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사는 대만 오빠의 창업 이야기
서울에 대만 사람이 직접 운영하는 대만 식당이 생겼다는 소식을 들었다.
특정 브랜드가 아닌 개인이 시작하는 '무엇보다 대만 사람이 직접 운영' 한다는 소식은 대만 음식이 그리웠던 나에게 무척이나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번화가를 중심으로 크고 작은 대만(式) 식당들이 생기는 것을 봐 왔지만 대부분은 한국 사람들이 한국인 입맛에 맞게 대만 음식이라고 흉내를 내거나 한국인들이 좋아할 만한 요소를 곁들인 음식이 대부분이었다. 예를 들면 좀 더 맵싹 한 음식을 좋아하는 한국인들을 위해서 과한 MSG가 첨가되거나, 반대로 향이 강해서 호불호가 강한 고수를 아예 빼 버리는 것이다. 현지화는 중요하지만 나는 대만에서 느꼈던 그 향기를 그대로 느끼고 싶은 마음에 그러한 식당들은 늘 멀리해 왔었는데 이번만큼은 예외였다.
서울로 가는 날 아침 전날 서울을 휩쓸었던 비가 여전히 내렸다. 일정을 미룰까 하다가 내 삶이 게을러지는 것만 같아서 강행하기로 했다. 파주에서 한 시간여를 쉼 없이 달린 경의선이 청량리에 도착을 하자 내릴 준비를 하고 환승을 했다. 또다시 마을버스를 타고 걸어서 도착까지 약 2시간 반이 걸렸다.
아참, 대만 오빠는 '노원구 창동'에 있다.
창동은 인구가 많고 활발함이 넘치지만 전국 곳곳에 신도시가 많이 지어진 탓에 상대적으로 노후화된 인상을 주면서도 옛것의 느낌이 반갑게 맞이하는 그런 동네였다. 대만 식당은 마을버스를 내린 후에도 3 ~ 4분 정도 걸어야 하는 위치였는데, 주소를 따라가 보니 대로변이 아닌 작은 아파트 단지를 끼고 있는 골목 사이로 안내를 했다. 동네 사람이 아닌 이상 지나갈 일이 없을 것만 같은 길목에 위치한 아담한 규모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는 조금은 작게 느껴지면서도 내가 기억하는 대만스러움 그 자체였다.
그동안 대부분의 대만 식당이라 불리는 곳은 유행에 힘입어 유동인구가 많은 곳에서 큰 규모로 운영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나 이렇게 소박하게 정겨운 식당은 처음이었다. 가게 곳곳에는 직접 페인트칠 한 흔적이 느껴졌고 한국에서 쉽게 구하기 힘들었던 '대만을 소개하는 계간지 니하오 타이완'도 놓여 있었다. 눈길이 가는 곳곳에 사장님의 흔적들을 보면서 이곳을 얼마나 정성 들여 준비했는지 느껴졌다.
이곳에서 유일하게 낯설었던 것은 주문받는 사장님을 대신해서 주문을 도와주는 키오스크 하나뿐이었다.
2020년 4월에 한국으로 돌아왔으니 거의 2년 반 만에 소고기면을 맛 본 셈이다. 성수동에 거주할 때 건대 인근 유명한 도삭면 집을 여러 번 방문하긴 했지만 이는 마라 국물에 칼로 쳐낸 면으로 만드는 엄연히 중국음식이었기에 대만 음식과는 또 달랐다.
면발은 기대 이상으로 쫄깃했고 움푹 파인 숟가락으로 한술 뜨는 국물은 잊고 지내던 대만 DNA를 그대로 되살아나게 했다. 내가 100번은 갔다고 말하던 단골 우육면 집과는 다른 맛이었지만 대만 사장님이 직접 공수해 온 재료로 만든 소고기면 또한 결코 뒤지지 않는 맛이었다. 타지에서 라면과 김치를 먹을 때와 비슷한 기분으로 한입 한입 입 안에 오랜 시간 머금고 생각에 빠졌다. 오랜만에 대만 특유의 향기까지 머금은 채로 말이다.
대만에서 소고기면을 즐겨 먹을 수 있던 이유 중 하나는 저렴한 가격이었다. 아무리 맛있고 좋아하더라도 비싸면 자주 먹기가 부담스럽지만 대만에서 자주 가던 소고기면 집은 한화로 약 4,000원(현재는 환율과 물가 상승으로 5,000원 정도)이었다. 그렇기에 언제든지 먹을 수 있었고 지인들이 놀러 오면 필수 코스라며 데리고 가서 계산을 마친 후에 생색을 내기도 했었다.
그래서였을까? 상대적으로 12,000원이 비싸게 느껴지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하나 한국에 부쩍 늘어난 베트남 식당에서 파는 쌀국수 한 그릇 가격도 10,000원을 육박하기에 이를 뭐라고 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 한편으로는 나 또한 외식업 경험이 있는 입장에서 가격을 결정하는데 고민이 많았을 사장님의 모습도 그려졌다.
지인분은 먹는 내내 대만분이 '왜? 한국에 왔을까?'에 대해서 궁금해하셨는데 그 이유는 지인 분 또한 대만에서 인연을 맺었고 대만을 좋아하는 나와 같은 부류였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온 김에 나 또한 사장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졌다. 그러나 사장님 혼자서 운영하는 식당의 점심은 바쁘게 돌아갔고 사장님은 주방에서 나올 여유가 없어 보이셨다. 밖에 비도 내리겠다. 우리는 식당이 조용해지기를 기다렸고 맛있게 먹었다는 인사를 명분 삼아서 대화의 물꼬를 텄다. 그리고 나 또한 대만에서 살았고 그래서 오늘 이렇게 오게 되었다고 말이다.
사장님은 우리의 생각대로 한국분과 결혼을 하셨고 얼마 전에 애기가 태어나서 육아와 일을 병행하느라 더욱 정신이 없다고 한다. 그리고 '왜 여기예요?'라는 질문에는 아무래도 비용 문제로 이곳에서 작게 시작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 말에 대만 야시장에서 단돈 300만 원으로 회오리 감자 장사를 시작했던 나의 과거가 떠 올랐다.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절로 들었다.
금방 끝날 것 같던 대화는 점점 밝게 바뀌는 사장님의 표정과 목소리 덕분에 꽤나 길어졌다. 또 중국어로 시작했던 대화는 점점 한국어로 바뀌었다. 처음에는 사장님의 한국어를 걱정했지만 그의 한국어는 발음이 조금 서툰 것을 제외하면 의사소통에 전혀 문제가 없어 보였다. 이 정도면 관공서에서 혼자서 업무 처리가 가능할 정도로 보였다. 한국 남자와 대만 여자가 결혼해서 한국에서 정착한 경우는 자주 봤지만 반대의 경우가 무척이나 궁금해서 시작된 대화는 그의 다음 영업을 위해서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가게를 나왔다. 그의 성공을 기원하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