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메이너드 케인스
김성아 옮김
포레스트북스
2023년 10월 4일
1.
100년쯤 전인 1930년, 영국의 경제학자인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우리 손자 손녀들이 누릴 경제적 가능성 Economic Possibility for Our Grand-children>이라는 에세이를 발표한다. 에세이의 형식을 빌렸지만, 변변한 경제 이론이 발달하지도 않았고 이를 연구할 수 있는 도구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던 당시 상황에서 그는 에세이를 통해 백 년 후의 세계 경제 지표를 놀랄 만큼 정확하게 예측한다.
케인스는 100년 후에는 모두가 경제적으로 8배는 더 잘 산다고 예측하면서 그때는 평균 노동시간이 예측 당시의 1/4 정도인 주 15시간에 지나지 않을 것이며, 그 정도면 경제 문제에서 해방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그때가 되면 더 이상 자신의 경제적 안위를 위해 사는 게 아니라 타인의 경제적 안위를 챙기는 걸 합당하게 여길 것이며, 그로써 얻은 자유를 어떻게 누릴 것인지 여가는 어떻게 채울 것인지 고민하게 될 것으로 예측한다.
그로부터 백 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케인스의 경제 예측은 놀랄 만큼 정확하게 실현되었다. 케인스의 예측을 수치화하면 연평균 성장률이 2.1%인데 실제로 지난 기간 연평균 성장률은 2.9%에 이르렀다. 그 결과 경제력은 17배가 되었다. (케인스가 예측한 8배의 두 배가 넘는 수치이지만, 경제학자들은 그 정도를 놀랄 만큼 정확한 거라고 표현한다) 하지만 그가 주 15시간으로 예측한 평균 노동시간은 예측한 값의 3배가 넘는다. 살림이 훨씬 나아지기는 했어도 더 많은 지역에서 경제적 고통을 겪고 있으며, 여가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 차이는 무엇이고 어디서 비롯되었는가? 이러한 질문을 놓고 케인스의 연구자 18명을 모아 케인스 예측에 대한 그들의 분석 결과를 이 책으로 발간했다. (번역은 2023년 이루어졌지만, 이 책이 발간된 것은 그보다 15년이나 앞선 2008년이다) 결국 이 책은 경제 형편은 예측한 것보다 훨씬 나아졌는데 왜 노동 시간이 줄어들지 않았으며, 경제 활동에서 해방된 사람이 이토록 드문가 하는 데 초점이 모일 수밖에 없다.
연구자들은 우선 케인스가 노동을 전반적으로 비하했다고 입을 모은다. 노동은 수입을 얻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일로 여겼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케인스의 생각은 간단한 사례 몇 개만으로도 쉽게 무너진다. 미국은 프랑스나 독일보다 GDP가 30~40% 높지만 노동시간은 30% 더 길다. 프랑스나 독일은 휴가도 한 달 이상 가는 데 비해 미국은 2주 휴가조차 제대로 쓰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게다가 고학력 고임금일수록 그렇지 않은 이들과 비교해 노동시간이 더 많고 그 격차도 점점 더 벌어진다. 2003년 기준으로 교육 수준이 높은 미국인은 낮은 미국인에 비해 노동시간이 15% 길다.
노동이 케인스가 말한 대로 열등재(inferior goods)였다면 고액 연봉자들이 일 중독 증세를 보이는 건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거기까지 갈 것도 없다. 놀고먹어도 될 만한 사람들이 굳이 일자리를 찾는 건 일도 아니지 않은가. 나 자신이 좋은 예이기도 하고. 오해는 마시라. 놀고먹을 수 있는 형편은 아니니. 게다가 컴퓨터와 인터넷으로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일할 수 있게 된 것도 큰 영향을 미쳤다.
다음으로 꼽을 수 있는 건 만족을 얻을 수 있는 수준이 그 못지않게 높아졌다는 것이다. 예상조차 힘들었던 편의상품이 종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개발되고, 이젠 그것을 가지지 못하면 스스로 빈곤하다고 여긴다. 에어컨, 냉장고, 세탁기, 식기세척기가 그렇고 컴퓨터와 엄청나게 커진 TV가 그렇다. 이런 편의상품에 대한 욕구가 채워지면 그 범주의 상품은 열등재로 전락한다는 말이다. 그러니 쓸 곳은 무한정으로 확대되는 것이고.
여가 비용은 그보다 더 가파르게 상승한다. 짜장면이나 불고기면 만족했던 외식은 파인다이닝으로 진화하고, 파인다이닝을 주도하는 셰프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가격의 메뉴들을 만들어낸다. 이제는 기억에 남는 외식이 되려면 수십만 원으로는 어림도 없는 세상이 되었다. 부유해질수록 그 격차는 더욱 커지고. 이는 어쩌면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부자에 대한 개념이 바뀌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단순히 잘 사는 게 아니라 남보다 잘 살아야 하는 것으로. 남들보다 잘 산다는 게 끝 간 데가 있는 게 아니지 않은가.
의료 기술이 발달도 비용증가로 이어진다. 이전엔 배고픔이 문제였다면 이젠 영양 과다로 비만이 사회문제가 되었다. 없던 병이 생긴 것인지 예전에 모르고 넘어갔던 병을 새롭게 인지해서인지, 시간이 지날수록 병명과 환자는 오히려 늘어간다. 서민이 영세민으로 전락하는 가장 큰 이유가 질병이라는 것도 그렇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케인스의 공헌이 평가절하되는 건 아니다. 앞서 언급했듯 당시 상황을 고려하면 믿을 수 없을 만큼 예측이 정확했고, 그것이 후대의 많은 학자에게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놀랍게도 몇몇 필자는 케인스의 예측은 맞았지만, 그것이 모두 잘못된 추론의 결과였다고 말한다. 말하자면 엉터리 이론으로 추정한 것이 운 좋게 맞은 셈인데. 사실이 그렇다면 케인스의 예측을 맞았다고 평가하는 게 과연 옳은 일인지는 잘 모르겠다.
2.
이과생이니 경제와 거리가 가깝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도 경제 방송을 열심히 듣고 간혹 경제 서적도 들여다본다. 그 시작이 경제 대공황이고 케인스였다. 경제를 안다고 하는 사람들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경제 대공황과 케인스를 알게 된 건 오로지 명지대 김두얼 교수와 지금은 경제 유튜브 방송으로 입지를 굳힌 <삼프로TV>의 전신이었던 <경제의 신과 함께>라는 팟캐스트 방송 덕분이다.
당시 사우디 동부에 출장 갈 일이 많았다. 대중교통이 불편하기 이를 데 없는 곳이어서 늘 차를 가지고 다녀야 했고, 장거리 운전하면 늘 졸음 때문에 힘들어했던지라 아내가 따라나서곤 했다. 가도 가도 끝없는 사막을 가로지를 때 친구가 되었던 방송이 바로 경제 대공황과 케인스였다. 덕분에 함께 다니던 아내도 골격은 이해할 정도가 되었다. 그렇다고 케인스 책을 찾아 읽을 생각은 하지 못했다.
벌써 한 해도 훌쩍 지난 일인데, 사우디 경제 지표를 살피다가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어 김두얼 교수께 설명을 부탁드렸다. 흔쾌히 시간을 내어주셔서 설명도 듣고, 학교 식당에서 점심도 얻어먹고, 케인스와 크루그먼의 책을 선물로 받기까지 했다. 크루그먼의 <경제학 입문>은 족히 두 학기 강의 분량은 되는 책이어서 후일로 미뤄두고 만만해 뵈는 <다시 케인스>를 꺼내 들었다. 열세 시간 비행이라는 지루함에 안성맞춤인 해결책으로. 자다 깨기를 반복해도 그 시간 정도면 다 읽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재미있어서 내쳐 다 읽었다.
그렇기는 했는데 그렇다고 케인스를 알았다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저 그 사람이 누구고 왜 유명한지 알게 된 정도라고나 할까. 그래도 세상이 한두 가지 이론으로 설명될 만큼 간단하지 않다는 걸 새삼 확인한 정도의 소득은 있었다. 욕심은 결코 채워지지 않는다는 평범한 진리도 다시 한번 확인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