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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사고

평온에 균열이 시작된 순간

by 타이완짹슨

덜컹 소리와 함께 기차가 출발했고, 이내 느껴지는 작은 흔들거림이 본격적인 여정이 시작되었음을 알려주는 것 같았다. 서서히 속도를 올리는 열차. 동시에, 내 시야에 들어오는 풍경 또한 시시각각 바뀌기 시작했다. 그런 찰나의 순간조차도 놓치지 않고 오감으로 느끼려 애썼다. 나를 향해 불어오는 바람까지도.


시선은 줄곧 창 밖으로 향하고 있었다. 딱히, 창문이랄 것도 없는 창가에 앉아서, 얼굴을 반쯤 내 밀고 마주 오는 바람을 그대로 맞으며, 이따금 하늘과 지면을 번갈아 가면서 응시할 뿐이었다. 하늘은 잡티 하나 없는 어린아이의 피부 같았고 , 이따금 태양에 눈이 부시기는 했지만 따사로움과 시원한 바람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달리 자세를 바꾸지는 않았다.


전진하는 기차. 기차의 바퀴가 돌면서 철로와 마주할 때마다 들리는 소리는 여행을 부드럽게 감싸 안아주는 화음과도 같았다. 조용하지도 그렇다고 시끄럽지도 않은 그 사이 어딘가. '적당히 시끌벅적한 기차 안에서' 들려오는 말들의 의미는 하나도 모르겠지만 '그저, 들리는 대로 듣기 시작했다.' 그들의 손짓과 표정으로 대략 분위기 정도는 유추해 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

알아듣지 못해도 괜찮았다. 말이 안 통하는 곳이라고 걱정되거나 답답할 이유도 없었다. 이 모든 것은 여행이고, 여행은 사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잠시 머물다 또다시 앞으로 걷고 나아가는 '나그네의 삶 '과 다르지 않으니 말이다.

마음을 달리 먹으니 시끌벅적한 분위기와 그들의 대화소리조차도 무미건조할 수 있는 기차 여행에 살짝 조미료 역할을 해주는 듯했다. 이대로 한 바퀴 돌면서 실컷 멍만 때린다고 하더라도, 그래서 이대로 시간이 한 움큼 사라진다고 한 들. 괜찮을 것이다. 아니, 괜찮았다. 너무나도.

<기차가 잠시 멈추었을 때, 그 순간을 기록해 두었다>

그들의 일상, 모든 순간들을 필름처럼 차곡차곡 쌓아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내가 여행 작가라면 잠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조금 더 긴 시간 일상을 함께 밀착하면서 때로는 그들과 동행하면서, 지금껏 보지 못 한 세상을 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잠기며, 창가에 마저 몸을 맡겼다. 그러나 그러한 평화로운 시간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찰나, 순간

기차는 전진과 멈추기를 반복하며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 속도는 내가 어릴 적 아빠의 손을 잡고 탑승했던 무궁화(KTX가 없던 시절.. 에) 보다 느렸지만 '여행자에게는 적당한 속도'였다.

그저 일상을 가까이서 지켜본다는 사실만으로도 더할 나위 없이 행복이 충만했다.

그러나 '사고'는 늘 그렇듯이. 예고 없이. 또, 찰나에 순간에 찾아들었다.


어느 때처럼 속도를 줄이며 플랫폼에 진입하던 기차. 그리고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분명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도 어린아이들의 목소리였다. 순간, 알 수 없는 기시감이 찾아들었다. 애써 별 일 아닐 거라며, 그냥 어린아이가 빠르게 자기 앞을 지나가는 고양이를 보고 놀란 것이라고 믿고 싶었다. 그러나, 열차는 시간이 제법 되었음에도 출발하지 않았다. 기시감은 불길함으로.. 바뀌어갔고. 15분여를 기다렸을까? 나는 조심스럽게 기차에서 내렸다.


저 멀리,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한걸은 더 다가가 보니 사람들 틈 사이로 어린아이들이 울면서, 역무원으로 보이는 사람들 손에 끌려 나왔다. 그리고 그곳에는 누워 있는 사람이 보였다. 정확히는 일어나지 못하고 있는 듯 보였다.


그리고 철로에는 뒤집어진 도시락과, 흩뿌려진 하얀 밥알들이 눈에 들어왔다.


지금껏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사고 현장이었다. 피가 흥건하진 않았지만 드러난 상처 사이로 보이는 하얀 무언가는 사람의 뼈라는 것이었고, 팔과 다리는 내게 통증이 전달될 정도로 꺾여 있었다. 아마도 피까지 봤더라면 오열을 하거나 기절을 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입을 막고 다시금 기차에 올랐다. 그리고 약 5분 후 기차는 출발하였지만 아까와 같은 기분으로 기차에 앉아 있을 마음이 아니었다. 결국 난 그날의 남은 일정을 포기하고 다음 역에서 바로 내려 반대편으로 건넜다.


그러나 '잠시 중요한 사실 하나를 망각하고 말았는데' 아까 사고 난 역을 지나쳐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사실을 사고가 난 역으로 진입할 때 인지했다. 그리고 같은 자리에는 방수포 같은 것이 하나 덮어져 있었다. 아마도, 방수포 안에는 더 이상 숨을 쉬지 않는 그녀가 있었을 것이었다. 순간.. 여러 감정이 밀려들었다. 사고로 인해서 사망을 한 사람을 본 충격과, 사람이 죽었는데 고작 방수포 따위로 덮어두었다는 이곳의 현실에 화가 치밀기도 했지만 지나가는 나그네가 달리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저 고인의 명복을 빌어줄 뿐. 그리고 울면서 그 자리를 벗어난 아이들이 괜스레 궁금했지만 기차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그 자리를 벗어날 뿐이었다. 결국 나는 그날 쉽사리 잠들지 못했다. 밤새 자다 깨기를 반복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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