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오후 무렵에
친자매처럼 지내는 언니가 카톡으로 말했다.
집에 있음?
저녁에 횟감 가지고 집에 갈 거니 딱 기다리삼.
나는 언니가 보낸 카톡을 읽으며 생각했다.
음! 형부가 또 큰 생선을 잡았나 보군.
형부가 낮에 바다낚시를 갔는데
꽤 큰 황돔을 잡았다는 거다.
형부가 언니에게 목에 힘을 주며
자랑스럽게 읊기를,
이 정도로 큰 황돔은 잡기 드문 일이라고 했다.
형부는 본인이 잡은 자랑스러운 생선을
횟감으로 먹기 좋게 손질하여
두툼한 생선살만 덩어리채로 잘 발라서
키친타월로 두세 겹 감싼 다음
검정 비닐 봉지에 담아서 들고 왔다.
내가 쓰는 주방칼은
내가 칼 다루는 게 어설퍼서
칼끝이 무디다.
우리 집 이러한 칼 사정을 짐작한 형부는
중산간 시골에 사는 우리 집 주방에
사시미 칼이 있을 리 만무하니
회 뜨기 적당한 사시미 칼도
검정 비닐에 넣어왔다.
형부는 우리 집 주방에서
능숙한 손길로 황돔 살을 슥슥 저며 회를 떴다.
오오오오
회는 저렇게 뜨는거구놔.
이 황돔이 머리와 꼬리가 온전히 붙어있어
지 맘대로 바닷속을 헤엄치고 다닐 적에
얼마나 크고 실한 놈이었을지
나는 횟감 덩어리 긴 길이만 봐도 가늠이 됐다.
몸통 길이만 20센티는 거뜬히 넘어 보이는
아주 큰 놈이었다.
형부는 바닷가 동네에서 태어나
바다낚시로 뼈가 굵은 촌놈답게
능숙하게 칼을 써 생선 살점을 저몄다.
형부가 만든 황돔 회가
큰 접시 위로 두툼하게 한가득 쌓였다.
육지사람들 생각에
섬사람 제주사람들은 시도 때도 없이
회를 먹겠지 생각하지만 아니다.
제주사람들은 생각보다
회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굳이 이유를 따져보면
제주 돼지고기가 워낙 맛있기 때문이다.
도민들은 생선 회보다 돼지고기를 더 좋아한다.
육지사람들에게는 믿어지지 않겠지만 이건 사실이다.
아무리 작은 동네라도
횟집 없는 동네는 있어도
돼지고기 안 파는 동네는 없다.
제주사람들에게 자고로 회란,
육지에서 친척이나 친구들이 찾아왔을 때
육지 손님 식사대접하러 가서나 먹는 게 회다.
우리도 역시 그러해서
식당에서 내 돈 내고 회 먹을 일은 별로 없다.
그런 우리가
중산간 우리 집에서
그것도 싱싱한 자연산 회를 먹을 때는
바다낚시 나간 형부가
크고 귀한 생선을 잡은 날이다.
둘째는 간만에 눈앞에 쌓인 횟감을
두 눈 뻔득이며 기다리다가
회 서넛 조각을 한 젓가락에 몰아 집고
초장에 푹 담근 다음 입안에 몰아넣었다.
회 육질은 돼지고기 살처럼
쫜득 쫜득하니 탱글탱글 죽여줬다.
돔 회가 다 떨어져 입맛을 다실 때쯤,
형부는 가져온 비닐을 뒤져
또 다른 횟감을 주섬주섬 꺼내며 말했다.
이건 내가 며칠 전 배 타고 나가서
낚시해 온 한치인데 바로 얼린 거야.
형부는 다시 능숙한 솜씨로 칼을 놀려
이차 횟감 한치를 샥샥샥 사시미 칼로 저몄다.
중산간 시골집에 출장나온
횟집 주방장 같은 모양새로 말이다.
형부는 배가 있다.
배는 밴데 선박이 아니라
크고 단단한 시꺼멍한 고무보트다.
보트에는 엔진도 있다.
형부가 우리 집에 가지고 온 한치를 잡으러
바다에 타고 나간 배로 말하자면 설라므네
차암 사연이 깊은 물건이다.
바닷가 태생이고
여전히 바닷가에 살고 있는 형부는
심심하면 방파제로 나가 낚시를 했다.
낚시에 미치면 갯바위나 방파제에서 낚시를 하다가
결국은 바다로 나가서 배낚시를 하게 되나 보다.
하긴! 그렇더라.
어떤 취미든 취미에 한번 꽂히게 되면
그다음은 취미에 필요한 온갖 고급장비를 탐낸다.
그리고 마침내,
취미생활 끝판왕 같은 일도 저지르게 된다.
예를 들어보자.
멀리 갈 것도 없다.
내 남편은 취미생활로 승마에 미쳐있다가
취미 승마의 끝판왕처럼 처음엔 말을 샀고
그다음은 아예 마장을 차렸다.
승마에 미친 남편이 마장을 차렸듯이
낚시에 미친 형부는
온갖 비싼 낚시 장비를 사모으더니
급기야 바다낚시의 끝판왕처럼 배를 샀다.
승마에 미친 남편은 마장을 차렸고
바다낚시에 미친 형부는 보트를 산거다.
낚시에 미친 형부는 차곡차곡 돈을 모아서
언니 몰래 보트를 샀다.
그리고 2년 동안 동네 바닷가 항구 구석에다가
보트를 숨겨두고서 바다낚시를 다녔다.
무려 2년 동안 그랬다.
그러다가 착한 언니에게 들킨 거다.
언니는 형부가 몰래 보트를 산 걸 알고는
너랑 사네 못 사네. 하며 화를 냈다.
그리고는 그 사실을 알자마자
언니는 당장 중고장터에 내놨다.
자전거도 아닌 보트가 쉽게 팔릴리 없었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보트를 사가는 사람이 없자
언니는 어쩔 수 없이 형부의 웬수 같은 보트를
내 운명인가 보다. 하고 받아들였다.
내가 남편이 벌인 마장을
내 운명인가 보다. 하고 받아들였듯이 말이다.
형부는 중고장터에서 안 팔리는 보트를
하나님께 감사하며 언니에게
같이 배 타고 나가서 낚시할래? 물었다.
착한 언니는 마지못해서
남편손에 이끌려서
형부 보트를 타고 바다낚시를 나갔다.
바다낚시를 처음 나간 언니는
울렁울렁 파도 위에 둥둥 떠있는 보트에서
낚시는 고사하고 으웩 우웩 멀미를 했다.
언니는 보트 위에서 대자로 뻗었고
당장 집으로 가자며 형부에게 화를 냈다.
그 후론 형부는 언니 눈치 볼 필요 없이
바다 위에서 진정한 자유를 찾았고
아주우 떳떳하게 배낚시를 다녔다.
형부는 시간만 나면
바다로 보트를 몰고 나가 고기를 잡았다.
바다속을 멋대로 돌아다니는 생선을
죽어라 잡으려고 노력하는 자.
그게 형부였다.
형부는 어부도 아닌데
크고 작은 온갖 고기를
너무 많이
너무 자주
너무 과하게 잘 잡아왔다.
형부의 그런 재주는 언니의 화를 돋궜다.
형부가 보트를 타고 나가 잡아온 생선들은
육지사람들 보기엔 이름도 귀한 생선들이었다.
그러나
언니는 생선을 먹는 것도
보는 것도
냉장고에 넣는 것도 좋아하지 않았다.
언니는 형부가 잡아온 온갖 생선을
튀기고 굽고 삶아 먹으며 없애다가
그래도 남아도는 생선에 질려버렸다.
자연산 생선을 먹어치우다가 지친 자.
그게 언니였다.
죽어라 생선을 잡으려 노력하는 자. 와
죽어라 생선을 먹어치워야 하는 자. 의 대결은
결국 부부싸움으로 흘러갔다.
생선을 먹어치우다 지쳐버린 언니는
너무 많이
너무 자주
너무 잘
생선을 잡아오는 형부에게 급기야 눈을 부라렸다.
너. 한 번만 더 고기 잡아오기만 해 봐라. 하면서
자랑스럽게 고기를 잡아오는 형부에게 쏘아붙였다.
아. 그만 좀 잡아오라고.
바다에서 얘네 맘대로 돌아다니게 쫌 내버려둬!
이젠 냉장고에 넣을 데도 읎어어.
냉장고가 아주 그냥,
생선 비린내로 진동을 한다고!
형부에게 잡힌 생선들은
큰 생선일수록(덩치가 클수록)
언니에게 푸대접을 받았고 언니 화를 불렀다.
그럴 때마다 언니네는
이 갈등의 해결책으로 우리 집을 떠올렸다.
그래. 생선 손질해 가지고
또리네 가서 같이 회나 먹자.
형부가 배낚시로 잡은 생선 때문에
언니가 사네. 못 사네. 하는 건 안타깝지만
그것이 우리 집으로 횟감으로 날아올 땐
머. 우린 땡큐다.
우리는 언니네가 이 생선들 때문에 싸우건 말건
싱싱하고 쫄깃한 횟감을 맛있게 받아먹는다.
그런 우리 모습은
형부가 잡아온 생선에 지친 언니에게도,
언니의 눈총을 받으면서도
바다로 나가 기를 쓰며 고기를 잡는 형부에게도,
아주 큰 만족감을 주었다.
집에 가만히 앉아서 우리 앞으로 배달 오는
자연산 횟감을 낼룽낼룽 받아먹으면서도
언니네 부부싸움을 가라앉히고
두 사람을 만족시키는 엄청난 재주가
우리에게 있는 것이다.
(가로 열고, 이게 뭐 어려운 일이라고. 가로 닫고)
그러나 나도 형부가 잡은 생선이 반가울 땐
딱 횟감으로 해체가 된 생선일 때나 그렇다.
언젠가 형부가 배낚시 나가서
아주우 큰 돌돔을 잡았다며
너네 요리해 먹어라. 하며 가져다주었다.
형부가 내 앞에 부려놓은 검은 비닐에는
머리부터 꼬리, 지느러미까지 그대로인,
뻥 좀 보태서,
길이 약 40센티 넘는 돔이 들어있었다.
항공모함 돔이었다.
(이 항공모함을 잡은 날,
언니는 또 얼마나 눈을 부라렸을까!)
살다 살다 그렇게 큰 항공모함 생선은 본 적도 없거니와
손질을 해본 적도
요리를 해본 적도 없는 나는
그걸 앞에 놓고 어찌할 바 몰라서 쩔쩔맸다.
눈물도 날뻔했다.
으어어어.
형부. 이 큰 놈을 어쩌라고요.
나. 얘 대가리 못 잘라아아! 하니
형부는 그 자리에서
항공모함 배를 따서 내장을 훑어내고
대가리를 잘라서 요리해 먹기 좋게 손질해 주었다.
그날 나는 큰 생선을 잡아올 때마다
형부에게 눈을 부라리는
언니의 심정을 이해했다.
결국 나는
분해된 항공모함을 냉동실에 넣어놓고서
도무지 어찌 요리를 해 먹어야 할지 몰라서
1년간 냉동보관을 하다가
결국은 마당 한구석에 흙을 파고
항공모함 장례식을 치러줬다.
(eeeC! 한 번만 더 항공모함 가져오기만 해 봐라.)
뒤늦게 안 사실이지만,
언니가 나에게 카톡으로
횟감 있으니 저녁에 너네 집 가져가마.
딱 기다려라. 한 날은
언니가 형부에게 특별히 미션을 준 날이었다.
간만에 우리 얼굴도 볼 겸
우리 집에 들를 참이던 언니가 형부에게 말했다.
오늘 저녁에 또리네 가서 같이 회 먹게
낚시 가면 좋은 걸로 몇 마리 잡아와.
생선을 잡아온다고 매번 눈을 부라리던 언니가
생선을 잡아오라고 처음 미션을 준 것이니
그날 형부는 얼마나 최선을 다해
낚시질을 했겠는가.
그러나 그날은 보통때와 다르게
낚시를 담근 지 두 시간이 넘도록
고기가 한 마리도 잡히지 않았다 했다.
바다에 둥둥 떠서 낚시하고 있는 형부에게
언니는 전화로 여러 번 재촉했단다.
쫌 잡았어?
아니. 아직 한 마리도 안잡현!
그렇지 않아도 고기가 잘 안 잡히니
형부 속은 타들어갔는데
언니는 자꾸 재촉 전화를 하니
둘이 또 티격태격했다는 거다.
이제는 태세가 바뀌어서
언니의 고기 잡아와라. 와
형부의 안 잡히는데 어쩌라는 거냐. 의 대결이었다.
그러다가 황돔이 잡혔다는 거다.
나 또리네가서 기쁨이 되고 싶어요.라는 듯이.
형부 표현이 그랬다.
나는 형부의 그 말이 이렇게 들렸다.
나 물고기 잡아서 마눌에게 기쁨이 되고 싶어요.
형부가 잡아온 생선을 놓고서
언니 부부가 싸우다가 해결책으로
우리 집으로 횟감을 가져오던,
우리에게 횟감을 가져오려고
고기를 잡으려고 용을 쓰다가
언니 부부가 부부 싸움을 하든 간에,
어쨌거나
우리는 가만히 앉아서 얻어먹는 처지인지라
언니네가 늘 고맙다.
다만,
언니네가 제발 생선 때문에 그만 좀 싸웠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