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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쌤은 이 곳 학생 아니야?

폭우속 연습마장에 홀로 남겨진 나를 보며 감독은 교수에게 물었다.

by 시안 Jan 02. 2025

아버지 장례를 치루고 제주로 돌아오자마자

나는 시험 지옥 아가리 속으로

다시 기어 들어갔다.


제주로 돌아온 이틀 후에

자격증 실기 시험이 있었다.

전 해에 초겨울 시험봤던

장애물 점핑이 있는 시험이었다.

나는 육체와 정신 상태가 엉망인채로

시험을 준비했고 엉망인 상태로 시험을 치뤘다.


자격증 실기 시험은 필기 시험이 합격하면

2년동안 2회 도전할 기회를 얻는다.

첫해 도전이 실패로 끝났기 때문에

그 다음해 실기 시험 마지막 기회가 남아 있었다.

이번에도 실패하면 나는 필기 시험부터 다시 봐야 했다.


그해 봄에 나는 원래 기회가 살아있는

작년에 실패한 자격증 시험 2개말고도

다른 지도자 자격증 필기 시험을 두개 더 추가로 봤었다.


언젠가 나와 친분이 깊은 교수님이

내가 재수로 다시 도전하게 될

지도자 자격증 실기 시험을

올해 한번 더 도전할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원래 내가 도전했던

지도자 자격증 일반 분야가 아니라

노인 분야나 유소년 분야로 추가 신청을 해서

필기에 패스를 하면 실기 시험 코스가 같다 했다.


분야가 다른 지도자 자격증은

같은 날 오전, 오후시험이 치워지니

같은 시험코스를 한번 시험볼수 있다는 것이다.

맞네. 생각해보니 그러네.

아주 꿀팁이었다.


문제는 해당 자격증은

필기부터 패스가 쉽지 않은 것이여서

합격률이 낮았다.

기왕 연습한 거 같은 시험 코스를

한번 더 도전할 기회를 얻을수 있다니.

나는 고민할것도 없이

유소년 분야 필기 시험을 봤고 무난하게 합격을 했다. 봄에 그 자격증 필기 시험에서

생존한 합격자는 역시나 몇 명 되지 않았다.


내가 그동안 죽어라 연습했고

수없이 낙마하면서 연습했던 그 시험 코스였다.

1미터 10센티 높이의 두개의 장애물 점핑이 들어가 있는!


두개의 장애물 점핑이 있는 실기 시험 일정은

전 해 시험 봤던 11월에서 무더운 7월로 앞당겨졌다.

당일 오전은 일반 분야와

오후에는 유소년 분야로

시험을 치루는 실기 시험 일정이었다.


그리고 몇 주후 오지게 더운 8월에

전년도처럼 다른 자격증 두개의 실기 시험은

연속 이틀 예정되어 있었다.


새학기가 시작되면 자격증 시험일정은

빈틈없고 숨돌릴 겨를없이 이어졌다.

필기 시험에서 실기 1차로

그리고 초겨울 실기 최종 2차로

각각의 자격증 일정들이 쭉쭉 이어졌다.


꽃피는 봄에 필기를 두어번 치루고

여름에 1차를 두어번 치루고

초겨울에 2차 실기를 두어번 치루고나면

어느새 일년이 훌쩍 지나갔다.


아버지 장례를 치루고 온 나는 다음날 바로

감독 마장에서 시험 전 마지막 연습을 했다.

전 해에 나를 태우고 시험을 봤던 호크는 당시

발목 부상을 입은 상태였기에

나는 25톤 트럭처럼 발걸음이 무거운

웜블러드 바그다드와 짝꿍이 되어서 시험을 봐야했다.


바그다드는 나와 호흡을 맞춰오긴 했으나

나이도 많고 워낙 발걸음이 천근만근인 녀석이라

장애물 두개를 넘고 코스를 완주할때까지

녀석은 금새 지쳐 시동이 꺼져버릴수 있었다.


나는 녀석이 코스중간에 서지 않도록

온 힘을 쥐어짜며 활발한 발걸음을 만들어야 했다.

녀석은 점잖아서 호크처럼 맘 내킬때마다

나를 우주로 날리는 예민한 짓은 하지않았다.


시험 직전 감독과 마지막 연습을 할 때

이미 심리적으로 지쳐있는 상태였기에

나는 많은 것들을 마음에서 내려놓았다.

그저 내가 연습해왔던 대로만 하자고 생각했었다.


시험 당일은 장마 끝자락이라

하늘이 구멍난것처럼

억수같이 비가 내렸다.


본 시험은 실내마장에서 치뤄졌지만

시험 직전 마지막 연습을 하는

최종 연습마장은 실외였기에

나는 쏟아지는 비를 맞으면서

간단한 코스를 그리고 점핑 연습을 했다.


그날도 나는 학교 말이 아니라

감독 마장의 말로 시험을 치루는 상태였기에

암묵적인 학교 룰이 늘 그랬듯이,

나는 재학생 신분이었으나

학교 교수와 조교의 철저한 무관심속에

교수가 아닌 감독의 조언을 들으며 연습을 했다.


그날만큼은,

나는 학교 학생이지만 학생이 아닌

묘한 포지션으로 그들사이에서

외롭게 시험을 치뤘다.


그날 시험장에 나와 있던 교수는

작년에 내가 시험을 치룰 때

시험장에 있던 교수는 아니었고

다른 젊은 여자 교수였다.

학생들은 교수의 조언을 들으며 연습을 하다가

시험순번이 되면 마장을 빠져나가

한명씩 시험장으로 들어갔다.


맨 마지막 순서인 내가 워밍업을 하고 있을 때

내 앞 번호 학교 어린 선배가 워밍업을 마치고

시험장으로 들어갈 차례가 되었다.

그가 말을 타고 실내마장으로 향하자

시험볼 학교 학생들이 다 빠져나갔기에

연습마장에서 학생들에게 조언하던 교수와 조교도 자리를 떴다.


한치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이제 연습마장에는

나와 내 말과 감독과 코치만 남았다.


그날 연습마장에서 학생들을 살피던 교수는

감독 선수시절 후배였다.

감독과 교수가 서로 친분이 있는 사이였기에

감독은 평소, 교수와 편하게 이름을 불렀다.


감독은 내가 학교에서 어떤 수모를 당하며

학교 생활을 하고 있는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학교에선 나뿐 아니라

만학도들 처지도 그렇다는 것을

감독은 수년전부터 익히 잘 알고 있었다.


같은 학생 신분이면서도

그들의 무관심속에  홀로 남은 내가

감독은 딱해보였던지

이제 막 연습 마장을 떠나는 그 교수를 불러 세웠다.


어이! ㅇㅇㅇ.

ㅇㅇ쌤은 여기 학교 학생 아니야?

당신 제자 아니냐고.

당신 이렇게 ㅇㅇ쌤한테 무관심해도 되는 거야?


마장을 떠나려다 예상치 않은 말을 들은 교수는

걸음을 멈칫하며 무안한 표정을 지으면서

나를 뒤돌아봤다.

감독이 내 모습을 지켜보다가 내 모습이 안되보여서

굳이 그 교수를 불러세워

한마디를 던진 것이 솔직히 고마웠다.


그러나 나는 학교를 다니며

그러한 분위기에 이미 이력이 난 상태였다.

그들에게 내가 기대하는 것이 1도 없었기에

그들이 그런 행동을 해도

전혀 마음의 동요가 일지 않았다.


그 교수가 돌아보며 감독에게 뭐라 몇마디 했으나

그가 감독에게 뭐라 변명했는지

나는 듣지 못했고 관심도 없었다.

나는 그 교수의 변명보다도

당장 내가 치룰 시험에 몰입해 있었기 때문이다.


마지막 내 차례가 와서 연습 마장을 빠져나와

본 시험장으로 들어가 시험을 치뤘다.

시험전 내 개인사로 인해

연습이 충분하지 못했지만

나는 내 말과 함께 편안하게 코스를 그렸다.

장애물 점핑또한 작년 시험때보다

부드럽고 자연스러웠착지도 완벽했다.


다만 폭우에서 연습하느라

이미 체력이 떨어진 듯한 바그다그는

그렇지 않아도 무거운 발걸음이 더욱 늘어져서

나는 두 개의 장애물을 연속으로 점핑을 한 후에

마지막 코스 70미터 구간을 앞두고선

말의 활달한 걸음을 유지하느라

내 모든 체력을 쥐어짜야 했다.


큰 실수가 없이 코스를 끝냈기에

나는 그래도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비를 맞으면서도 끝까지 최선을 다해준

바그다드가 고마웠다.


오전 시험에서 나는

1차 실기 점수가 0.5점이 부족해서

다시 불합격했다.

그동안 달달 외우며 준비해오던

구술 시험도 시험장 입구조차 들어가지도 못하고

또 탈락을 한 것이다.


감독은 내 점수를 듣더니 나보다도 더 아쉬워했다.

다행히 오후에 유소년 파트 시험이

한번 더 남아 있으니

오후에 더 잘하면 된다고 나를 위로했다.


나는 아주 근소한 점수차이로 불합격 되었으나

웬일인지 나는 안타까운 마음도 없었고

속상한 마음도 들지 않았다.

모든 것들을 달관한 사람처럼

감정이 무감각했다.


오전내내 폭우속에서 시험을 치루느라

내 대회복 정장과 흰 바지가 에 젖어서

몸에 철썩 달라붙었다.

젖은 내 머리에서 흘러내린 빗물은

발끝에서 바닥으로 뚝뚝뚝 떨어졌다.

우두커니 가만히 서서

바닥으로 떨어지는 물방울들을 바라보다가

이런 내 모습이 참 처량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날 내 친구는 나를 응원해주러

시험장에 와 있었다.

그 애는 시험장에 절대 오지 말라는 내 말에

시험을 치를 예민한 내 근처에는 나타나지도 못한 ,

오전내내 멀찌감치 숨어서

폭우속에서 시험을 치루는 나를 지켜만 봤다.

그 친구가 조용히 다가와 내 차를 타며 말했다.

친구야. 밥 먹으러 가자.


밥 생각이 전혀 없었지만

친구를 태우고 근처 식당으로 향했다.

식당으로 가는 차안에서

내가 힘들 때마다 골라듣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곡,

노트르 담 드 파리 뮤지컬

오리지널 ost 대성당의 시대

차에 연결된 블루투스로 틀었다.


볼륨을 크게 키우니 그 음악은

내 차를 가득 채우고 스피커를 울리며

웅장하게 울려퍼졌다.

우리는 음악을 들으며 아무 말 없이 앞만 바라봤다.


내 친구는 내가 불쌍했는지 자꾸 눈물을 흘렸다.

친구는 고개를 반대로 돌려

재빨리 눈물을 닦으며 울지 않은 척 했다.

친구가 나를 위해 우는 모습을 보니

코끝이 찡했다.


나는 친구에게 너스레를 떨며

왜 우냐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냥 친구가 우는 걸 모른척 하며

말없이 앞만보며 운전을 했다.


식당에서 돌아와서 나는 차안에 앉아서

오후에 치룰 시험을 대비해

때가 묻어서 너덜거리는

구술 시험 자료더미를 들여다 보며

다시 구술 시험 준비를 했다.


내가 시험 준비에 집중하도록 자리를 비켜주느라

차에서 내린 친구는 다시 내 시야에서 사라져

아주 먼 발치에서 오후내내 비속에서

시험을 치루는 나를 숨어서 지켜봤다.


오후에는 유소년 분야 시험자로서

다시 같은 코스 시험을 치룰 예정이었기에

추가로 준비해간 대회복 정장으로

말끔하게 다시 갈아 입었다.


오후 시험을 치룰 때도 비가 쏟아져 내렸다.

오전보다 폭우에 가깝게 더 쏟아져 내렸기에

갈아입은 대회복은 금새 물에 홀딱 젖어 버렸다.

비가 쏟아지는 실외 마지막 연습 마장에서

워밍업을 하고 점핑 연습을 몇 번 더 하니

다시 내 차례가 되었다.


시험장으로 들어가기 전

말을 탄 채 내 차례를 기다리며 시험장 입구에 서니

심사 위원이 나를 보더니 물었다.

어? 오전에 시험을 보신 분이시죠?

네. 오전에 일반 파트 시험을 봤고

지금은 유소년 파트 시험을 봅니다.

간단하게 대답하니 그가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날 나처럼

오전 오후 일반 파트와 유소년 파트 시험을

두번 치루는 사람은 나 이외엔 아무도 없었기에

심사 위원들 사이에서도 화제가 된 듯했다.

더군다나 나는 나이가 많은 만학도였기에

그들에게 그런 내 모습이 인상깊었던 모양이었다.


오후 시험도 큰 실수 없이 무난했다.

코스도 실수는 없었고 장애물 점핑 역시

물 흘러가듯이

자연스럽게 점핑을 했고 착지를 했다.


나이가 들어 체력이 금새 바닥난 바그다드는

오전과 오후 시험을 치루느라

체력이 급격하게 떨어졌다.

시험장에서 코스를 그리는 동안

발걸음이 점점 탄력을 잃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시험치루는 말 발걸음의 활달함은

평가항목에 아주 중요한 체크 포인트였다.


녀석은 그날 나를 위해서 최선을 다했다.

하루종일 비속에서 녀석과 한 팀으로

시험을 치룬 나는 느낄수 있었다.

시험장을 빠져나올 때

나는 바그다드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어

녀석의 목덜미를 툭툭 두들기며 말했다.

잘했어 바그다드. 최선을 다해줘서 고마워.


내 호주머니에 있던 각설탕을 꺼내서

녀석에게 몇 개 내미니

녀석은 입술로 조심스럽게 각설탕을 입안으로

말아넣더니 오도독거리며 씹어 먹었다.


그날 오후 시험 결과도 역시

0.5점 차이로 불합격이 되었다.

역시나 그동안 달달 외우며

요약 자료가 너덜거리도록 외운 보람도 없이 나는

오후 시험에도 구술 시험장에 들어가지도 못했다.

두번째 완벽한 실패였다.


감독은 나보다도 그날 결과를 아쉬워 했다.

시험은 불합격했지만

그는 작년보다 내 실력이 얼마나 늘었는지

내가 얼마나 멋지고 부드럽게

장애물을 뛰어 넘었는지를 칭찬했다.


내가 실망할까봐 날 위로하는 말이라는 걸

느낄수 있었기에 나를 잘 지도해준 감독에게도

진심으로 고마움을 표했다.


그날 구술 시험장에 들어갔다 나온 사람이

오늘 무슨 문제가 나왔는지

자기 일행에게 속삭이며 말하는 걸 우연히 들었다.

5문제 모두 내게는 아주 익숙한 문제들이었다.


오전과 오후 시험결과는

모두 0.5점 차이로 나는 탈락을 했다.

0.5점.

0.5점 차이라니.


내가 전 해 초 겨울 11월에 시험을 봤을

1점차이로 탈락한 걸 생각해보면,

내가 그동안 연습해온 결과는

겨우 0.5점이라는 점수만

업데이트 시켜놓은 꼴이었다.


한쪽 시력이 날아갈정도로 눈이 망가지고

강도 높은 훈련을 하느라

고삐를 쥐는 양 팔 근육이 망가지고

말똥 삽질 지옥에 빠져 삽질을 해대느라

어깨가 망가지며

어디 내가 죽나 사나 보자하며

연습한 결과가 그랬다.


가족들의 온갖 오해를 받으며

뼈와 영혼을 갈아넣듯이 몰입했던

그 모든 과정의 결과가

작년보다 겨우 단 0.5점을 높여놨을 뿐이었다.


시험이 끝나니 너무 무기력해져서

마른 옷을 갈아입을 생각조차 못했다.

젖은 대회복을 입은 채 차 안에 앉아 있었다.

앞 유리창위로 비가 와락 와락  퍼부었다.


푸우우우우

깊고 진한 한숨을 내쉬면서

의자 머리 받침대에

털썩 머리를 기대며 눈을 감았다.

다 끝났다.


하루 종일 먼 발치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던 친구가 다가와

나를 말없이 안아주었다.

친구야.고생했어.

고맙다.얼른 가.

나는 친구를 집으로 돌려보내고서

한동안 차안에 그렇게 앉아 있었다.


멍한 정신을 수습한 뒤에

젖은 옷을 그대로 입고서 차를 달려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뜨거운 물에 몸을 씻고서

푹신한 이불속으로 들어가

아주 길고 깊은 잠을 잤다.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가 않았고

아무하고도 대화하고 싶지 않았다.


잠에서 깨어보니

어두운 밤이 되어 있었다.

하루 종일 가방에 처박아두고

쳐다보지도 않았던 전화기를 꺼내 보니

부재중 전화가 수십통 걸려와 있었다.


내게 실기 시험 두번을 볼 방법을 알려준 교수와

내 친구들과 남편의 전화들이었다.

그들은 모두 내가 어떻게 시험을 치뤘는지

결과를 궁금해 전화를 했을 터였다.


난 이제 내가 시험을 치뤘다는 사실을 알고 있고

결과를 궁금해하는 모두에게 내가 탈락했음을 알려야 했다.

그들이 궁금해하고 있으니.


나는 제일 먼저 교수에게 전화를 했다.

간단명료하게 교수가 가장 궁금해 할 결과를 말했다.

교수님 떨어졌습니다. 둘 다요.

내년에 또 도전하죠.뭐.

교수가 나를 위로하는 말을 몇마디 했으나

나는 길게 통화를 하고 싶지 않아

감사하다는 말을 한 다음 전화를 끊었다.


다음은 내 친구들에게 전화를 했다.

친구들이 나를 응원하러 오겠다고 한 걸

내가 극도로 예민한 상태였기에

절대 오지 말라고 했었다.

내 친구들은 폭우속에서

시험을 치룰 내가 걱정이 되어

하루종일 내 전화를 기다렸다고 했다.

나는 친구들에게 간단하게 말했다.

망했다. 낙마는 안했고.


남편은 내가 하루종일 전화가 없는 것으로

그날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짐작을 했다.

결과가 좋았더라면 당장 전화를 했을 나였을테니.


내가 학교에서 돌아와 깊은 잠을 자고 일어나보니

남편이 집에 와 있었다.

남편은 말없이 뜨거운 차를 내려 나에게 내밀었다.

마셔라. 고생했다.마눌.

아무 생각말고 그냥 오늘은 푹자.


오랜시간 헛생각할 틈도 없이

한가지에만 몰입해 있다가

순간 전혀 다른 우주로 튕겨져 나온듯이

시험이 끝나고 나니 모든 것이 고요했다.


남편에게 그동안 감독 레슨을 들을수 있도록

지원해줘서 고맙다는 말을 했다.

그동안 마장 살림을 꾸려가는데도 힘든 판에

내 비싼 레슨비를 감당하느라 애써준 것이

나는 고마웠고 그 결과가 이러하니 또 미안했다.


그러나 결과가 없다해서

내가 노력해왔던 과정들이 무의미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과정이 무의미하다니.

그럴리가!

만시간의 법칙을 믿으며 달려온 나는

오늘, 결과없는 나를 자책하지 않았다.


집요하게 몰입했던 과정들과 시간들은

말 등위에 앉은 내 몸과

고삐를 쥔 내 주먹의 감각과

끊임없이 생각하고 고민했던 머리속에

아주 생생하게 남고 쌓여서

그것들이 나의 지식이 되고 경험이 된다는 걸

나는 잘 알고 있었고 또 그렇게 믿었다.


남편에게 그렇게 말했다.

나 감독 레슨 그만 받을래.

앞으론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나 혼자 알아서 해볼게.

근데,

도대체 이 끝이 어디인지, 끝장을 봐야겠어.


혼자 여행을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바로 육지로 올라가는 비행기 표를 끊었다.

생전 처음 가본 지역으로 찾아가

몇일 동안 혼자 사색을 하며 여행을 했다.


아주 어두운 새벽에 용기를 내어

혼자 더듬 더듬 찾아 올라간 주왕산 숲 속,

아무도 없는 주산지  물속에 서있던

600년된 왕버들나무 할아버지

지치고 무기력해진 나를 말없이 위로해주었다.

그 누구의 어떤 말보다도

진실되고 깊이있는 위로였다.


주산지에서 600년된 왕버들나무 할아버지와 만난 이야기는
브런치 [너희도 다 생각이 있구나]
21화. 반달가슴곰씨. 잠 깨워서 미안해
글에 담겨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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