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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안 Sep 24. 2024

시험장에 나온 빨간 연미복과 그의 한라마를 보며.

부서진 수직 장애물. 헛도는 연미복. 볼품없는 작은 한라마.

시험장 연습 마장에 나온

그 사람과 말은

단연 눈에 띄었다.


그 남자는

마른 체구에 비해 유난히 헐렁거리는

강렬한 빨간색 연미복 차림이었고

그가 탄 말은

체고가 낮고

체구는 자그마했으며

회색과 검은 털이 중간 중간

얼룩을 만든 흰색 한라마였다.


그가 시험 파트너 말로 데리고 나온  한라마는

크기가 아주 작았다.

다른 시험자들이 데리고 나온 말들에 비한다면

말 어깨의 높이 차이가 60센티정도 차이가 났다.


그를 제외한

모든 시험자들은

승마 규정 대회 복장 차림이었는데

보통

상체 라인이 드러나는

잘빠진 검정색 자켓과

흰 바지, 흰 실크 넥타이와

흰 장갑과 검정 승마부츠를 신고 있었다.


다른 시험자들이 탄 말들은

모두 관리가 잘된

더러브렛이나 웜블러드 종이여서

윤기가 반지르르하고

적당한 근육이 잘 만들어진 모습이었다.


그러한 이들과 그러한 말들 사이에서

빨간색 연미복차림에

그가 데리고 온 볼품없어보이는

한라마는

의도하지 않았지만

모든 이들의 시선을 잡아두기에 충분했다.


본 시험장으로 들어가기전에

시험 순서가 다가오면

순서대로 연습마장에서

워밍업과 장애물 점핑 연습할 시간을 준다.


나는 맨 마지막 번호였으므로

앞 사람들의 워밍업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연미복과 그의 한라마가

연습 마장으로 들어섰다.


처음 그 팀을 본 순간,

작년에 시험을 치뤘던 이가

작년 시험때를 회상하며 말했던게 생각이 났다.


이러한 차림새로

이러한 말을 타고

시험을 치르러 온 사람이  있더라,

모양새가 정말 웃기더라. 했!


그의 마른 몸에 비해

심하게 헐렁거리고

과하게 아주 강렬한 빨강색 연미복과

볼품 없어 보이는 그의 말에

나는 단숨에 시선을 빼앗겼고

그들의 연습 모습을 호기심있게

지켜보았다.


왜냐하면

그가 말하기를,

시험전 연습마장에서

이러한 차림새 한 이가

자기 한라마를 데리고

장애물을 뛰려하는거 같더라.

그런데 장애물 앞에서 말이 딱 서버리거나

어찌 어찌 점핑하는가 싶으면

쌍둥이 수직 장애물 옥사 사이에

말 다리가 딱 끼는데

진짜 웃기더라.했기 때문이다.


이제

빨간 연미복은 워밍업을 하더니

점핑을 하려는 모양이었다.

고삐를 잡은 오른쪽 손에

채찍을 잡았고

체고가 낮은 한라마때문에

큰 키에 그의 긴 다리는 비정상적으로 보여

그가 탄 말의 다리 중간쯤

내려와 있었다.


장애물 앞으로 말을 달려서

장애물 진입을 시도했다.

첫 비월(장애물 넘는것) 시도였다.


장애물을 향해

쫑쫑거리며 달려온 한라마와

그 위에 앉은 연미복의 시선은

쌍둥이 수직 장애물  옥사에 온통 집중되었다.


말이 땅을 박차고 테이크 오프 하자마자,

점핑 높이가 낮아

포물선도 그리지 못하고

장애물 사이에

짧은 말의 다리가 퍽.하고 끼어버렸다.


동시에 장애물 구조물

횡목들과 지지대들이

와르르 부서져내렸다.


그는 무안한 표정으로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며

다시 말을 돌려 장애물 진입을 시도 했다.


장애물 점핑때 말 타는 그의 자세를 보니

정식으로 점핑을 배운적이 없이

자기 말을 데리고

자기 방식대로

점핑을 연습해온 것처럼 보였다.


장애물을 향해 뛸때

충분히 말을 달리게 만든 다음

장애물 앞에선

살짝 어깨를 뒤로하고

그대로 말 점핑 리듬을 따라가야하는

비월 방법을 그는 알지 못했다.

그는 분명 독학으로 점핑을 연습해온듯 했다.


비월 전 장애물 앞에서

급한 그의 마음처럼

그의 상체는 과하게 앞으로 숙여졌다.

다리의 힘과 신호로 말을 추진하는게 아니라

채찍으로 애써 말을 몰아

장애물 앞으로 어찌어찌 말을 끌고가는

그의 모습이

그래 보였다는것이다.


그의 두번째 점핑 시도는

말이 장애물을 거부해서

말은 장애물 앞에서 딱 서버렸고,

이번에는 그가

장애물 위로 날아가 낙마하며

다시 장애물 구조물을 부서뜨렸다.


그의 말은

내가 보기에

상당히 그에게 미안한듯한 표정으로

장애물 앞에 서서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그를 내려다보았다.

그 자리에서 한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고서.


그는 빨간복 연미복에 묻은

모래를 툭툭 털어내더니

다시 말위에 올라가

세번째 점핑 시도를 했다.


그때 그를 계속 지켜보던 나는

나도 모르게 속으로

연미복과 그의 말을

응원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꼭 성공시켜봐요.

할수있어요!


그러나

그의 세번째 시도 역시 실패했고

다시 그가 낙마를 했다.

점점

지켜보는 내맘도 안쓰런 마음이

일었다.


아니 어쩌면,

지인이 작년에 이런 웃긴 팀이 있더라 말했던게

바로 이팀이구나.하고

처음 깨닫는 순간부터

나는 그들을 응원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 팀과 함께

장애물 점핑 연습을 하던 이들은

대부분 학교 선배들이었다.


그들은 전문 승마선수들마냥

잘 차려입은 모습으로

멋진 말과 팀이 되어

장애물을 물 흐르듯

아름답게 뛰고 있었다.


연미복과 한라마는

그들사이에서

이질감이 느껴질 정도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작년 시험에 이어

올해 다시 시험에 도전하는

그의 도전정신이 내 마음을 움직였나보다.


장애물 앞에서 말과 함께

 집중한 그의 표정에서

진지함과 신중함도

그대로 고스란히

내게도 전해졌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나는 그 팀을

응원하고 있었다.


나는 사실

그의 네번째 실패를 지켜본 후,

그가 그 말을 데리고서

어찌 연습을 해왔을지 상상을 하기 시작했는데

참 신기한것이

그동안 그가 연습했을 모습이

너무나도 선명하게 그려졌다.


빨간 연미복은

장애물 점핑을 모르는

그의 말 한라마에게

평지 횡목 건너기 부터

하나씩 가르쳤을 것이다.


그 다음은

벽돌하나를 놓고 그위에 횡목을 놓아

건너는 연습을 했을것이고,

그 다음은

큰 블럭벽돌위에,

그 다음은 의자 위에,

그 다음은 좀 더 높은 무언가위에

횡목을 놓고서

말에게 점핑하는 것 가르쳤으리라.


말도 그도

함께 시도해보며

처음부터 하나씩  하나씩

배우고 성공하는 과정이 그러했으리라.


내가 당시 내 말과 함께

그러한 과정을 연습해오던 중이었기에

어쩌면 그리 상상할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잠시

이러한 생각에 잠겨있을때

그는 이제 여섯번째

비월 시도를 준비하고 있었다.


멀리서 코너를 돌아

그는 다시 그의 방식대로

말을 몰아 추진하며

옥사 장애물을 향해 뛰어왔다.


말이 테이크 오프를 할때

그는 여전히

상체가 앞으로 숙여져있었고

그의 이러한 자세가

비월하는 말에게 부담이 되어보이는게

분명했다.


하지만

그의 말은

그를 태우고

완만한 포물선을 그리며

정확하게 점핑을 했고

정확한 랜딩을 했다.


나는 슬그머니 미소를 지었다.


그 모습은

정말이지

너무도 아름답고

감동적인 모습이었다.


지금까지

전문 선수들이 선보이는

멋진 장애물 비월 장면들을

여러차례 직접 보아왔지만

그날

연미복과 그의 말이 만들어낸

점핑 모습처럼

나에게 감동을 주는 장면은

결코 없었다.


숱한 실수와 실패.


자기를 지켜보는

수많은 사람들의

소리없는 비웃음과

호기심 어린 시선들을 느꼈음직함에도 불구하고

그의 표정은 진중했고 한치의 흔들림도 없어 보였다.


실패를 거듭할수록

점핑의지가 점점 확고해져보이는

그가 탄 말의 입 모양과 시선 역시,

결국

1미터 10.높이의 옥사 장애물을 뛰어넘게

만든것이다.


한번의 점핑 성공후

자신감을 되찾은듯

그 팀은

1미터 높이 수직 장애물을 성공시켰고

다시 도전하는 옥사도

부드럽게 성공시켰다.


마음으로

그들을 응원하며

지켜보던 나 역시

흐뭇해져서 기분이 좋아졌는데

순간

나는 내맘 저 깊은 곳에서

쿨렁쿨렁거리는

울컥거림이 느껴졌다.


설명할수없는

깊은 감동이었다.


그들은 정말 아름다웠다.


그들의 도전과 집중

숱한 실패에도 포기하지 않는

강한 의지가

그 사람과 말에게서

동시에 느껴졌다.


말에 대해 모르는 이들이

이 말을 들으면

내가 과장해석한다 할지 모르겠지만

아니다.


말에게도 의지가 있다.

분명.

그것은

자기가 태운 기승자의

하고자하는 의지와

집중력을 느끼는

바로 그 순간에

거짓말처럼 발휘된다.


나를 태우고 시험을 보았던

바그다드가 그랬고

호크가 그랬던것처럼.


그날

시험장에서 그들이

어찌 시험을 치뤘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분명히 내가 장담할수있는건

그날

제 아무리 장애물을 잘 뛰어넘은

그 어떤 팀도

연미복과 한라마처럼

처음부터 하나씩

함께 배우고 성장하여

그 시험장에 도전장을 내민건 아니란거다.


다른 이들은

이미 장애물 점핑에 익숙한

충분히 단련된

배운 말을 타고서

장애물을 넘었다면

그 팀은 결코 아니었다.


그것은 절대 쉬운 과정이 아니며

말과 함께

그 과정을 겪어내본 사람만이

과정과 성공 의미를 알수있다.


점핑 자세가 이상했든

추진 모양새가 이상했든간에

말은 말 나름대로 방식으로

연미복은 연미복 나름 방식으로

둘이 오랜 시간 연습으로

둘만의 호흡을 맞춰서

해냈다는게 진정으로 의미있는 일이었다.


개인적으로

제 3자인 나에게

깊은 감동과  긴 여운을 남긴것이다.


몸에 헛돌며 헐렁거리는

강렬한 빨간색 연미복과

체구가 자그마하고 낮은

얼룩덜룩한 그의 한라마가

그날 나에게 남긴 잔상은

생각날때마다

나에게 묘한 울컥거림을 만든다.


지금도

그들의 도전과 실패와 성공이

내 눈에 선하다.


그날 나는

빨간 연미복과 한라마에게서

인생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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