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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안 Nov 09. 2024

ㅇㅇ이네 할머니가 건강하셔서 다행이다.

주저앉은 초가지붕. 생일파티. 밥 짓는 냄새.

조손가정인 ㅇㅇ이 집은

억새풀로 엮은 초가집 안거리 집과

조립식 패널로 지은 밖거리가 있는 집이었다.

안거리와 밖거리

있는 듯 없는 듯 비좁은 마당을 끼고서

좌우 ㄱ자로 자리하고 있었다.


세월에 삭은 억새로 인해

초가지붕은 힘없이 낮게 가라앉았고

좁은 마당 한편에 자리 잡은

기름칠 된 경운기는

할아버지 부지런한 손길짐작케 했다.



ㅇㅇ이와 한 동네에 사는 내 친구가 말해주기를,

ㅇㅇ이가 아주 애기 때

ㅇㅇ아빠 혼자가 되었다고 했다.


ㅇㅇ이 아빠는 복잡한 개인사가 있어 육지로 나가

ㅇㅇ이는 물론이고,ㅇㅇ이 할머니와도 아주 오랫동안 연락을 끊고 지내는 모양이었다.

ㅇㅇ이는 그렇게 애기 때부터

부모님 사랑을 느끼지 못한 채

할머니와 할아버지와 함께 살았다.


집안 형편이 어렵다 보니

ㅇㅇ이  차림새는 어딘지 모르게 늘 초라했고

덩치는 또래 아이들보다도

삼. 사 년  어린 아이처럼 체구가 작았다.


ㅇㅇ이는 초1 때부터

아이들과 자주 부딪혔고 눈물이 많았다.

반면,

악도 있고 깡도 있고 자존심도 쎈 아이여서

친구들과 싸울 땐 씩씩거리며 눈물을 흘릴지언정

절대로 그냥 지는 법이 없었다.


우리 집에 와서 놀 때도 늘 그랬다.

ㅇㅇ이는 늘 자기 뜻대로 뭔가가 되지않을때

눈물부터 글썽거린 다음

그 다음은 여지없이 억울해서 투닥투닥 싸우다가

결국은 나에게 쪼르르 달려와

울면서 고자질을 했다.


애에에앵.이모오오.  쟤가요.~

녀석의 하소연 레파토리 시작이었다.



ㅇㅇ이는 둘째랑 7년 동안 친한 친구였으나

서로 다른 중학교에 진학한 탓에

초등학교 졸업 후 처음

ㅇㅇ이 생일파티에서 아이들은 다시 만났다.

매년 생일 파티에 서로 초대를 하는 사이니

그것이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었다.


ㅇㅇ이 집안 형편을 아는 나는 매년,

둘째가 ㅇㅇ이가 생일파티에 나를 초대했어.라고 말을 할 때마다

할머니가 아이들 생일파티 간식들을 어찌 준비하실까. 그걸 미리 걱정했다.

사실 솔직히

매년 ㅇㅇ이 생일파티를 할 때마다

항상 그런 조바심이 들었다.


  그 아이 생일 파티 때는

둘째에게 미리 당부했다.

치킨과 피자는 엄마가 사서 보낼 테니

ㅇㅇ이 할머니께 그건 절대로 준비하지 마시라. 

ㅇㅇ이한테 그리 전해달라고.


읍내에서 치킨과 피자 몇 상자를 주문하여

ㅇㅇ이 집에 가져다줄 

ㅇㅇ이 집에서 놀고 있는 둘째

ㅇㅇ이네 집 대문밖으로 조용히 불러낸 다음,

박스들을 슬쩍 넘겨주고서

가벼운 마음으로 돌아오곤 했다.



해도 ㅇㅇ이는 둘째를 생일파티에 초대했다.

나는 치킨 세 박스와 피자 두 판을 들고

ㅇㅇ이 집으로 향했다.


ㅇㅇ이 생일 파티로 모인 아이들은

동네 근처 어디론가 축구를 하러 나갔고

ㅇㅇ할머니는 아이들 먹일 저녁밥을 짓다가

나를 맞이하셨다.


낮은 지붕 초가집 문을 열자

집 안에선

생일파티 놀러 온 아이들에게 먹일

뜨끈하고 고소한 밥냄새가 새어 나왔다.

그 밥 짓는 냄새가 그날 어찌 그리도

포근하게 느껴지던지.


안녕하세요. 어머니. 처음 뵙겠습니다.

저.ㅇㅇ이 친구 오돌이 엄마예요.라고

ㅇㅇ이 할머니에게 나를 소개한 후

ㅇㅇ이 생일파티에서 나눠먹으라고 준비해 간 치킨과 피자 상자를 할머니께 안겨드리니

할머니는 매년 이렇게 ㅇㅇ이를 챙겨줘서 고맙다고 인사를 하셨다.


간식을 넣어드리고 몸을 돌려 나올 때

문 앞에 잘 손질된 머위 한 다발에

내  눈길이 무심코 닿는 걸 보셨던 모양이다.

저것 좀 줄까요?가져가 먹어요.

밭에서 막 딴거라 잘도 연해요. 하시길래

아.아니에요. 어머니. 괜찮아요.

웃으며 말하고는

나는 쑥스러워서 얼른 인사를 하고 나왔다.



ㅇㅇ이랑 둘째가 7년간 베프로 지내는 동안에도 나는 옆동네에 살고 있는 ㅇㅇ이 할머니를

한 번도 뵌 적이 없었다.

그래서

ㅇㅇ를 키우고 계시는 할머니는

연세가 많이 드셔서 거동이 불편하신 분이시리라 그냥 넘겨 짐작했었다.


그날 뵌 ㅇㅇ이 할머니 모습은

생각보다 젊고 건강하신 분이었는데

ㅇㅇ이 할머니가 건강하셔서 다행이라 생각하며

안심했던 것 같다.


어린 ㅇㅇ이를 할머니가 키우신다는 얘길

7년 전 친구에게서 처음 전해 들었을 때,

제일 먼저 나는

딱한 처지의 ㅇㅇ이를 생각하면서

어린 ㅇㅇ이를 키우고 계시는 할머니가

건강하게 오래 사셔야 할 텐데.생각했.


ㅇㅇ이 할머니는 내 걱정과 달리 건강해 보이셨고

생각보다 젊고 밝은 분이셨다.

검게 염색을 하고 짧게 커트 머리를 한 할머니는

매우 다정하셨미인이셨다.

인물이 좋은 ㅇㅇ이가

할머니 미모를 닮았구나. 생각했다.


ㅇㅇ이 할머니를 처음 만나 인사를 나누고

구불구불 시골길을 따라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길.

왠지 마음이 홀가분하고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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