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명함을 디자인하는 법?

서울, 夢. 7화

by 노창범
당신은 어젯밤 어떤 꿈을 꿨나요?

여기,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생활하고 꿈을 꾸는 137만 명의 평범한 40대 중 한 명의, 실제 꿨던 이상한 꿈을 기록한 73개의 메모 중 하나를 들려드립니다.

그리고 그런 꿈의 씨앗이 된 현실과 함께...



꿈속에서 난 새 회사에 입사했다.


건물은 낡았고, 복도는 습기가 차 있었다. 엘리베이터는 단 한 대뿐이었고, 버튼은 힘껏 눌러야 빨간 불이 들어왔다. 하지만 모두 아무렇지 않다는 듯했다. 마치 삐걱이는 관절에 적응해 버린 사람처럼.


내가 앉게 된 자리는 중앙난방이 닿지 않는 회색 구역, 그중에서도 끄트머리였다. 선반 위엔 전에 일하던 사람의 머그컵이 아직 그대로 있었다. 컵에는 '끈기는 지혜의 또 다른 얼굴이다' 같은 문구가 새겨져 있었던 것 같다.



한 여자가 내 자리로 다가왔다.


관리자였다. 말투는 마치 버터를 바른 것처럼 미끄러웠다.


"당신에게 기대가 커요."


그녀가 말했다.

그리고 첫 작업으로 '현명함을 표현하는 디자인 시안'을 요청했다.


"좀 현명하게 보여야 해요. 그렇다고 너무 똑똑해 보이면 안 되고, 물론 바보 같아도 안 되겠죠?"


머릿속이 하얘졌다. 현명함을 디자인으로 표현하라니. 하지만 내 입에선 절로 대답이 나왔다.


'네, 작업해서 메일로 보낼게요'



점심시간이 되어도 내 작업 진척도는 0이었다.


'현명함'을 시각화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부엉이? 책? 생각은 돌고 돌았지만 손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직원들은 일제히 도시락을 꺼냈다. 나는 그냥 멍하니 앉아 있었다. 소외감을 느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검색하면 되잖아.'



갑자기 다음 날이 시작됐다.


관리자는 같은 말을 했고, 나는 같은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녀의 손에서 진짜 버터가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녀는 그 손으로 말없이 내 어깨를 토닥였다.


현명함 을디자인하는 법_삽화2.png


나는 말없이 일어나 그녀를 피해 회색 복도를 따라 걸었다. 어느새 복도는 미로처럼 구불거렸고, 나는 점점 안으로, 더 깊숙이 숨어버렸다.


그리고 나는 깼다.




2024년 10월 7일

회사에서 새로 오픈한 서비스는 GhatGPT API를 활용해 캐릭터형 챗봇을 만드는 빌더였다.

프롬프트를 잘 쓰면 캐릭터가 주인공인 흥미로운 스토리텔링이 가능하다며 대표는 내게 테스트 겸 샘플 스토리를 만들어 보라고 했다. 그리고 한 마디를 덧붙였다.


'글 잘 쓰잖아요?'

그 말이 부담돼 작업은 반나절이 걸렸다. 프롬프트는 스토리텔링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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