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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안 Dec 03. 2024

그 아이들이 살아내서 달리고 있구나.(연재 완결)

따사로운 햇볕. 길게 늘어선 차량.그리고 달리는 그들.

볕이 눈부신 사월이었다.

병원에 입원해 있는 아들아이를 돌봐주다가

몇일 집안에 밀린 빨래를 정리해두려고

병원을 나와 집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집 앞에 있는 큰 사거리를 향해 다가갈때

앞쪽에서 진행하는 차들의 속도가 느려졌다.

비상 깜빡이를 켜고서 운행하길래

저 앞에서 공사중인가 생각했다.


잠시 후 앞을 보니

2차선에 나란히 차량 세 대가 서행하고 있었는데

그 차량들 오른편 인도에서 청년 세 명이

마라톤을 하고 있는듯 했다.



흰색 반팔.반바지차림의 청년들은

길을 따라 인도위를 천천히 달리고 있었다.

달리는 청년들과 한팀으로 보이는

세 대의 차량 행렬 맨 뒤,

승용차 뒷면 유리창에는

노란 현수막이 붙어있었다.


세월호 생존자 아이들 누구 누구와

김동수씨가 함께 달리고 있습니다.


달리는 일행을 멀리서 보며 다가갈 

나는 그들이 마라톤 행사에 참가중인 참가자라 생각했다가 그 노란 현수막을 읽고서

.하고 나도 모르게 짧은 호흡을 내 뱉었다.


세월호 생존자  아이들 누구 누구와

세월호 의인이라 알려진 김동수씨가

함.께 달.리.고 있.습.니.다.


노란 현수막에 적힌

세월호 생존자 아이들은 이제 청년이 되었고

김동수씨는 여전히 세월호 기억을 온몸에 새기며

그렇게 살아가고 계셨구나.


예기치 않게  

세월호 생존자 아이들.이라는 문구와

께 달.리.고 있.습.니.다 를 읽었을때

가슴 깊은 곳에 눌러둔

잊고 있던 슬픈 기억이

내 목젖과  눈을  향해 끌어오려지더니

목울대가 묵직하며 눈물이 차올랐다.


그래.

그 아이들이

살.아.내.서

달.리.고 있.구.나


나는 아주 천천히 차를 운전해

그들을 스쳐 지나가며

그런 생각을 했다.

그 아이들이 살아내서 달리고 있구나.라고.


언젠가 문득 문득 기사로 들려오는

세월호 생존자 김동수씨의 자해  소식은

세월호 아픔을 함께 느꼈던

많은 이들중 한사람인 나에게도

내 심장 귀퉁이 어딘가를 스크레치를 내는듯

안타깝고도 슬픈 소식이었다.


김동수씨도 살.아.내.서

살.아.낸

그 아이들과

함께 달리고 있구나.


달리고 있습니다.


달린다는 행위는

심장이 격하게 요동치고

거친 들숨과 날숨이

살아있음을 증명하며

팔 다리를 움직여 앞으로 나아가는,

과거를 지나

현재를 통과하며

미래를 향해

있는 힘껏 온몸을 움직여 나아가고 있다는

명료한 살아있음의 표현이도 하다.


살.아.낸 그 아이들과

살.아.낸 김동수가 달리고 있는 모습에 얹어진,

세월호 생존자 아이들.

김동수씨.

함께 달리고 있습니다.의 글귀는

그들을 찰라 스치며 운전하는 나에게

한 여운과 감정으로 다가왔다.


울음을 억누르며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나는 그들에게

당신들과 마음을 함께 하고 있으니

힘내라는 메세지를 보내고 싶었다.


내 앞뒤 차량은 긴 행렬로

운행중이었기에

내가 할수있는 표현이라곤

그들에게 내 차가 가장 근접해갔을때쯤

크락션을 최대한 살살 누르며

빵.빵. 가볍게 두번 소리내는 것이었다.


달리고 있던 김동수씨가

내 차쪽을 바라보기에

나는 크게 손을 휘저어

힘내라는 격려 손짓을 보냈으나

내 차  창문은 썬팅으로 어두웠기에

어쩌면 내 손짓이 보이지 않을지도 몰라.하고

혼자 생각했다.


빵.빵

조심스레 최대한 가볍게

크락션을 눌렀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내 싸인을 오해하면 어쩌지.하는

걱정이 동시에 일었다.


그들을 지나 직진하다 사거리 신호에 걸려

집을 향해 좌회전 신호를 받고 서 있을때

나도 모르게 울음이 터졌다.


목울음대를 꾹꾹 누르며

차오르던 슬픈 마음

눈물로 고이다가

그들을 지나쳐 신호등에 차가 멈추고서야

이내 울음으로 터져나온 것이다.


년전 그날 느꼈던

안타까움과 슬픔이

지금을 살고있는

내게도 여전했던 모양이다.

하물며 그 생존자들은 오죽하겠으며

유가족들은 또 오죽할까.


좌회전 신호를 받고서

집으로 돌아와 마당에 차를 세웠다.

나는 콧물을 훌쩍이고

손등으로 눈물을 슥슥 닦으며

집안으로 들어섰다.


씽크대 앞에서 주방일을 하는 동안에도

나는 연신 코를 훌쩍이며

그날 오후내내

슬픈 감정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살.아.낸 그들이

도로위를 힘차게 달리던 그 모습처럼

내일을 향해서 건강하게

앞으로 한걸음 한걸음

달려갔으면 좋겠다.


20240416 am 06.48

십년전 이 시간 그 아이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브런치 [그사람의 잔상]연재를 마치며.


내가 10살쯤 되었을 때

사주 좀 본다는 엄마 지인이

우리 집에 들른 적이 있다.

그날 그는 분명 가족들 사주를 봐주셨을 꺼다.


나는 어린 아이였으므로

추측컨데,

그는 어린아이였던 내 사주는 그냥 쓱 지나가듯

 마디만 던졌던 모양이다.

그가 내 사주에 대해 뭐라 했었는지

나는 기억나는게 없으니 말이다.

딱 한마디 빼고.


그는 그렇게 말했다.

얘는 남 딱한걸 못봐.

오십년 넘게 살아보니 그 말은 맞는 말이었다.


나는 태생적으로

딱한 처지에 있는 사람이 항상 마음에 걸리는

사주 팔자를 타고난게 맞는 모양이다.


딱한 사람.

딱한 처지.

딱한 모습.

그런 장면과 사람들을 보면

그들은 내 기억 한구석에

야무지게 한자리를 차지하고서 들어앉았다.


살아오면서 나에게 진한 여운을 남기고 간 사람들.

그들이 있던 자리.

그들이 했던 말.

그들의 생생한 표정.

그들이 당시 처해있던 상황.환경들이

어찌 이리도 어제 일처럼 생생할까.


그들이 나에게 남긴 잔상이라는 것은

마치 어제 일을 짧은 동영상에 담아놓은 듯해서

유독 내가 남달리 그러한 장면들을

오랫동안 생생하게 기억하고있는지,

다른 이들도 그러한 장면을 마주치게 되면

나와 같은지

나는 늘 그게 궁금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사람들이 남긴 잔상이 여운이 깊을수록

나는 그사람의 삶을 생각했고

그사람이 내게 남긴 감정과 생각들을

기억속에 세밀하게 저장해둔것 같다.


그사람이 남긴 잔상이

내 감정에 동요를 일으켜

내 사유를 건들 때

그때마다 비공개 카페 글 창을 열고서

짧은 글로 냉큼 스케치를 했었다.


두번째 연재 글을 무얼쓸까 생각했을 때

나는 그 사람들이 남긴 잔상들을

짧은 글로 스케치 해둔

비공개 카페 글 카데고리를 기억해냈다.


그사람이 남긴 잔상의 첫 소재 글이

2012년도에 스케치 해 둔 글이었으니

이 연재속에 등장한 인물들은

내 비공개 카페 서랍속에서 차곡 차곡 쌓여

나와 함께 지난 시간을 보낸

그사람.들이다.


그사람이 남긴 잔상.연재속 이야기는

그저 사람사는 이야기였다.

엄마없이 시골에서 자라는 아이들과

가난한 촌동네에서 살아가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예기치 않게 벌어진 한 장면속 상황과

그자리에 있던 그사람의 이야기.

그사람이 남긴 말과 행동과 잔상들.

특별할것도 없는 평범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들이었다.


그들이 사는 이야기는

때로는 나를 슬프게 만들었고

때로는 나를 웃게 했고

때로는 나를 감동시키고 내게 깨달음을 주었다.


연재속에는 등장하진 않았지만

내 카페에 짧은 글로 스케치해둔 인물들중에

끝내 꺼내지 못하고 다시 넣어둔 이야기도 있다.

그사람이 남긴 잔상이

나를 너무 마음 아프게 했던 이야기들이다.


연재 글이 한 회  한 회 올라갈때마다

그때마다 마음이 따뜻한 작가님들이

댓글로 생각을 나눠주시고 공감하며

응원해주셔서 정말 큰 힘이 되었다.

부끄럼이 많고 소심한 내가

다음 글을 다시 써서 올릴 용기가 되었다.


[그사람이 남긴 잔상]연재를 마치며

내게 진한 잔상을 남긴 주인공들.

그사람들.

그들이 지금 어디에 있던지

각자 살아가는 자리에서

진심으로 평안하고 행복했으면 한다.


다정한 내 글벗 작가님들께도

애정담은 깊은 고마움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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