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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안 Nov 26. 2024

비에 홀딱 젖은 그가 나타나 말했다.계세요?

호들갑스런 뉴스. 비에 젖은 얼굴. 우앵거리는 빨간 오토바이

언제더라.

일본 원전 폭발사고가 그때 즈음

그 여파로

제주에 방사능 비가 내리네 어쩌네. 하는 날이었다.

그래.그날이었다.


뉴스에서는 방사능 비 때문에

학교가 휴교령이 내리기도 했고

방사능 비를 맞지 않기 위해서

애들을 등교시키지 않는 사람도 허다했다.


비는 거세게 내리고 게다가 바람까지 불어서

난리법석인 뉴스만큼이나

마음도 심란한 날이었다.


거실에서 창밖으로 비 내리는 걸 바라보고 있는데

우체부 아저씨가 방사능이네 어쩌네. 하는 비를

온몸으로 맞으며 홀딱 젖은 채

우편물을 들고 우리 마당으로 들어섰다.



아저씨는 오토바이를 타고서

사람들이 호들갑을 떨며 몸을 사리던 날에도

사람들이 걱정했던,

방사능이 섞여 있을지 모를

비 속을 가르며 우편배달을 하시는 중이었다.


얼굴엔 헬멧을 썼으나

비바람은 헬멧을 파고들어

얼굴은 온통 물에 젖었고

단단히 비 옷을 챙겨 입 긴 했으나

그렇지 않아도 바람이 거센 이 지역 비를

오토바이까지 타고서 피하기는 턱없이 부족했다.

아저씨는 물에 빠진 사람처럼 잔뜩 젖어서

그날도 여전히 우리 집 현관에 올라서서

계세요? 했다.


거실 창 앞에 서서 밖을 내다보고 있던 나는

아저씨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 얼른 나가서

그 아저씨의 얼굴을 보며 말했다.

아이고. 아저씨.

오늘 같은 날에도 이렇게 우편 배달을 하시네요.

세상에.

사람들은 방사능 비를 안 맞겠다고 이 난린데.

어떻게 이렇게 비를 다 맞고 오셨어요?


나는 그가 전해준 그 우편물을 가슴에 안고서

진심으로 감사의 말을 전했다.

그날 아저씨가 비를 뚫고 와서 건네준 우편물은

사실 우리에겐 별로 중요하지도 않았던

우편물로 기억한다.


그때 그 아저씨의 얼굴 표정에는

그날 특별한 상황 속에서도

자기의 존재를 고맙게 생각해 주고

진심으로 걱정해 주는 이를 만난 것에 대한 고마움이 잔잔하게 묻어났다.


별것 아닌 그날의 대화 이후에

아저씨가 우리 집 마당을 들어설 때는

환하게 웃는 표정으로 오셨다.

그날 이후 변한게 있다면

우체부 아저씨의 미소가

얼마나 다정한 느낌을 주는 미소인지

내가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날이 더우면 집 냉장고에 있는

시원한 주스 한 병을 꺼내 드렸다.

날이 너무 덥네요. 더우시죠.

이거 한병 드세요. 하고 건네면

고오오맙습니다! 유쾌하게 대답하시면서

흔쾌히 그것을 받아 들고는 벌컥벌컥 들이키셨다.


겨울이 오면 날이 험해져 눈보라가 쳐도

그는 그것을 헤치고 미끄러운 길을 달려왔다.

(눈이 많이 오는 날엔 고립이 되는 우리 집쪽은

차가 다닐 수 없을 정도로 길 상황이 안 좋다.)

눈이 쌓여 무릎까지 빠지는 마당을

슥슥슥 무릎으로 눈을 가르고 건너와

항상 웃는 얼굴로 계세요? 했다.


아침 시내에 볼일이 있어 가려고

차를 마당에서 후진해서 나가려는데

못 보던 우체통이

우리 대문 옆 편백나무에 대롱거렸다.


아.

비바람에 녹슬고 뭉개진 낡은 우체통 대신

우체부 아저씨가 새로운 우체통으로

매달아 두셨구나.

자상하기도 하셔라.


언젠가 마당에 눈이 많이 쌓인 

아저씨가 오토바이를 타고

마당 입구에 들어서길래 미안한 마음에

바삐 대문까지 나가 우편물을 받아들며

아저씨에게 말했다.


아저씨 미안해요.

우리 집 우체통이 태풍날아가 버려서

아저씨가 번거롭게 매번 현관까지 오셔서

우편물을 두고 가셔야 되네요.

죄송해요.


아저씨가 그때 우리 집 우체통이

태풍에 날아가 버렸다는 말을

잊지 않고 기억하셨던지

내가 부탁도 안 한 우체통을

대문 옆에 달아두고 가신 것이다.


방사능 어쩌고 하는 비가 내리던 날,

그날  눈에 비친 비 맞은 우체부 아저씨는

그날 나에게

그냥 우체부 아저씨가 아니었다.


누군가의 아버지며

누군가의 남편이며

누군가의 귀한 아들로 생각이 되었다.

정말 그랬다.


사람이 사람에게 마음을 전한다는 것은

진심을 담은 눈빛과

다정한 말 한마디만 건네어

고스란히 전해지나 보다.


예기치 않게 새 우체통을 받고 보니

사람 좋은 미소를 가진 우체부 아저씨 얼굴과

아저씨의 배려깊은 마음이 떠올라

미소가 지어졌다.


우체부 아저씨는 여전히 빨간 오토바이를 타고서

우앵.소리를 내 나타나

우리 집  우체통에 우편물을 넣고 가셨다.

릴리는 아저씨 오토바이 소리를 듣자마자

점잖고 가볍게 웡웡 짖었다.


사진 출처. 네이버 이미지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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