한 존중의 태도와 매너는
타인뿐 아니라 그 자신에게도
늘 해당되는 행동이었다.
그의 정돈된 차림새와 점잖은 어투와 신중한 행동에서 자연스럽게 그리 느껴졌다.
스스로에 대한 극도의 자기 존중감은
타인으로 하여금 그 분을 대할때조차
자연스레 전달되어서
그에게 건네는 말 한마디와 태도가 정중하게 대하게 되는것이었다.
그를 깊게 들여다볼 여유가 없는 누군가는
그를 대할때,
그는 그저 먼지나는 공사판에서 막일하는
연로한 일당 인부여서 분명 정제되지않은
말투와 태도로 그를 대했을것이다.
그는 또 그러한 것들에 익숙했을것이고
그는 그것 역시 상관치않으리라.
평소에 나는 그의 언행에서
인생 내공이 충분히 느껴졌기에
그런 상황일때조차
그가 전혀 상관치 않을분이라 생각했다.
내면이 탄탄하고 건강한 자기애를 가진 사람은 외부의 부정적인 영향에 절대 흔들리지 않는 법이니 말이다.
언제 보아도
그가 스스로를 존귀한 사람대하듯
정갈하게 외양을 갖추고
대화할때 드러나는 일련의 모든 행동과
말투 하나 하나가 내 눈에 보이고 느껴지는 순간,
그것은
짧은 시간에 보여지는 일시적인것이 아니라
평생동안 자신을 그리 대해 온
몸에 베인 것들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나는 그 점이
굉장히 인상적이었고
내 자신에게도
인생에 대한 고찰면에서 큰 울림이 되었다 .
탄탄하고 건강한 내면과
자신을 사랑하고 존중하는 그 태도가 만나면
타인에게 어떠한 울림이 되는지도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나는 그처럼
내 자신을 최고로 귀한 존재처럼 대하며
진정으로 내 자신과 삶을 사랑하고 있을까.
먼지와 흙투성이 속에서 고집스런 말들과 싸우며
거친 마장 일을 하는 지금의 내 삶 속에서
나는 그처럼
내 자신의 존귀함을 지키고
자존감을 잃지 않고 있는가.
평생 거친일 해본적 없이 살다가 중년이 되어서
남편 따라 나선 인생 2막 마장의 삶,
어쩌다보면
아침 일찍부터 온 몸은 흙투성이가 되어 버리고
수십번 손끝이 갈라지고
손이 거칠어지는것이 일상인
거친 마장일에 익숙해지는 동안,
고백하자면 나는
나의 내면은 자꾸 흐트러지고 덩달아 거칠어 져서
현재 내가 내 삶과 지금 내 모습을
진정 사랑하고 있는지
나는 여전히 의심이 들때가 많았다.
난 늘 그런면에서 내 자신을 의심했다.
그런 타이밍의 나에게
그의 모습과 태도는
잔잔하지만 아주 강한 여운을 남긴것이다.
짙은 안개비가 내리던 날
그는 요즘 본인이 타는 말을 데리고
마장 옆 초원으로 데리고 산책 나가
풀을 뜯겨도 되냐고 물었다.
기쁜 마음으로
그러시라 해놓고서
잠시후 초원을 내다보았다.
짙은 안개비속에서 그는
말과 어깨를 나란히 걸으면서
마치 영화속 한장면처럼 산책을 했다.
선생님.
선생님이랑 말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요.라고
내가 말하자
이 모습이 아름답다고 말씀해주는 원장님은
마음이 더 아름다운 분이십니다.
라고 그가 화답했다.
아.
이 양반에겐
어떠한 인생 스토리가 있는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