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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안 Nov 16. 2024

살다 보면 아주 가끔 천사를 만난다.

올림픽대로 산타페. 전화 한 통. 피자 배달아이의 표정.

길거리위에서 전혀 예상치 않게

천사를 만날 때가 있다.

그때 한강변 올림픽대로를 달리고 있었다.

그날따라 유독 차가 밀려가다 서다를 반복하면서 2킬로 미터 넘게 정체가 된 구간에서 일이 벌어졌다.


앞차와 적당한 간격을 두고

가다 서다를 반복하고 있었는데

두 살 된 첫째차창밖을 내다보다가 외쳤다.

엄마. 엄마! 저 봐!

한강에 연을 날리나 봐.

우와. 저 커다란 연 좀 봐. 하길래

어디? 하며 아이가 가리키던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던 찰나, 밟고 있던 브레이크에서 발이 살짝 뜬 모양이었다.


 차는 그렇게 약 일 미터 정도를 굴러가

앞에 선 산타페를 쿵하고 가볍게 부딪혔다.

공교롭게도 상대 차 안에는 가족 8명이

가족행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모양인데

부부는 목을 잡고 차에서 내렸다.


그때 난 접촉 사고가 처음이었으므로

무척 당황을 했다.

차에서 내린 상대 차주는 자기 차를 살펴보고는

 차를 휘 둘어봤다.

그의 아내가 어쩌고 저쩌고를 한참 이야기 하자.

당신은 잠깐만 차에 들어가 있어. 하고는

나에게 다가왔다.

 

아. 정말 죄송합니다.

브레이크에서 발이 잠시 떨어진 바람에

죄송하게 됐습니다.

가족들이 많이 타신 것 같은데 어디 다치신 데는 없으세요?

내가 쩔쩔매며 이렇게 말하자

그분은 지금 상태는 괜찮은 것 같은데 나중에 어찌 될지 모르니 연락처를 달라고 했다.

 연락처를 적어주고는 재차 미안한 마음을 진심으로 사과했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와서 그 사람 전화가 다음날 오기 전까지 나는 처음 겪은 접촉 사고로 인해 무척이나 신경이 쓰이고 걱정이 되어

어찌할 바를 몰랐다.

남편은 큰 사고는 아니어도 요즘 그런 접촉 사고를 맘먹고 보상해 달라는 사람이 많으니

일단 전화를 기다려보자고 말했다.

 

그다음 날 아침 일찍 그 사람에게서 전화가 왔다.

저. 어 접촉사고 난 차주입니다.

아. 네. 몸은 좀 어떠세요? 걱정하고 있었어요.

아. 충격 큰 게 아니어서  문제는 없습니다.

근데.

어제 제가 경황이 없어서 못 물어봤는데

아주머니도 몸이 불편하신 것 같던데

어디 다치신 데는 없나요?


당시  건강상의 이유로 내 왼쪽 턱 밑으로 10센티 정도를 절개해 수술을 받았는데

사고가 난 날은 퇴원한 다음 날이었다.

접촉 사고당일 목에 손바닥만 한 커다란 거즈와 밴드를 붙이고 있었는데 그분은 그 경황 중에도

내 목에 붙은 커다란 거즈를 본 모양이었다.


나를 걱정해주는 말을 건네길래 놀라기도 했고

그분의 따뜻한 마음이 전해져서

그렇지 않아도 잔뜩 긴장하고 있던 마음이 스르륵 녹아내렸다.


아. 저는 괜찮아요.

어제 놀라셨을 텐데 오히려 저를 걱정해주시다니 정말 고맙습니다.


네. 다행입니다.

저.  차와 가족들도 모두 문제없어요.

별 문제 아니니 보상이나 이런 문제는 신경 쓰지 마세요.


제가 오늘 전화를 드린 거는

아까 말씀드린 대로 아주머니랑 애기가 괜찮은지 여쭤보고도 싶었고요.

실은 아주머니께 해드리고 싶은 말이 있어서

전화드렸습니다.


그는 점잖고 조용하게 이어서 말했다.

 이렇게 상대방의 작은 실수쯤

너그럽게 이해하고 넘어가듯이

훗날 누군가가 아주머니에게

이처럼 조그마한 실수를 했을

아주머니도 제가 그랬던 것처럼

그에게 그러한 마음을 나눠주시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조금씩 서로를 이해해 주고 양보하는 마음을 가질 때 세상은 더 살기 좋은 곳이 되지 않을까요?

그런 사람들이 하나 둘 모이면 말이지요.

 

생각조차 못해본 예상치 않은 말이었다.

기분 좋게 뒤통수를 한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그의 말을 들으면서도 이 사람은 천사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상황에서 그 사람처럼

상대에게 이런 말을 해줄 수 있는 이가

과연 몇이나 될까.


난 그에게 꼭 그렇게 하겠다고 다짐을 했다.

누군가가 나에게 사소한 실수를 했을 때.

나도 이렇게 멋진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지!

그가 나에게 해준 말을 그대로 실천할 기회는 얼마 되지 않아 바로 일어났다.



시댁에서 가족들과 저녁식사를 하던 중이었다.

전화벨이 울려서 받았다.

ㅇㅇㅇㅇ번호 차주되시나요?

네. 그런데요. 무슨 일이시죠?

제가 오토바이를 세워뒀는데 오토바이가 차주님 차 쪽으로 넘어져서 차에 흠집이 났습니다.

죄송해요. 잠깐 내려와 보세요.


시댁 아파트 동 바로 밑 길가에 차를 세워두었는데 문제가 생긴 모양이었다.

밥 먹던 숟가락을 내려놓고서

아버님과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갔다.


아파트 현관 바로 앞 길가에 세워둔 내 차옆에

피자 배달 오토바이가 서 있었고

그 옆에는 그냥 보기에도 고등학생쯤 되어 보이는

어린 학생이 얼굴에 근심이 가득한 얼굴로

누군가와 전화통화를 하고 있었다.

그 아이는 피자 배달 알바를 하다가 이와 같은

일을 당한 모양이었다.


통화하는걸 잠시 옆에서 들어보니

통화대상은 아마도 피자가게 주인인 듯했다.

주인은 그 아이에게 화를 내면서

오토바이 사고의 책임에 대해 묻고 있었다.

이건 나와 상관없는 일이며

네가 해결해라. 이런 얘기가 오고 가는 듯했다.


통화를 마친 그 아이 표정이 더 어두워졌다.

배달 알바를 해서 돈을 얼마나 번다고

가게 사장이 차 수리비는 네가 해결해라. 하니

그 애가 얼마나 마음이 졸였을지 짐작이 됐다.



그 애가 나를 보더니 허리를 깊게 숙여 사과했다.

죄송해요. 오토바이를 잠깐 세워두고 배달을 갔다 왔는데 그사이에 오토바이가 선생님 차 쪽으로

넘어졌나 봐요. 정말 죄송합니다.


내차를 둘러보니 오토바이는 내차 보닛 위쪽으로

넘어지면서 보닛 위에 서너 군데

깊고 얕은 스크레치를 내었다.


내차는 새 차도 아니었고 이미 자잘한 스크레치가

군데군데 있던 상태였다.

오토바이가 낸 상처도

이미 있던 상처인지 이제 막 생긴 상처인지 모를 만큼 크게 눈이 띄지 않을 정도였다.


그다지 큰 문제가 아니어서 일단 나도 안심을 했다.

그러고 보니 몇 주 전 올림픽대로에서

접촉사고 났던 산타페 차주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나는 슬쩍 미소를 지으며 잔뜩 얼어있는

어린 알바 친구에게 농담을 했다.


아니. 내차 어디에 흠집 냈단 말이에요?

내차가 워낙 흠집이 많아서 오토바이가 어딜 긁었는지도 모르겠네.

흠집 내놓고 그냥 도망가도 몰랐겠구먼!

큰 문제 아니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괜찮아요. 그가셔도 돼요.



내 말이 의외였던지 그 애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제야 걱정하고 긴장하던 마음이 풀어졌는지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해졌다.

그러더니 다시 가게 주인과 통화를 했다.

이만저만해서 지금 차주분이 괜찮다. 했다고.


피자가게 주인도 의외였던지 나를 바꿔달라 했다.

내가 큰 문제 아니니 걱정하지 마시고

배달한 알바 친구도 혼내지 마시라고 얘길 했다.

그냥 모른 척 도망가버려도 모를 정도인데

알바 친구가 참 착하다.

솔직하게 말해줘서 오히려 내가 고맙다. 얘길 했다.


가게 주인 역시 내 말에 놀랐던지 잠시 말이 없더니

갑자기 생각이 난 듯이 말했다.

너무 감사해서 피자 두 판을 보내드리고 싶으니

동과 호수를 말해달라고.

나중에 주인이 그 피자값도 알바 친구에게 물어내라 할 듯해서 괜찮다고 사양을 했다.


내 옆에 서서 상황을 지켜보고 계시던 아버님이

주인과 통화를 원하시길래 바꿔드렸다.

아버님은 가게 주인에게 알바 친구를 칭찬하셨다.


어린 친구가 알바를 하는 것도 기특한데

요즘 같은 세상에 이런 접촉사고가 나면

모른 척 시치미를 뚝 떼고 몰래 도망가버리는 일이

다반사인데 이 친구가 도망가지 않고 전화를 걸어

솔직하게 얘길 해주니 얼마나 착한 친구냐.

사장님도 이 친구의 솔직한 행동을 칭찬해 주셔라.

차는 큰 문제없으니 수리비는 걱정 말고

피자는 안 보내셔도 된다. 하셨다.


가게주인은 머쓱했는지

그래도. 제가 죄송해서요. 여러 번 얘길 하더니

감사하다고 인사를 남기며 아버님과 통화를 마쳤다.


어린 알바 친구는 통화를 들으면서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눈물이 맺힌 채

우릴 바라봤다.



아버님은 다시 집으로 올라가시고

나는 그 애에게 올림픽대로에서 만난 산타페  차주분이 내게 해준 이야기를 들려줬다.


내가 오늘 학생의 작은 실수를

너그럽게 눈감고 넘어가주듯이

학생도 앞으로 살아가면서

누군가 학생에게 작은 실수를 했을 때,

학생에게 큰 문제가 아니라면

마음 넘게 눈감아주고 넘어가주면 어떨까요.


그런 작은 마음들이 모아지면

세상은 더 살아갈만한 세상이 되겠죠?

아.  말은

학생처럼 실수를 했던 저에게 

누군가가 들려준 말이에요.

그걸 오늘 학생에게 들려주게 되네요.


내가 웃으면서 얘길 하니 그 애가 눈물을 흘렸다.

여러 번 고개를 숙이며 감사인사를 하더니

본인도 꼭 그렇게 하겠노라고 내게 다짐을 했다.


올림픽대로에서 만난 산타페 천사가 해준 말을

이렇게 곧 누군가에게 전할 일이 생기다니.

내가 그 말을 잊지 않고 실천할 수 있어서

나 자신도 꽤 만족스러웠다.


알바 친구와 인사를 나누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으로 올라갈 때

엘리베이터 안에서 나는 나비효과에 대해 생각했다.


내가 차례로 경험한 그 일들은

여전히 내 삶에 깊은 여운을 남겨

살아가는 동안 작은 파동을 일으키고 있다.


어린 알바 친구 역시

그날 내 말을 기억해 두었다가

때를 만나면 너그러운 마음으로 상대를 대하며

세상 어딘가에서 아주 조그마한 파장을 일으키진 않을까.


험한 뉴스가 하루가 멀다 하고 도배되는 세상이다.

그래도 세상 어느 한 곳에서는

여전히 아주 작은 나비들이

미세하지만 분명한 날갯짓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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