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남편씨. 고생이 많수다!
묵직한 승마가방, 그녀의 어깨. 노을 내린 마장 뜰
학교 친구중에는
그야말로 말에 미친 친구가 있었다.
이 친구는
애둘을 둔 주부인데
둘째가 돌도 아직 지나지않은 젖먹이였다.
말은 어찌된 동물인지
내 남편만 홀린게 아니었다.
젖먹이를 둔 주부도 홀렸다.
그녀는 아프리카에서 살다 왔다는데
본인 가라사대
말에 미쳐서 가족들 이끌고 제주로 왔다했다.
아.
말에 홀려서 마장 차린 내 남편은
그냥 소꼽장난이었고나.
얘는 말에 미쳐서 아프리카에서 제주로 왔다잖냐.
나는 내 처지같은 친구의 남편처지를 떠올리며
친구 남편을 동정했다.
친구 남편씨. 고생이 많수다!
친구가 아프리카에서 제주에 와서 제일 먼저 한 일은 한라산에 방목된 야생마같은 말들중
서열이 가장 낮은 말 세마리를
골라 사들인 일이었다.
한라산 말 주인은 내 친구에게 말 값을 받아
돈을 세며 생각했을꺼다.
저 여자는 말고기 식당 주인인갑다.
그렇지않고서야 사람 태우는 기능도 없고,
사람 손 한번 탄 적없는 저 말들을 도대체 어디에다 쓰려고 세마리나 사갈까.
분명 말고기 식당하는 여자일꺼야.
한라산에서 잡혀 온 말들은
말고기 식당으로 간게 아니라
친구네 집 뒷 밭에서 살았다.
내 친구는 혼자 독학한 승마 기술들을
한라산 말들에게 하나 하나 가르쳤다.
차암나. 말 팔자도 뒤웅박 팔자다.
한라산에서 풀 뜯으며 팽팽 놀던
일자 무식한 말들은
어느 날 갑자기 한라산에서 잡혀와
내 친구에게서 원하지도 않은 과외를 받았다.
이제 매일 밥 먹고 하는 일이라곤,
내 친구가 시키는 해괴망칙하고 요상한 것들을
(말들 생각에)
배우고 해내야 하는 팔자가 된 것이다.
말도 배운 놈이 잘한다.
승마는 사람도 배워야 하지만
그 사람을 태우는 말도 배워야 한다.
말과 사람.
배운 두 놈이 만나야
말타기가 아닌 제대로 된 배운 승마를 하는것이다.
친구는 야생마같은 말들을
강아지마냥 사람 손길에 순응하는 말로 가르쳤다.
사람이 주는 신호를 가르쳐서
말이 깨닫게 하고
그에 응해 반응하는 법을 가르쳤다.
그리고 스스로도 꾸준히 배우며 말들을 조련했다.
미국.영국 유명 스타 말 트레이너들의
유료 채널을 구입하여
승마와 말 조련을 독학하는 친구였다.
말에 홀리면 그 다음 단계는
자연스레 말에 미치게 되는 것이다.
친구는 말에 미쳐도 단단히 미친 친구였다.
언젠가 그녀의 독학 공부자료가 궁금하여
내가 물었더니 그녀는 우리 마장에 놀러올때
승마가방 가득
ㅡ진짜 아주 빽빽하게 가득!ㅡ
승마.말 조련 DVD와 책과 자료들을 담아왔다.
왐마!
많기도 해라.
우리 마장에 온 김에
친구에게 내 말 혜성이를 타보라 내주었다.
그리고 저번에 내가 친구에게 말했다시피
녀석은 머리를 치켜드는 버릇이 있어서 내가 그 버릇을 잡는 훈련중이라 했다.
안장을 얹어 말 탈 준비를 마치고
내 말 혜성이를 워밍업시키더니
친구는 약 30분간 말을 탔다.
말에서 내린 후,
그녀는 방언이 터진 성도님마냥
입에서 본인이 독학한 말 조련 노하우를
좔좔좔좔 읊어댔다.
혜성이가 재갈을 부드럽게 물게 하는 법.
머리를 숙이게 하는 법.
뒷다리를 쓰게 하는 법.
칭찬과 양보에 길들이는 법.
기타등등등등의 기술을 내게 쏟아냈다.
평소 학교에서 그녀는
누가 묻거나 필히 대답해야하는 순간이 아니면
말수를 극도로 아끼는 친구였다.
학교에서 그녀의 캐릭터는 침묵하는 자였다.
늘 수줍게 고개를 살짝 숙이고
말 위에서 엄청난 욕을 들을 때도 침묵하는 자였고
곧 죽어나갈 것 같은 말똥 삽질 순간에도
고요하게 침묵하며 삽질하는 자였다.
누가 묻길했나
따지길 했나
그런 그녀가 봇물터지듯 쏟아낸
무수한 조련 기술법에
나는 입을 떠억 벌리고서
그녀의 말들을 머리속에 주어담았다.
ㅡ우와아아. 오뭬. 아아.오오. ㅡ
그녀 방언에 추임새를 넣으며!
우리 둘 모두 운동에 집중했던 시간이 지나고
사무실에서 차한잔을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그녀는
한라산 말을 산 이야기. 말을 탄 이야기. 말타다가 떨어진 이야기. 말 훈련하는 이야기.
말 먹이는 이야기. 도망간 말 이야기. 다친 말 이야기. 여우처럼 영리한 말 이야기. 바보같은 말 이야기 등등등을 했다.
말에 미친 자들 둘이상 만나면
그들은 늘 말 얘기만한다.
주식.부동산.코인 이런건 1도 관심 없다.
아마도
북한 사는 정은이가 핵 미사일 버튼을 눌렀다해도
핵 미사일에 사람이 어찌 죽어나갈까 궁금한게 아니라 핵 미사일이 떨어지면 말은 어떻게 되부까.가 궁금한게
말에 미친 자들인 것이다.
그녀는 어린이 집 다니는 막내가 돌아올 시간이라며 가야겠다고 말했다.
어린이 집 막내가 집에 돌아 와서 망정이지
어린이 집에서 하루 1박이라도 할 예정이었더라면
내 친구는 하루 종일 말 이야기를 하면서
내 마장에서 날을 셀 판이었다.
그녀의 막내가 어린이 집에서 돌아와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녀가 자리를 뜰때
엄청난 교육자료가 든
커다랗고 묵직한 승마 가방을
끙차! 힘주어 들어올린 후 어깨에 메고서
언니 저 갈게요.했다
손을 흔들며 사라지는
그녀의 뒷모습은 딱 이랬다.
세상 어느 누구도 그가 고수의 검객인줄 모르는,
일명 침묵하는 자. 고수 검객이
일순간 등 뒤 짊어진 칼자루를 뽑아 세상을 휩쓸어
세상을 평정한 뒤.
다시 칼날을 쉐에애엑 소리를 내며 칼집에 밀어넣고 한 손을 뻗어 검지 끝으로 정수리를 한번 향했다가 하늘로 탁! 튕기며
ㅡ그럼.전.이만!ㅡ하며
산속으로 유유히 사라지는 모습과 흡사했다.
그녀는 이순신 장군이 옆구리에 장도를 차듯이
장도같은 묵직한 승마가방을 어깨에 두르고
애기 데릴러
그럼. 전 이만! 하며
노을 내려앉은 마장뜰속으로 사라졌다.
진짜배기 홀스 위스퍼러가
내 옆에 있었구나!
오모나!
이게 왠 일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