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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시안
Nov 30. 2024
당신 도대체 정체가 뭐야?
삭발을 감춘 모자. 위압적인 표정. 그리고 아이의 울음소리
살다 보면 좋은 마음으로 시작한 일이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서
생각지도 못한 파동을 만든다.
그날
시작이 그랬다.
제주로 내려와 처음 자리 잡았던 동네는
예전부터
있던 마을이 아니라
새로 만들어진 마을이었다.
어떤
회사에서 펜션용도로 만든
집들로
숙소를 운영하다가
부도직전에 매각한 집들이
모양도 크기도 비슷하게
나란히 있었다.
주택들은 마을 길을 가운데 두고
다섯 채씩
두줄로 나란히 마주 보고 있는
모양이었다.
옆집과의 사이에는 담은 없었고 집 경계에는
나무들이 심어져 있어
언제든지 옆집을 넘나들수 있는 구조였다.
대부분 육지 가족들로 모인
동네 식구들 관계는 친밀했고
각자 집안 사정을 잘 아는 사이였다.
나는 바다가 보이는 쪽 라인 첫 번째 집에 살았다.
바로 옆집에는 우리 큰애와 같은 반
남자아이네가 살았고
우리 집에서 한 칸 떨어진 옆집의 옆집에는
역시나 같은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이
있는
가족이 살았다.
큰 아이 반 친구가 있는 두 번째 집
부부는
아랫동네에서 살다 이사를 왔다.
처음 우리 집을 찾아와 인사를 나눌 때 보니
그 집 남편은
뻥을
종종 섞어서
리플리 증후군 환자처럼
자기 자랑을
했다.
덩치는
꽤 크고 머리는 삭발을 했는데
인상이 굉장히 강해 보였다.
그에 비해 그의 아내는
과하게 순종적인 모습이어서
내가 그다지 호감을 느낄 인상들은 아니었다.
그러나
집 큰 애와 우리 큰애가 같은 반이었기 때문에
과하지 않고 부족하지 않게
우리는 이웃관계를 유지했다.
편의상 그 집을 두찌네라 칭하겠다.
세 번째 집으로 이사 온 가족은
역시나 아이가 셋이었고
그 엄마는 성격이
활달
한
사람이었고
사람을 곁에 두는 걸 좋아했다.
그 엄마는 나와 나이가 같아
친구가 되었다.
세 번째 집을 편의상 세찌네라 하겠다.
세찌네 아이들은 우리 집을 좋아했고
늘
자기 집처럼 들락날락했다.
우리 집 아이들도 그랬고.
두찌네 아이들은 이유는 모르겠으나
그 집 부모 단속이 워낙 심해서
시골 주택에서 사는데도 불구하고
마당에 나와 노는 일이 별로 없었다.
부모도 동네 사람들과 거리를 두었다.
뭔가 비밀이 많은 집처럼 느껴졌다.
그
일이 벌어진 날
,
평소와 다를 바 없는 하루를 보내고 있던 중이었다.
세찌네 큰애 픽업시간이 다가오니
세찌네 엄마는
5살 된 막내와 그 집 둘째를 우리 집에 들여보내고서
다녀 올동안 아이들을
잠깐 봐달라고 부탁을 했다.
늘 있는 일이기에 그러라고 했다.
내가 우리 집 아이들과
세찌네 아이들을 데리고
마을 산책을 나갔다가
이제 막 우리 마당으로
들어설 때
일이
벌어졌다.
우리 큰애와 세찌네 둘째가 집 안에 먼저 들어섰다.
내가 두 살 된 우리 둘째를 안고 현관 계단을 막 오르던 참이었고
맨 뒤에 세찌네 5살 된 막내가 내 뒤 몇 걸음 뒤를 따라 걸었다.
내가 현관에 다 달아 마지막 계단을 오르려는 순간
옆집 두찌네 개가 눈 깜짝할 사이에
우리 마당으로 들어와 세찌네 막내 허벅지를 물어버렸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세찌네 막내는 비명을 질렀고
나는 우리 둘째를 현관에 내려놓고 뒤를 돌아봤다.
두찌네 개는 세찌네 막내 허벅지를 물고서
몸을 흔들며
으르렁 거렸다.
나는 너무 깜짝 놀라서 개를 쫓아 버리고
세찌네 막내를 얼른 안아서 들어 올렸다.
집안으로 들어와
비명을 지르며 울고 있는 아이를 달래며
아이가 입고 있던 청바지를 벗기고 상처를 살폈다.
개가 어찌나 세게 물어놨는지
청바지를 찢고 깊게 이빨이 들어간 자리는
ㄱ자로 피부가 뜯겨 터져 있었고
찢긴 피부밑에 생살이 불룩 불룩 튀어나와 있었다.
상처는 10군데가 넘었다.
아이들도 나도 패닉상태가 되었다.
세찌네 엄마에게 급하게 연락을 하고
사정을 말해준 다음
다친 아이를 데리고 병원으로 가려고
내 차로 다가갔다.
아이들의 비명소릴 들은 옆집 남편도
마당에 나와 있었다.
그 집 개가 ㅇㅇ이를 물었어요.
병원에 당장 가야 될 것 같아요.
상처가 너무 심해요.
내가 말했다.
옆집 남편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했다.
내 차로 병원에 갈 테니
또리엄마는 집에 들어가세요!
그는 그렇게 말하며
놀라서 패닉에 빠져 울고 있는 세찌네 막내를 들어
자기 차 뒷좌석에 앉히고 안전벨트를 맸다.
지금 다친 애를 차 뒤에 혼자 앉혀서
데리고 간단 말씀이에요?
어린애가
많이 놀란 상태라
제가 애를 안고 같이 가야 돼요.
애를 일단 안정을 시켜야죠.
그러자 그의 표정이 우악스럽게 변하더니
나에게 고함을 쳤다.
내가 알아서 한다고요!
세찌네 아이들은
옆 집과 평소에도 교류가 없을뿐더러
옆집 남편은 육지에서
지내며
몇 주에 한번 집을 오가는 사람이라
동네 사람들 뿐 아니라 아이들도 그를 잘 몰랐다.
세찌네 막내도 물론이었다.
이런 정신없는 상황에
아이는
평소
친분도 없는 옆 집 아저씨 차를
탔고
옆집
남자는
사고를 당한 아이를
뒷좌석에 앉혀
혼자 태우고
가겠다고
나를 밀어냈다.
나는
다친 어린아이 입장은 전혀 배려하지 않은
그의 생각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애는 이제 겨우 5살이었다.
자기 차 뒷좌석에
다친 아이를 혼자 싣고 가겠다고 화를 내는 그와
그 말에 화가 난 나 사이에
옥신각신 실랑이가 오고 갔다.
그는 운전석에 앉았고
나는 운전석 창문 밖에서 그와
언성
을 높였다
.
그의 아내는 옆에서 그저 지켜만 봤다.
그도 역시 극도로 흥분된
상태였다.
그가
그대로 차를 출발하려고 하자
나는 운전석 창문을 잡고 매달렸다.
어린애가 놀랐다고요.
애를 진정시키려면 어른이 같이 타야죠.
왜 저를 못 가게 하시는 거예요.
라고 말하는 순간
그가 액셀을 밟고 속도를 냈다.
나는 그 차 창문에 매달려 10여 미터를 끌려갔다.
그 속도에 차에서 떨어진 나는
바닥에 한번 나동그라졌고
그 모습을 차 안에서 본 아이가 겁먹은 얼굴로
이모오. 하면서 울길래
세찌네 막내에게 다급하게 외쳤다.
ㅇㅇ아. 걱정 마.
이모가 바로 따라갈게.
병원에서 보자 알았지?
걱정 마. 괜찮아. 엄마도 병원으로 갈 거야.
결국 아이는 잘 알지도 못하는 옆집 남자 차를 타고
혼자 뒷좌석에서 울면서 나를 떠나갔다.
그의 아내에게 어느 병원으로 가는 건지 물었다.
나는 그에게도 화가 났지만
그 아내의 행동에도 화가 났다.
도대체 이 사람들 뭐지?
나는 당장 내차를 몰고 병원으로 급히 차를 몰았다.
병원에 가서 아이가 처지 받는 상처를 보니
상황이 매우 심각했다.
상처가 너무 크게 벌어져있었고
너무 여러
곳을 물린 상태라
아이 허벅지 피부가 그야말로
너덜너덜거렸다.
이건
단순히
봉합으로
끝날
문제가
아닌 듯 보였다.
옆 집 남자는 아이를 병원 응급실에 내려놓고
간단히 상황을 설명한 다음
밖으로 나가 연신 담배를 피웠다.
나는 처치받는 아이를 안고서
아이가 진정하도록 안심시키려고 애를 썼다.
세찌네 엄마와 그 집 남편이 병원에 도착했고
나는 있었던 상황들을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세찌네 부부와 옆 집 남자가
병원밖에서 대화를 하는 게 보였고
세찌네 막내는 엄마가 도착하자
다시 울음을 터트렸다.
개에 물린 아이의 상처는 여러 번 레이저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아이는 한 달 정도 입원을 했다.
아이가 다친 일도 심각했지만
그
후
사건을
처리
하는 과정은 원만하지 않았고
무척 시끄럽게 진행이 되었다.
충분한 사과와 책임을 다하지 않는 태도의
옆 집 남자의 행동은
세찌네 분노를 일으켰다.
결국 이 사건은 소송으로 들어갔고
나는 당일 아이를 임시보호자였던 동시에
현장 목격자가 되어
난생처음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았다.
사고 당시
내가 아이를 보호하고 있었던 사람인지라
그 일을 처리함에 있어서 나 역시
이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한 사람이어서
나는
책임감에도
내가
해야 할,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했다.
세찌네 엄마는 그에 대한 억울함을
동네 사람들 뿐만 아니라
학교 엄마들에게도 호소했다.
옆 집을 압박하려는 의도로
실시간 일어난 일들을
우회적으로 사람들에게 말하고 다녔다.
내가 그 친구에게 조심스럽게 조언했다.
네가 억울한 상황인 건 알겠는데
여기는 시골이고 더군다나
아이들이 같이 다니고 있는 시골학교라
아이들 학교생활에도 영향을 미치니
말을 아끼는 게 좋겠다고.
이곳은
워낙 좁은 시골동네라
말이 쉽게 떠도는
곳이었다.
그러나 세찌네 엄마는 이 일에 관련해서
사람들의 입을 과하게 의식했고 의지했다.
오밀조밀하게 얽혀있는
이 좁은 시골 안에서의 인간관계에서
되도록 많은 사람들을 자기편으로 만들려고 신경을 썼다.
우리 집 큰 아이와 옆 집 큰 아이는
당시 3년간 같은 반이었다.
반친구들이 모두 사이좋게 지냈듯이
두 아이도 역시 그랬다.
나에게도 역시 많은 친구들이 있었다.
그중에는 옆 집과 친한 이도 있었고
세찌네 엄마와 친한 이들도 있었다.
세찌네 엄마는 그들이 모두 자기편을 들어주길
원하며 욕심을 부렸다.
세찌 엄마는 거의 매일 옆 집 보란 듯이
사람들을 집으로 불러들여 함께 식사를 했고
불필요하게 시끄럽게 요란을 떨었으며
과하게
큰소리로
웃어댔다.
그 소리들은 바로 옆집으로 향했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그 자리에 나를 꼭 불렀다.
한두 번 자리를 함께 하다가
나는
그녀의 의도가 느껴져서
가
지 않았다.
그런 휩쓸리는 분위기를 좋아하지도 않았고
뒷말이 많은 자리는 더더욱 싫어했기 때문이다.
조금씩
피로감이 쌓여갔다
.
나는 사람들과 친밀하게 지내면서도
늘 적당한 선을 지키고 사는 게 편한 사람이었다.
그러니
세찌네 엄마의 입장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었지만
그녀가 행하는 방식에
나는 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세찌네 엄마의 행동은
내 인간관계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주고 있었다.
세찌네 엄마는
본인이
옆집 두찌네 욕을 할 때
내가 옆에서 자기
말을 거들어주길 원했다.
그런 짓은 딱 질색이었다.
그녀가
그런 나에게 서운함을 느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원래 태생이 그런 사람이니.
옆집 남자도 만만치 않았다.
옆 집 남자가 처음 이사와
우리 집에서 자기 자랑을 하며
본인이 하는 일을 과장되게 늘어놓을
때
나는
솔직히
그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 알고 있었다.
그가 이사오기 전
아래 동네
에 살
때였다
.
옆 집을 그에게 소개해줬던
그 집과
친밀한 관계이자
나와도
친한 사이인
아랫동네
지인
이
내게
조용히
말했었
다
.
그는 육지에 있는 어느 절
스님이라고
.
내가
묻지도 않은 말에 그가 들려준 말이었다.
스님이 가정이 있다는 것이 이상했지만
그 역시 그만의 사정이 있을터고
내가 그
말을 굳이
사람들에게
떠벌릴 일은
아니었다
.
같은 반 학부모모임에서
엄마들 사이에
그
사람이 떠벌리고
다녔
던
그의 직업이야기가
나올 때도
나는 모른척했다.
같은 반 학부모 모임에서 떠도는
말에는
옆집 남편은 어느 날은
경찰 간부가 되었다가
어떤 날은 국가 기관 요원이 되어있었다.
그는 리플리 증후군을 앓고 있는 사람이었을까?
그가 왜 그런 거짓말을 굳이 하고 다니는지
나는 이해하기 어려웠
다.
사고 후 처리 과정이 시끄럽게 진행이 될수록
별별 말들이 다 떠돌았다.
두 집의 그러한 관계는
내 생활에도 엄청난 여파를 남겼고
옆집 남자는 나에게도 종종 위압감을 주는 행동을 했다.
이를테면
,
본인 집
마당에
있는
시시티브이
카메라
하나를
우리
거실
유리창쪽
우리 집 내부가 훤히 바라보는 쪽으로
보란 듯이 돌려놓는 일을 한다거나,
남편이
육지로
일이
있어
나가 있는 늦은 저녁에
어린애 둘만 있던 우리 집에 찾아와
불쑥 현관문을 신경질적으로 두드리면서
거칠게
나를 부르는 방식으로 말이다.
그러한 그의 행동은
이미 두 집 문제 사이에 껴서
그렇지 않아도 불안정한 심리상태에 있던 나를
더욱 불안
에 빠지게 했다.
육지를 다녀온 다음날
그 말을 들은 남편은 화가 나
옆 집 남자를 불러냈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날이었다.
남편은 검은 후드티를 뒤집어썼고
옆집 남자와 마주 보고 섰다.
남편이 대화 끝에 짧은 문장으로 물었다.
당신 도대체 정체가 뭐야?
당신
뭐 하는 사람이야?
당신 입으로 국가 기관 요원이라고 말하고 다니는데 말이야.
사람들 위압감 주면서 자랑하고 다니는 그 기관에
당신은 몰랐겠지만,
우리 가족이 거기 간부로 있거든.
어디 한번 당신 뒷조사를 해보라고 할까?
당신이 진짜 그 기관 소속인지 아닌지?
시골
사람들이라고 우습게 보이는 모양이지?
그런데 다닌다고 하면
사람들이 당신한테 쩔쩔맬 거라 생각했어?
남편이 그렇게 말하자
옆집 남자 얼굴이 얼어붙었다.
그가 처음으로
눈을 내리깔며
고개를 숙였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듯했다.
옆집 남자가 그런 말로
사람들에게 위압감을 주며
그런
말을 할
때
사실
우리는 코웃음 쳤었다.
이사 온 직후였다.
(흥. ㅇㅇ기관 요원 좋아하시네.
순진한 시골사람들 위압감을 주려는 수작이군.)
그 자리에 나와 있던 옆집 여자에게
그제야 내가 한마디 말했다.
ㅇㅇ엄마.
내가 그동안 일부러 모른 척 말 안 했는데
나 ㅇㅇ이 아빠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이미 알고 있었어.
당신네가 이사오기 전부터 말이야.
내가 당신네가 하는 말
모른 척 그냥 듣고만 있었던 건
우리 큰애 친구 부모이기도 해서
최소한의 배려를 한 거야.
같은 부모로서.
그런데 지금 상황을 봐
.
이게 뭐야.
너무 심하다 생각하지 않아?
내 말을 들은 그의 아내 역시
예상치 못한 말을 듣자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옆집 남자가 줄곧 자랑삼아 떠벌리고 다녔던
기관 요원이라는 말은
급기야 그 기관에서 사람이 나와서
그를
조사를 하고 가는 지경에 이르렀다.
아마도 세찌네 엄마 신고로 이뤄진 일이었을 거다.
기관 사칭을 하는 사람이라 이런 경우
기관 차원에서 조사가 이뤄지는 모양이었다.
우리는 그 기관을 다니는 우리 가족에게
아무런
연락
도
취
하지
않았었
다.
기관 직원 사칭한 문제도 소문이 나서 또 한바탕
동네도, 아이들 학교 부모들 사이에서 시끄러웠다.
이후 그에 관해
그가 어떠한 처벌을 받았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다만 내가 아는 것은
두 집안의 소송건은 1년 가까이
굉장한 소음을 만들며 진행이 되었고
아이는 몇 년간 레이저 치료를 받았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어찌 되었건 피해를 입은
세찌네 치료비와 위자료등을
옆집이 물어내야 하는
결론이
난 것만
알았다.
그 과정은
지난했고
기나긴 감정소모전이었다.
애가 개에 물려 다친 것도 큰 일이었지만
이후 벌어진 일들을
이 좁은 시골동네에 살고 있는
두 집과 인연이 있는 모든 이들 관계를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버렸다.
학교 부모들 관계도 덩달아 그러했다.
그렇게 된 원인을 제공한 사람들은
세찌네 엄마의 책임도 있었고
옆집 남자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
에도
책임이 있었다.
그리고
한자리에 모여서
남이야기 하길
좋아하며
입방정을 떠는
행동이
경
박한 엄마들의
싸구려
입에도
책임이 있었다.
두 집 부모는 작은 시골학교 학부모들이었다.
전교생이래 봤자 몇
명 되지도 않은 학교에서
두 집안 부모들이
시끄러운 소송 전을 치르는 중이었으니
학교 부모들 모임관계에도 균열이 생겼고
몇
가구 살지 않는 우리 동네도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었다.
나는 그 엉망진창 상황 속에 있는
아이들이 진심으로 걱정이 되었다.
내 아이도 걱정이 되었고 옆집 큰 애도,
세찌네 아이들도 모두 걱정이 되었다.
어른들이 벌린 이 진흙탕 속 싸움에
아이들이 상처를 입을까 겁이 났다.
나는 아이들 앞에선 극도로 말을 아끼며
이 사건 관련한 말들과 대화는 일절 하지 않았다.
실제로 우리 큰 애와 옆집 큰 애는 이 난리 중에도
학교에서 서로 잘 지냈고
아이들 관계는 평화로웠다.
훗날
처음부터 상황을 다 알고 있던
담임선생님도 말씀하셨다.
어른들이 그 난린데
우리 큰애도 대단하고 옆집 큰애도 대단하다고
내색하지 않고 정말 잘 지냈다고.
나는 선생님 그
말씀
이 정말 고마웠고
어른들보다 더 성숙한 행동을 한
내 아이와 옆집 큰애가 대견했다.
때로는 아이들이 어른들보다 더 현명하다.
때로는 아이들 행동이 어른들보다 더 점잖다.
때로는 아이들의 입이 어른들보다 더 신중하다.
때로는 아이들 생각이 어른들보다 더
성숙하다.
나는 그때 입은 정신적인 내상이 워낙 커서
그 일이 벌어지기 전
우리 가족 모두가 좋아했던 그 동네에
오만 정이 떨어져 이사를 나왔다.
우리가 이사를 나오고 얼마 후에
세찌네가 이사를 갔고
맨 마지막으로 옆집 남자가 이사를 나갔다.
각자 그 마을에서 이사를 나오긴 했으나
아이들은 여전히 같은 학교를 다니고 있던 참이라
그들 문제는 학교 부모들 관계를 휘집으며
시끄러운 관계들은 몇 년 동안 이어졌다.
몇 년
후 옆집 남자네는 육지로 다시 이사를 갔고
세찌네는 학교를 난장판을 만든 후에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갔다가
막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
다시 돌아와
학교
학부모가 되었다.
나를 다시 마주한 날.
세찌 엄마는 죄인 같은 얼굴과 목소리로
내게 인사를 건넸다.
나는 인사를 나누긴 했으나
예전처럼 다정하게 그 친구에게 말을 건네긴 힘들었다.
그녀가 남긴 후폭풍은
그녀가 아이를 전학시킨 이후에
그녀는 맘 편하게 생활을 하고 있었던 시간에도
학교에 남은 나를 줄곧 따라다녔다.
나는
그녀로 인해
충분히
고통을 받았기에
내가 그녀에게
거짓미소를 짓는 멍청한 짓은 하지 않았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와중에
서울에 있는 큰 아이한테서 전화가 왔다.
엄마. 지금 뭐 해?
브런치 올릴 글 쓰는 중이야.
오늘은 무슨 이야기를 쓰고 있어?
예전에 옆집 살던 ㅇㅇ이가 ㅁㅁ이네 개에 물린 이야기 쓰는 중이야.
재밌겠다.
어?
재밌겠다고?
엄마한테는
재밌는 기억이 아닌데?
그래? 왜?
너 그때 그 일 기억나니?
나 생각이 별로 안나.
그때 일을 넌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데?
음..
ㅇㅇ이가 ㅁㅁ이네 개한테 물려서 다쳤다.
그 정도?
아.. 그래? 그렇구나. 다행이다.
왜 다행이야?
사실은
이건 그렇게 간단하게 끝났던 일이 아니었거든.
어른들 사이에서
굉장히 복잡하고 시끄러웠던 일이야.
그래? 그런데 나는 왜 잘 몰랐지?
그건 아마도 엄마가 네가 너무 어렸기 때문에
말을 아꼈기 때문일 거야.
그럼 엄마 글을 읽다 보면 나도 알겠네?
무슨 일이 있었었는지.
그래..
.
이 글을 너도 읽을 텐데
엄마가 그 일을 글로 쓰는 게 맞는 건지 모르겠다.
다행히
우리
큰 애에게
그때 일에 대한 기억이 없는 걸 보면
당시 내가 아이들 앞에서 극도로 말을 조심했던 건 맞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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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이들이 살아내서 달리고 있구나.(연재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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