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THIS IS FOR YOU

by 타이완짹슨

여행 한 줄, 사진 한 움큼 EP 23.


엄지 척, 고마워요.

'D H'

한글로 발음하면 디르함. 다름 아닌 모로코 화폐 단위이다. 1 디르함의 한화 가치는 약 140원. 현재 환율로 계산하더라도 1잔에 4 디르함 하는 오렌지 주스 한잔의 가격이 600원이 채 안 되는 셈이었다. 여행의 배경이 2013년인 것을 감안했을 때 현재도 4 디르함에 팔고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물가 상승으로 현재는 그 2배인 8 디르함이라고 하더라도 한화로 천 원 남짓이니, 한국에서는 0 하나를 더 붙여야 겨우 먹을까 말까 한 천연 착즙 주스를... 모로코 마라케시에 도착하자마자 원 없이 마셔대었던 기억이 있다.

비행기로 불과 2시간 거리에 위치한 바르셀로나에서는 생수 한통도 2,000원부터 시작해서 1리터 PET병에 물을 채워서 가방에 무겁게 들고 다니던 내게 모로코의 물가는 잠시 천국으로 회귀한 기분이 들게끔 했다.


0.5 디르함의 의미

가난한 여행객이 일말의 고민 없이 '한잔 주세요'라고 외칠 수 있었던 것은 믿기 어려울 정도로 저렴한 가격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이곳을 다시 방문하게 만든 것은 그들의 밝은 인사와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드는 환한 미소 때문이었다.


그들의 미소는 오렌지만으로 채워지지 않는 순수한 비타민 C를 보충해 주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여기서 끝나지 않고 계산을 마친 나에게 곧바로 작은 동전 하나를 건네주면서 내게 말했다.


THIS IS FOR YOU.

동전은 다름 아닌 0.5 디르함이었다. 동전을 내 앞에 올려놓을 때 동전과 작은 트럭에 만들어진 간이 테이블 위로 맞닿으며 발생하는 그 생생한 울림이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 있다. 화폐의 실제 가치는 한화로 100원도 안 되는 금액이었지만 내게 전달된 감동의 가치는 100원이 아닌 100만 원짜리처럼 느껴졌으니 말이다.

작은 동전 하나까지도 이토록 선명하게 기억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때로는 어제 무엇을 먹었는지도 잠시 고민을 하는 것이 기억인데, 10년이 지난 지금도 수많은 일상을 거치면서 지워지지 않고 수많은 기억들 사이로 여전히 저장되어 있다는 것은 마치 한 생명이 태어나는 과정과도 같은 것이 아닐까?

문득 나는 궁금해하고는 한다. 그 시절 온 힘을 쥐어 짜내며 오렌지 주스를 만들어주었던 해맑은 청년들은 아직도 그곳에 있을까?라는 그런 궁금증. 어쩌면, 그것은 궁금증보다는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지난 추억에 대한 그리움일 것이다.

비록 그들의 인생에서 나란 존재는 그저 스쳐가는 수많은 낯선 외국인 여행객이었을 수도 있겠지만, 내게 그들의 열정과 호의는 평생 소중한 추억의 한 조각들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 기억을 애써 붙잡고 싶은 마음에 오늘도 글을 끄적거린다.
수,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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