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에 홀딱 젖은 그가 나타나 말했다.계세요?

호들갑스런 뉴스. 비에 젖은 얼굴. 우앵거리는 빨간 오토바이

by 시안

언제더라.

일본 원전 폭발사고가 났던 그때 즈음

그 여파로

제주에 방사능 비가 내리네 어쩌네. 하는 날이었다.

그래.그날이었다.


뉴스에서는 방사능 비 때문에

학교가 휴교령이 내리기도 했고

방사능 비를 맞지 않기 위해서

애들을 등교시키지 않는 사람도 허다했다.


비는 거세게 내리고 게다가 바람까지 불어서

난리법석인 뉴스만큼이나

마음도 심란한 날이었다.


거실에서 창밖으로 비 내리는 걸 바라보고 있는데

우체부 아저씨가 방사능이네 어쩌네. 하는 비를

온몸으로 맞으며 홀딱 젖은 채

우편물을 들고 우리 마당으로 들어섰다.



아저씨는 오토바이를 타고서

사람들이 호들갑을 떨며 몸을 사리던 날에도

사람들이 걱정했던,

방사능이 섞여 있을지 모를

비 속을 가르며 우편배달을 하시는 중이었다.


얼굴엔 헬멧을 썼으나

비바람은 헬멧을 파고들어

얼굴은 온통 물에 젖었고

단단히 비 옷을 챙겨 입 긴 했으나

그렇지 않아도 바람이 거센 이 지역 비를

오토바이까지 타고서 피하기는 턱없이 부족했다.

아저씨는 물에 빠진 사람처럼 잔뜩 젖어서

그날도 여전히 우리 집 현관에 올라서서

계세요? 했다.


거실 창 앞에 서서 밖을 내다보고 있던 나는

아저씨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 얼른 나가서

그 아저씨의 얼굴을 보며 말했다.

아이고. 아저씨.

오늘 같은 날에도 이렇게 우편 배달을 하시네요.

세상에.

사람들은 방사능 비를 안 맞겠다고 이 난린데.

어떻게 이렇게 비를 다 맞고 오셨어요?


나는 그가 전해준 그 우편물을 가슴에 안고서

진심으로 감사의 말을 전했다.

그날 아저씨가 비를 뚫고 와서 건네준 우편물은

사실 우리에겐 별로 중요하지도 않았던

우편물로 기억한다.


그때 그 아저씨의 얼굴 표정에는

그날 특별한 상황 속에서도

자기의 존재를 고맙게 생각해 주고

진심으로 걱정해 주는 이를 만난 것에 대한 고마움이 잔잔하게 묻어났다.


별것 아닌 그날의 대화 이후에

아저씨가 우리 집 마당을 들어설 때는

늘 환하게 웃는 표정으로 오셨다.

그날 이후 변한게 있다면

우체부 아저씨의 미소가

얼마나 다정한 느낌을 주는 미소인지

내가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날이 더우면 집 냉장고에 있는

시원한 주스 한 병을 꺼내 드렸다.

날이 너무 덥네요. 더우시죠.

이거 한병 드세요. 하고 건네면

고오오맙습니다! 유쾌하게 대답하시면서

흔쾌히 그것을 받아 들고는 벌컥벌컥 들이키셨다.


겨울이 오면 날이 험해져 눈보라가 쳐도

그는 그것을 헤치고 미끄러운 길을 달려왔다.

(눈이 많이 오는 날엔 늘 고립이 되는 우리 집쪽은

차가 다닐 수 없을 정도로 길 상황이 안 좋다.)

눈이 쌓여 무릎까지 빠지는 마당을

슥슥슥 무릎으로 눈을 가르고 건너와

항상 웃는 얼굴로 계세요? 했다.


아침 시내에 볼일이 있어 나가려고

차를 마당에서 후진해서 나가려는데

못 보던 새 우체통이

우리 대문 옆 편백나무에 대롱거렸다.


아.

비바람에 녹슬고 뭉개진 낡은 우체통 대신

우체부 아저씨가 새로운 우체통으로

매달아 두셨구나.

자상하기도 하셔라.


언젠가 마당에 눈이 많이 쌓인 날

아저씨가 오토바이를 타고

마당 입구에 들어서길래 미안한 마음에

바삐 대문까지 나가 우편물을 받아들며

아저씨에게 말했다.


아저씨 미안해요.

우리 집 우체통이 태풍에 날아가 버려서

아저씨가 번거롭게 매번 현관까지 오셔서

우편물을 두고 가셔야 되네요.

죄송해요.


아저씨가 그때 우리 집 우체통이

태풍에 날아가 버렸다는 내 말을

잊지 않고 기억하셨던지

내가 부탁도 안 한 새 우체통을

대문 옆에 달아두고 가신 것이다.


방사능 어쩌고 하는 비가 내리던 날,

그날 눈에 비친 비 맞은 우체부 아저씨는

그날 나에게

그냥 우체부 아저씨가 아니었다.


누군가의 아버지며

누군가의 남편이며

누군가의 귀한 아들로 생각이 되었다.

정말 그랬다.


사람이 사람에게 마음을 전한다는 것은

진심을 담은 눈빛과

다정한 말 한마디만 건네어도

고스란히 전해지나 보다.


예기치 않게 새 우체통을 받고 보니

사람 좋은 미소를 가진 우체부 아저씨 얼굴과

아저씨의 배려깊은 마음이 떠올라

미소가 지어졌다.


우체부 아저씨는 여전히 빨간 오토바이를 타고서

우앵.소리를 내며 나타나

우리 집 새 우체통에 우편물을 넣고 가셨다.

릴리는 아저씨 오토바이 소리를 듣자마자

점잖고 가볍게 웡웡 짖었다.


사진 출처. 네이버 이미지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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