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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안 Oct 12. 2024

노인네가 무슨 돈이 있다고.

통화하는 엄마의 젊은 등선.낡은 만원권 몇 장

언제봐도 아늑하고 평온해 보이는 강과

우거진 나무로 둘러쌓인 숲 사이에

동그랗게 엎드린 집은

내 유년시절 추억을 함께 했던 외갓집이었다.


방학이 되면

나는 내 위로 오빠 둘과

버스를 몇 번씩이나 갈아타고

 곳으로 가서 신나는 방학을 보내곤 했다.


버스를 몇번 갈아타고 내려

쪽배를 타고 부드러운 강을 건너

콧노래 부르며 산길을 한참 걸어가

저어 멀리 외갓집 싸릿문 울타리가 보일 즈음엔

나는 할머니하고 소리치면서 달려갔다.


시골 촌로인 할머니는

싸릿문 밖을 내다보며 이제나 저제나하면서

아주 이른 시간부터 우리를 기다리다가

우리가 나타나면 종종종종 달려나오셔서

우리를 안았다.


깊은 산속동네에서

혼자 외롭게 살던 할머니는

한번 이야기를 시작하시면

어찌나 재밌게 풀어내시는지,

어린 나는  할머니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을 무척 좋아했다.


소쩍새가 우는 깊은 밤이되면

졸졸이 누워있는 우리를 토닥이시며

어릴적 엄마 얘기라던가.

첫째 자식인 우리 엄마를 시집 보내놓고서

어찌나 허전하던지 울었다.와 같은

이야기들을 하셨다.


산에 올라가면

마가 시집 가 살고 있는 이 보일리 만무했지만

늘 그 방향을 한참 쳐다 보셨다는 얘기도 하셨다.

우리 애가 저기서 살고 있겠구나.생각하면

눈물이 나더라 하셨다.


그 얘기를 들을때 나는

할머니가 뒷산 정상에  올라가

그렇지않아도 작은 키로 목을 쭉 빼고

엄마가 시집간 방향을 향해 멀리 내다보는 모습을 저절로 상상했다.

할머니가 엄마 얘기를 해주신 것중에

나는 그 이야기가 가장 인상깊었다.


첫째 딸을 시집 보내고 난 엄마의 마음이 어찌나 절절하게 느껴졌던지

나는 할머니 이야기에

네.그러셨구나. 대답하면서

머리속으로는 장면이 저절로 그려졌다.


할머니의 이야기속에는 항상

나는 평생  알수 없었을,

엄마의 젖먹이 아기 시절과

엄마의 어린 시절과

아버지에게 시집오기전

꽃처럼 예쁜 시절 엄마의 시간들이 들어있었다.


그 시간들이 어린 나에게는 굉장히 특별했다.

나에게 엄마란 존재는,

태어날때부터 그 자리에 있는 존재여서

엄마가 내 엄마가 되기전

애기적 신ㅇㅇ.

어린 신ㅇㅇ,

학생 신ㅇㅇ,

아가씨 신ㅇㅇ씨의 삶이 있었으리라고는

어린 나는 생각조차 못했다.


엄마가 엄마가 되기전,

신ㅇㅇ씨성장기와 생동감 있는 삶의 얘기는

오로지 엄마에 대한 사랑이 가득했던

외할머니 이야기를 통해서만 알수 있는 것이었다.


엄마에 대한 이야기들속에 담겨 있는

할머니의 특별하고 깊은 사랑이라는것은,

이야기를 듣는 어린 나에게도

 고스란히 찡하게 전해졌다.

맞아.

엄마도 엄마가 있었지!

할머니 얘기를 들을때마다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이제 방학이 끝나갈때쯤

우리가 집으로 돌아가는 날이 되면

당신이 홀로 여름 내내

밭을 기어다니며 김을 매어서 길러낸,

콩이나 고추가루.들깨같은 곡식들을

차곡 차곡 싸 주셨다.


긴 방학을 외갓집에서 보내고

할머니가 싸주신 보따리를 들고

나는 오빠들을 졸졸졸 따라서

다시 버스를 갈아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와 짐을 풀때쯤엔

엄마는 외할머니께 항상 전화를 드렸는데

그때마다 할머니는 꼭 그렇게 말씀하셨다.

에미야.

그 보따리 맨 밑에 내가 돈을 쫌 넣어 놨다.

엄마는 할머니가 그렇게 넣어둔

꼬깃 꼬깃한 만원짜리 몇 장을 볼 때마다

시골 노인네가 무슨 돈이 있다고.하셨다.


외할머니가

우리집을 오실 일은

아주 가끔 있는일이었는데

할머니는 하룻밤이나 이틀밤을 묵으셨다.

아버지와 엄마가 몇일 더 묵고 가시라 붙잡아도

누군가에 쫓겨나가기라도 한듯이

항상 그렇게 부랴부랴 집으로 돌아가셨다.


할머니가 집에 도착하시면 전화가 왔다.

에미야. 집에 잘 왔다.

거기 전화기 밑에 내가 돈 좀 놓고 왔다.

전화를 끊고서 전화기 밑을 뒤집어 보면

꼬깃 꼬깃한 만원짜리 몇 장이 놓여 있었다.

엄마는 그 돈을 들고서

시골 노인네가 무슨 돈이 있다고.했다.


얼마전에는

 년만에 친정 엄마가 집에 다녀가셨다.


서울로 돌아가는 공항에서

전화를 걸어온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ㅇㅇ아. 

안방 침대옆 책 밑에

봉투 넣어놨으니 꺼내봐라.

애들 필요한거 사줘라.


엄마는

오만원권 몇 장을 봉투에 담아

책 밑에 넣어 두고 가셨나보다.

봉투에서 돈을 꺼내다가

나도 모르게 혼자 중얼거렸다.

노인네가 무슨 돈이 있다고.


봉투에 든 돈을 꺼내다

구깃구깃하게 우겨 넣어진

오만원권 몇 장에 눈물이 핑 돌았다.

노인네...

당신 필요한데나 쓰실 일이지.


아마도

엄마는 늘 그랬던것처럼

우리 집을 떠나기전

방에 들어가 가방에서 돈을 꺼낸후,

나에게 들키면 못줄새라

부랴부랴 봉투에 돈을 우겨넣고

책들 밑에 단단히 숨긴 다음

당신 마음 흡족하게 집을 떠나셨을 .


이상했.


엄마가 그렇게 남겨두고 

돈을 볼 때마다

나는 매번 눈물이 난다.


어쩌면

아마도

내가 어릴적

할머니가 엄마에게 몰래 몰래

고가신 만원 몇 장을 볼 때마다

엄마도 그러셨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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