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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안 Oct 08. 2024

장발 소년 ㅇㅇ이. 3년만에 머리카락 자르다.

조선시대 5대5가르마. 새까만 얼굴. 종잡을수 없는 장난끼

우리 집 첫째가 시골 초등학교를 다닐 때

 반 친구 중에 ㅇㅇ이 라는

남자아이가 있었다.


 녀석과 첫째는

여섯 살에서 일곱 살 넘어가던 해에

처음 만났으니

초등 졸업 때까지 거의 8년째 한 반이었다.

작은 시골학교라 반 아이들도 대부분

8년 동 반이었다.


첫째가 여섯 살 되던 해에 이사를 왔을 때,

ㅇㅇ이는 유치원에서 짱을 먹고 있었다.

 ㅇㅇ이는 덩치가 크고 늘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이 녀석의 무표정한 모습 뒷면엔

장난끼가 다분했던 걸 생각하면

얘가 지금 무슨 꿍꿍이 생각을 하고 있나.

항상 궁금한 녀석이었다.


녀석은 덩치로 보나 표정으로 보나

분명 보스가 가진 포스가 있었다.

대부분의 유치원 삐약삐약 병아리들은

남자애들이고 여자애들이고간에

ㅇㅇ이의 아우라 기가 죽어서

아무도 감히 도전장을 내밀지 못했다.


첫째가 유치원에 간 첫날부터

ㅇㅇ이를 비롯한 코딱지 삼인방 남자 녀석들이

새로 전학 온 첫째를 주시했다.

요놈들은 이제 막 전학 온

첫째보고. 야. 오리야! 오리탕!!

하면서 별명을 어 부르며 놀려댔다.

게 시골 유치원 일진 아이들이

새로 나타난 멤버를 견제하면서

서열을 정리하는 방식이었던 모양이었다.


유치원 전학 첫날

오리탕 별명 폭탄을 맞으며 신고식을 치룬 첫째는

며칠을 벼르고 있다가

하루는 작심을 하고 유치원엘 갔다.

엄마. 나 오늘 ㅇㅇ이랑 맞짱 뜰 거야!


그렇게 단단히 각오를 하고 유치원에 간 첫째는

코딱지 삼인방이 오리탕!이라 또 놀리자

순간 두툼한 다리를

ㅡ얘 다리는 늘 두툼했다. 백일 때부터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두툼하다.ㅡ

ㅇㅇ이 얼굴을 지나 머리 위로

번쩍 치켜들어 부우웅 소리를 내며

앞차기를 시도한 모양이었다.


방심한 사이 첫째에게

(참고로 우리 첫째는 딸이다.

어... 일단은 아들 같은 딸이라 해두자!)

일격을 당한 코딱지 삼인방은

순간 셋 다 동시에 움찔!! 하면서

뒤로 주춤 몇 발자국 물러섰다.


움찔하면서 뒤로 주춤 물러섰다는 것은

팽팽한 심리전에서 끝났다는 얘기였다.

그 한방으로 코딱지 일진 삼인방 오리탕 별명 스토리는 종결됐다.

종종 그들이 다시 별명을 부를라 치

첫째는  코딱지 삼인방 앞에서 늘 앞차기를 했다.


암튼 그랬던 녀석들이 5학년이 되었다.


7년 넘도록 한 반이니

얘네는 누가 뭘 좋아하고,

뭘 잘하고, 뭘 싫어하는지 매우 빠싹했다.

그리고 오누이들처럼 토닥토닥 진심 지냈다.


그러는 ㅇㅇ이는 5학년때까지도 머리를 길렀다.

삼 학년 때부터 기른 머리이니

그 길이는 어깨 밑에서 찰랑거렸다.

오해할까 봐 노파심에 다시 덧붙이자면

참고로 ㅇㅇ이는 듬직하니 잘생기고 아주 과묵한 남자아이였.

떡 두꺼비 같은 아들의 전형적인 외양이라면

상상이 되리라.


이 녀석이 어떻게 해서

머리를 길기로 작정했나 하고

나는 매우 궁금했었는데

ㅇㅇ이가 말해준 이야기를 들어보니 사정은 이랬다.


삼 학년 운동회 때 이어 달리기를 했는데

달리기 선수였던 ㅇㅇ이는

부아앙 하고 쏜살같이 달릴 적에

눈썹밑으로 내려온 앞머리가

바람에 딱 5대 5 가르마를 만들며

이마가 시워언 해지더란다.


음..

달리기와

바람과

5대 5 가르마와

이마의 시워언해짐과

머리 기르겠다는 순간 다짐의

리적 연관성이 도무지 떠오르질 않으나!


여하튼,

그래서 ㅇㅇ이는 그 순간 결심 했단다.

아! 그래! 머리를 길러야겠다!

그리고 엄마에게 그날 결연하게 선언했다.

엄마! 나 머리 길 꺼야!

잠시 ㅇㅇ이 엄마는 생각했다.

( 녀석이 뭔 바람이 불었나?)

잠시 고민을 마친 ㅇㅇ이 엄마는 평소 그녀의 심성처럼 마음 좋게 아주 가벼운 마음으로 답했다.

그래. 한번 길러봐라!


그러나

그것이 일 년, 이 . 삼 년이 지난 후에도

엄마. 나 머리 길 꺼야.

선언이 지켜지리란 간과한 것이다.

아니. 상상이나 했겠는가.

삼손도 아닌 아들놈이 머리를 3년 동안 길 줄이야.


그때부터 쭈우욱

ㅇㅇ이는 머리를 길렀다.

한 번도 자르지 않았다.


머리가 자라서 어깨에 찰랑이고

앞머리가 눈썹밑으로 내려와도

그의 결연한 의지대로 유지했다.


간혹 반 여자 친구들에게

ㅁㅁ아. 나 머리핀 좀 빌려주라!

하면 심성 착한 반 여자 아이들은

. 여깄어. 하면서

ㅇㅇ이에게 핀이나 머리 고무줄을 빌려줬다.


그러면 ㅇㅇ이는 5대5로 나눈 앞머리를 바싹 모아

야무지게 핀을 치르고

더운 날이면 고무줄로 한 손에 머리를 바싹 당겨 모아 꼭 모든 다음에 조선시대 꽃분이처럼

고무줄로 칭칭 묶었다.


여느 여자아이들보다도 야무지게

머리에 핀을 찌르고 묶고 했다.

가끔은 여자 아이들이 사이좋게 ㅇㅇ이를

여동생 머리 묶어주듯이

자기들 앞에 앉히고서

ㅇㅇ이 머리를 묶어주거나 핀을 찔러주거나 했다.


이제는 반 아이들도. 담임 선생님도

ㅇㅇ이의 머리 스타일을 존중하며

별일 아닌 양 바라봤다.

전교생 모두가 그랬다.

교장선생님이하 선생님들 대부분이 그랬고.


ㅇㅇ이는 태고적부터 머리를 길러온 아이처럼

ㅇㅇ이의 장발은 전교생. 전 교직원 샘들이

당연하게, 익숙하게,  자연스럽게 생각했다.

딱 한 사람!

공포의 카리스마 최샘을 빼고 말이다.


카리스마 최샘은 ㅇㅇ이를 만날적마다 말했다.

고ㅇㅇ이!

네?(후덜덜)

머리카락 잘라라!

아..네....알겠습니다아.

하며 ㅇㅇ이는 카리스마 최샘을 피해

얼릉 저만치 도망을 갔다. 매번.

잘 빠져나갔다.그동안.


ㅇㅇ이는 ㅇㅇ이 엄마에게

다시 한번 선언을 다.

엄마! 나 중학교 가서

머리 잘라야 되므는 중학교 안 갈 거야!


이쯤 되니 맘 좋은 ㅇㅇ이 엄마도

슬슬 인내심의 한계를 느꼈다.

장장 3년을 인내하며 참아온

아들놈 긴 머리 꼬락서니였다.


ㅇㅇ이 엄마는 고무줄로 짱짱하게 묶은

아들놈 뒤통수에 대고 협박했다.

너어. 이런 식으로 나오면

너 자는 동안 가위로 머리카락 확! 잘라 분다!


협박은 협박으로 유효했다.

ㅇㅇ이는 자기 자는 동안

혹시 엄마의 급습을 당해

소중한 머리카락을 잃게 되는 불운을 겪지 않기 위해 일 밤 머리카락 수호 레이다를 켜고 잤다.


ㅇㅇ이는 잘 때마다

뒤통수 밑으로 머리카락을 쫘악 하나로 모둔 다음

뒤통수 밑과 베개사이에 소중한 머리카락을

잘 고정시킨 상태로 늘 잔다고 다.

자는 사이 잠시의 방심도 없었고

한치의 자세 흐트러짐 없이

자는 동안 엄마 가위질을 방어했다.


그렇게 무사히 하루 하루 장발을 잘 지키던

ㅇㅇ이는 6학년이 된 첫날,

절대로 피하고 싶은 존재

카리스마 최 샘을 담임으로 만났다.

그것은 ㅇㅇ이 장발이 당장 잘려나갈수도 있는

아주 긴급한 사태임을 ㅇㅇ이는 직감했다.


카리스마 최샘은 담임으로서 첫날 기선 제압을 위해 그렇지않아도 중저음 목소리를 한껏 깔고서 아이들 한놈 한놈 째려보면서

잔뜩 긴장한 녀석들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말했다.


내가 올해 니네 담임이다.

니네!

올 해 행복해지고 싶냐. 불행해지고 싶냐.


행복해지고 싶어요.(후덜덜)


니네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1년동안 니네는

행복과 불행 사이를 왔다갔다 할꺼다.

우리 반에서 절대 해서는 안되는 행동이 있다.

이러 이러한 행동이다.

알았냐.


네(후덜덜)


김ㅇㅇ이!

네?(후덜덜)

똑바로 앉아라.

네.(후덜덜)


정ㅇㅇ이!

네?(후덜덜)

딴짓 하지 말고 잘 들어라.

네.(후덜덜)


카리스마 최샘이 담임 첫날

한놈 한놈 째려보면서

니네. 일년.행복.죽음과 같은 단어를 반복하며

목소리를 깔고서 군기를 잡을 적에

그의 눈에 조선시대 꽃분이 머리를 한 ㅇㅇ이가

눈에 들어왔다.


그와 ㅇㅇ이 장발 단발령 공격과 방어전 에피소드는 ㅇㅇㅇ가 머리를 기르기 시작한

초 3부터였으니 무려 3년동안 이어지고 있었다.


카리스마 최샘이 담임이라고 나타난 순간

ㅇㅇ이는

아 C. 망했네. 내 머리 끝장이네.생각했다.


고ㅇㅇ이!

네?(후덜덜)

머리카락 당장 잘라라.

엇...저..ㅆ.쌔앰.

제가 이 머리는...못 ㅈ.ㄹ....


고ㅇㅇ이!!

네?(후달달덜덜덜)

긴 말 안한다.

잘라라.


어...저....쌤

저희 엄마가 바빠가지고 미용실 데꼬갈 ㅅ.시간이

어없어가지ㄱ...


고ㅇㅇ이!!!!!!

네?(후달달덜덜덜덜달달달ㄷㄷ)

엄마가 바쁘시면

니 혼자 버스타고 시내나가서 미용실 가면 된다.

잘라라.


아...저...쌔앰..

어...

그..니까..

저희 형이 중학교 이..입학식이라 바빠가꼬...

제가 시내에 못..나.ㄱ..갈ㄲ...


ㅇㅇ이!!!!!!!!!!!!!!!!!!!!!

네?(ㅜㅜ 후달달달달덜덜 ㅜㅜ 후덜덜덜)

형 입학식 끝났다.

언제까지 자를꺼냐.

말해라.


식은 땀을 흘리며 3년간 긴 머리를 지키기위해

최선을 다하던 ㅇㅇ이는

카리스마 최샘이 주는 압박을 견딜수는 없었다.

마침내 ㅇㅇ이는 대답했다.


아..ㅈ..저....금..금요... 금요일까지요.


고ㅇㅇ이!

네?(시무룩 후덜덜 시무룩 후덜덜)

지켜본다. 금요일이다.

네..


중학생 때

머리카락 잘라야 되면 중학교  안 갈 거야.

했던 ㅇㅇ이 선언은

너 계속 이렇게 나오면 호적에서 파 버리겠다는.

엄마의  초 강수 협박은 어찌 버텨볼만 했다.

그러나

공포의 카리스마 최샘을 담임으로 만나는 순간

끝장임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카리스마 최샘에게 버틴다는것은

일년내내 매일 매일 한결같이

고ㅇㅇ이!

머리카락 잘라라! 소리를 들어야 됨을 뜻했다.

ㅇㅇ이는

이제  이상 버틸 수 없음을 알고

두 발로 자진해서 미용실로 가

닭똥같은 눈물을 흘리며 머리카락을 잘랐고

ㅇㅇ이 엄마는 뎅강 뎅강 잘려나가는

아들놈 머리카락을 희열을 느끼며 지켜봤다.


학교 행사때 학교가서 ㅇㅇ이를 보니

긴 장발은 싹둑 잘려나갔고

군대 입대를 둔 청년처럼

반 까까머리가 되어 있었다.


미용실을 따라간 ㅇㅇ이 엄마가

혹여나 ㅇㅇ이가 머리를 안 자른다고 버틸까 봐

미용실 원장님에게

군인처럼 아조 바싹 잘라주세요.

신신당부했던 것이다.


3년 만에 머리 자른 ㅇㅇ이 인물이

어찌나 훤칠한지

나는 ㅇㅇ이 얼굴만 봐도 웃음이 나왔다.


첫째랑 얘기할 때

ㅇㅇ이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나는 늘 그렇게 말했다.

ㅇㅇ이 걔는 커서 뭐가 돼도 될 놈이다.

그럴 때마다 첫째도 맞장구쳤다.

맞아. 맞아.

ㅇㅇ이는 뭘 해도 잘 살 거야.


ㅇㅇ이는 얼마나 멋진 20대 청년이 되었을까.

아마도 녀석은 이제

평생 장발은 하지 않을 거다.

엄마의 온갖 협박을 이기며 3년 내리 꿋꿋하게 해 봤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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