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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안 Sep 28. 2024

이 아이의 손을 좀 잡아주시겠어요?

동그랗게 움추린 어깨. 짙은 썬글라스. 단호한 팔장

시골 초등학교 가을 운동회,

이학년 아이들이 엄마랑 함께 하는

풍선 터트리기 레이스가 이제 막 시작될 참이었다.


엄마 손을 잡고서 줄지어 경기 입장을 기다리고 서있던 아이들 틈새에 ㅇㅇ이가 혼자 서 있었다.

ㅇㅇ이는 엄마가 없는 아이로 조손 가정 아이였다.

연로하신 할머니는 ㅇㅇ이와 함께 경기를 할수가 없으셨던 모양이었다.당연했다.

그렇게 ㅇㅇ이는 엄마 손을 잡고 선

아이들 틈새에 껴서 뻘쭘하게 홀로 서있었다.


둘째 손을 잡고서 뒤를 돌아보니

ㅇㅇ이가 서있길래

아. ㅇㅇ이 할머니는 이 게임을 같이 못하실텐데

ㅇㅇ이를 어쩌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없는 아이들은 어쩌라고.

선생님들은 어쩌자고 아이와 엄마 짝꿍 게임을 만든걸까.

나는 엄마없는 아이들이 여럿인 아들 반 친구들이

생각나서 운동회 프로그램을 짠 죄없는 선생님을 잠시 탓했다.


그때였다.


그 아이를 본 담임샘은 아차 싶으셨던지

급한대로  아이들 근처에 서 있던

다른 학년 어떤 학부모에게 다가가 급히 말했다.


선생님은 팔짱 낀 그 엄마 팔을 잡고서

그녀 옆에 서있는 ㅇㅇ이가르키며 말했다.

ㅡ어머니. 저 아이 엄마가 오시지 않아서 그러니

아이 손을 좀 잡아주시겠어요?


작은 시골학교다 보니 당시 나는 전교생 학부모 얼굴 대부분을 안다 할수가 있었는데, 그런 내가 보기에 그 엄마는 전학생 학부모였는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그 엄마는 짙은 화장에 화장보다 더 짙은 썬글라스를 끼고 서 있었다.

선생님이 다급하게 부탁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팔짱을 낀 채 무표정한 얼굴로 ㅇㅇ이를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했다.

ㅡ저 아이가 나랑 무슨 상관이라고

내가 저 아이 손을 잡아요? 나 쟤 몰라요. ㅡ

라는 표정으로.


ㅇㅇ이는 그렇지않아도 친구들과 친구들 엄마 틈새 구석에서 동그랗게 어깨를 움추리고 손톱을 물어뜯으며 시무룩하게 서있었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ㅇㅇ이는 얼굴이 실룩거리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훌쩍 훌쩍 울기시작했다.


상황과 낯선 학부모의 매정한 모습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던 나는 순간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내가 한손은 둘째를 잡고

한손을 내밀어 그 아이를 달랬다.

ㅇㅇ아. 울지마. 괜찮아. 괜찮아.


생각지도 못한 정한 학부모 모습에 당황한 선생님은 급한대로 본부석으로 달려가시더니

4학년 여자샘을 모셔오셨다.

맘 좋으신 그 선생님은 그 아이를 달래면서

ㅇㅇ아. 괜찮아. 울지마. 선생님이랑 뛰자. 했다.


이런 나를 보고서

어떤 이는 그 일이  너와 무슨 상관이냐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 엄마가 상황을 몰랐다 하더라도

ㅡㅇㅇ이는 엄마없는 아이라는걸ㅡ

엄마 손잡고 서있는 아이들 사이에

혼자 서있는 ㅇㅇ이 모습하나 만으로도

같은 학부모로서 ㅇㅇ이 손을 잡아줄수

있는거라고 나는 생각했었다.

물론 알고 있다.

세상사람들이 다 내맘같지 않다는걸.


내 생각과는 너무 다르게

그 엄마는 너무 매정했고 아주 노골적으로

내 아이도 아닌데 내가 무슨 상관입니까.라는

표정이었다.

노골적인 그녀의 표정과 행동에서 순간 분노를 느꼈던 모양이다.

오지랖이라해도 어쩔수없다.

그런 감정을 느끼는게 나란 사람이니 말이다.


이런일은 보기 드문 광경이었다.

학교 규모가 워낙 작으니   아이랑 함께 생활하는 아이들에 대해 학부모들은 그 아이들의 개인사를

대충 다 알고 있었다.


특히.

운동회같은 날엔 어떤 아이가 가족없이

혼자 있는지,

북적거리는 가족들사이에서 어떤 아이가 점심 밥을 못 먹고 있는지,

엄마들은 함께 마음을 썼고 그 아이들을 너나없이 챙겼다.

그러나 그땐 예전 그 다정하고 자상했던 학부모 멤버들은 거의  졸업을 한 상태였다.


그날 운동회에서

조손 가정. 부모가정이 유난히 많은

둘째 반 아이들을 바라보다가

나는 혹시나 아이가 혼자인가 싶어서

아이들을 볼때마다 물었다.


ㅇㅇ아. 할머니 오셨니?

ㅁㅁ아. 점심 누구랑 먹어?


나의 오지랖이 과한건지는 모르겠으나

온가족이 총출동해야하는

매년 시골 학교 가을 운동회 날이 되면

나는 그런 아이들을 보면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혹여나.

엄마.아빠.할머니 할아버지가

총출동해야하는 운동회때문에

여린 아이들 마음에

혹여나 상처라도 생기면 어쩌나 싶어서였다.


사람들 마음은  다 내맘 같지는 않나보다.

꼭 다급한 선생님 부탁이 아니었더라도

그 아이 모습을 보았다면

팔장을 풀고 먼저 손을 내밀어

엄마 안 오셨니? 이모랑 같이 뛸까?

할수는 없었던 걸까.


아이들 속에서 잔뜩 움크린채로 눈물을 글썽이며 주눅이 들어있던 ㅇㅇ이와

하나도 멋지지 않았던  짙은 썬글라스 너머

썬글라스처럼 어둡고 냉정한 표정,

자물쇠처럼 채워진 그 여자의 팔장은

운동회라는 단어를 떠올릴때마다

두고두고 내 기억속에서 생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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