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이 슬프지 않은 이유
마지막 날 아침이 밝았다.
헤어질 시간이 찾아왔다. 이날은 가족들 모두 외출이 있었기 때문에, 전날과 다르게 다들 분주한 아침. 한가한 건 그저 손님으로 머물고 있는 나뿐이었다. 점점 다가오는 작별의 시간을 덤덤하게 받아들이며 말이다.
전날 밤. 우리는 TV앞에 함께 둘러앉아 드라마를 시청했다. 나는 거실에서 자야 했기에, 별 다른 선택권 없이 자연스럽게 시청? 하였는데, 내용이 대략 부잣집으로 시집간 며느리의 고부간 갈등이 줄거리 같았다. 게다가, 드라마는 터키에서 수입되어 아랍어 자막으로 시청하는 식이었다. 당연하게도 무슨 말인지는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드라마라는 것이 전 세계 다 비슷비슷하구나 싶었다. 곧이어 드라마가 끝나고 할머니와 며느리는 심각하게 대화를 이어 나갔다. 아마도, 결정적인 순간에 드라마가 끝나서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멈칫, 그 모습이 돌아가신 외할머니의 잔상과 겹쳐 보였다.
동시에 내 마음 한 편에는 헛웃음이 나왔다. '지구 반대편 아프리카 모로코 카사블랑카에 온 것도 모자라 비행기에서 처음 만난 모하메드를 따라와 그의 부모님 집에서 같이 드라마를 보는 이 상황'이 잠시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지금 생각해 보면 소위 '유튜브 각'인데 말이다)
집을 나서기 전. 모하메드가 모두를 불러 사진을 찍었다. 사진 찍는 게 어색했던 할머니. 그리고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인지 어리둥절한 아이들. 그리고 사춘기에 접어든 모하메드의 딸 클라라까지.
이후 이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이들과의 물리적 이별은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이다. 그럼에도 순순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이유는 단순했다. 그게 여행이었고 동시에 유일한 선택지였으니 말이다. 그래서 이별이라는 것이 그리 슬프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아름다운 이별이라는 것이 이런 것일까?"
집을 나선 후. 나는 앞만 보고 걷기 시작했다. 약간의 슬픔과 아쉬움 사이에서 생각에 잠기던 찰나. 내 옆으로 짧고 굵은 클락션 소리가 툭 치고 지나갔다. 무의식 중에 반응하는 찰나에 차는 빠르게 앞으로 달아나고 있었다. 동시에 내 시선이 자연스레 앞차로 향했는데, 그때 차 오른쪽 문으로 나를 향해 흔드는 손이 보였다. 그리고 그 손은 분명히 할머니의 손이었다.
할머니의 손이 내 시야에 머문 시간은 고작 3초 남짓. 아쉽게도 사진으로 남겨놓은 기록은 없지만 내 여행이 더 이상 부족함 없이 채워지는 순간이었다. 그래서, 누군가 나에게 가장 행복했던 한 해를 묻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서른 살의 봄'이라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