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동력 종이비행기

서울, 夢. 9화

by 노창범
당신은 어젯밤 어떤 꿈을 꿨나요?

여기,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생활하고 꿈을 꾸는 137만 명의 평범한 40대 중 한 명의, 실제 꿨던 이상한 꿈을 기록한 73개의 메모 중 하나를 들려드립니다.

그리고 그런 꿈의 씨앗이 된 현실과 함께...



나는 ChatGPT에게 물었다.


"비행기 만드는 법을 알려줘."


프롬프트는 평범한 질문으로 시작했다. 하지만 이어서 적은 프롬프트는 조금 달랐다. '무한동력'에 대한 비밀이 숨어 있었다. 아무나 짤 수 있는 프롬프트가 아니라 나만의 것이었다.


프롬프트를 모두 입력하자 ChatGPT는 예상과 다른 답을 내놓았다.

결과물은 '종이비행기'의 설계도였다.


그냥 종이비행기는 아니었다. 한 번 날리면 영원히 날아다닐 수 있는, 무한동력을 품은 종이비행기였다.


나는 뜬금없이 옆에 서있는 연예인 '남주혁'에게 무심하게 이걸 하나 만들어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별일 아니라는 듯 뚝딱 만들어주었다. 그가 만든 종이비행기는 완벽했다.



생계를 위해 나는 일을 하고 있었다.


옛 직장 상사 K부사장이 세운 연구소 에이전시였다. 몇 명의 팀원들과 함께 파견을 나왔는데, 일이 전혀 힘들지 않았다.


이유는 명확했다.

첫째, 나는 고급 노동자였다. 일이 익숙했고, 대부분의 업무는 ChatGPT가 손쉽게 해결해 주었다.

둘째, 체리나 살구 같은 일 잘하고 씩씩한 팀원들이 있었다.

셋째,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무한동력 종이비행기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남들이 어려워하는 일을 우리는 손쉽게 끝냈다.


일을 즐기는 이 팀원들과 함께라면 무엇이든 가능한 것 같았다. 일이 끝나면 나는 종이비행기를 타고 파견지 숙소가 있는 새로운 동네로 향했다. 그곳에서 여가를 즐겼다.


새로운 동네는 첫 직장이었던 P잡지의 독자들 같이 긍정적인 에너지가 가득한 커뮤니티가 있는 곳이었다. 사람들은 서로를 격려하고 응원했다. 나도 어느새 동네의 일원으로서 그런 분위기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었다.


야간 비행이 특히 좋았다.


무한동력비행기 삽화.png


도시의 불빛들이 아래로 흘러가고, 온화한 밤공기가 얼굴을 스쳤다. 종이비행기는 내가 원하는 대로 어디든 데려다주었다.



동네 야간 비행을 마치고 남주혁과 만났다.


우리는 높은 곳에서 동네의 야경을 내려다보며 침묵으로 친밀감을 나누었다. 무언가를 함께 만들어낸 사람들만이 가질 수 있는 유대감이었다. 많은 말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저 같은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꿈이 깰락 말락한 상태에서 나는 문득 생각했다. 이 종이비행기를 만드는 방법을 매뉴얼화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특허를 내야 할지에 대해서도 고민했다. 이런 기술이 있다면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눌 수도 있을 텐데.


행복한 고민이었고, 오랜만에 꾼 편안한 꿈이었다.




2025년 1월 27일

스타트업에 근무하고 있었다. 한 달 전, 함께 정부지원사업의 사업계획서를 작성하던 S가 갑작스럽게 퇴사하고 대체인력이 없는 상태에서 정부지원사업 시즌을 맞이했다.

어쩔 수 없이 AI를 내 새로운 동료로 맞이했고, 이번 시즌의 첫 사업계획서를 완성했다.


그날 퇴근길 지하철, 까만 차창을 응시하며 진땀 나고 보람찼으며 비효율적이었지만 팀워크로 버텼던 과거를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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