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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잉여일기

2022.09.22 (목)

by 박인식

베르겐에 들어와 잠시 방향을 잃었다. 좀처럼 없는 일인데 아내까지 곁에 있으니 당황스러웠다. 그런데 당황스러운 일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부두로 나가 어시장부터 찾았는데, 싱싱한 생선으로 가득 찼던 좌판은 간 곳이 없고 지붕만 덮은 얄궂은 해산물 음식점 하나에 뜬금없는 소시지 좌판 몇 개만 덩그러니 놓였다. 관광철이 지나서였을까? 어시장 너머에 보이는 브뤼겐 목조가옥들은 예전의 화려한 색깔은 흔적도 없고 내가 뭘 봤던 걸까 싶을 정도록 퇴색되고 퇴락했다. 수백 년 내려오던 것이 불과 삼십 년도 되지 않아 그렇게 퇴락할 수는 없는 일인데.


기억을 더듬어 플뢰옌 산으로 올라가는 등산전차 정거장을 찾았다. 그곳부터 시작했던 동화에나 나올 법한 그림 같은 집들과 오밀조밀한 골목을 보면 생각이 달라질까 싶었다. 그 집들은 그대로 그 골목도 변함없이 거기 있는데 예전의 감동은 살아나지 않았다. 그저 유럽 골목이 다 그렇지 하는 생각이 들었을 뿐.


그렇다면 내 발길을 다시 불러들인 그 강렬했던 기억은 무엇이었을까? 난 도대체 무엇을 보았고 무엇에 그렇게 감동했던 것일까?


아내도 내심 의아했던 모양이다. 평소에 함께 가야한다며 그렇게 노래를 부르던 곳에 오기는 했는데 감동은커녕 며칠 전에 묵었던 이름 없는 크리스티안산에도 미치지 못하니 말이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혼잣말 하는 걸 지켜보던 아내가 한 마디로 정리한다. 그동안 많이 봤잖느냐고. 처음 봤을 때 감격만 하겠느냐는 말이다.


그러고 보니 사흘은 너무 길었다. 실망한 마음으로 오전에 떠나는 피오르드 크루즈에 올랐다. 그거라고 뭐 다르겠나 했는데 반전이 일어났다. 장관이었고 앞선 아쉬움을 단칼에 날려버릴 만큼 압도적이었다. 그것으로 이곳에 온 값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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