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인식 Apr 29. 2024

네옴에 대해 풀리지 않는 의문

사우디가 거대사업인 네옴시티를 발표했을 때 많은 이들이 과연 그것이 실현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던졌다. 나 역시 실현되기 어려운 사업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른 이들처럼 기술적인 문제 보다는 과연 900만 명에 이르는 인구를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 자금은 어떻게 조달할 것인지 하는 문제가 더 클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질문이 하나 있었다. 바로 네옴시티의 성격이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외국 사례도 다르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신도시 계획을 발표할 때 도시의 성격을 먼저 규정하고 시작한다. 어떻게 보면 도시의 성격이 먼저 규정되고 건설계획이 뒤따르는 게 맞는지도 모르겠다. 결국 도시의 성격이 그 도시가 건설되어야 하는 이유이자 필요성일 테니 말이다.


그런데 사우디 정부는 네옴시티는 발표하고 7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도시의 성격을 분명하게 밝힌 일이 없다. 네옴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그저 “세계적인 수준의 생활 환경, 기업도시의 원형, 미래를 창출하는 커뮤니티, 선진적이고 청정한 에코시스템, 기업친화적 도시”와 같은 캐치프레이즈만 무성할 뿐, 네옴시티에서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할 수 있는지는 짐작할 만한 단서조차 보이지 않는다.


인구 900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도시라면 가히 메트로폴리탄이라고 할 만큼 세계적인 규모이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서울 인구가 996만 명으로 34위이고 런던이 904만 명으로 37위이다. 그러니 지금 계획으로는 네옴시티가 세계 40위권이다. 살펴보니 40위권 도시 중 계획도시는 하나도 없고 모두 오랜 역사를 가진 자연발생적 도시들 뿐이다. 이런 상황은 리스트에 올라 있는 81개 도시가 모두 마찬가지이다. 결국 네옴시티는 역사에 유례없는 도시라는 말이다.


그런데 사우디 정부는 역사에 없는 도시를 만든다면서 천만 가까운 인구가 도대체 뭘 해서 먹고살도록 만들겠다는 것인지도 밝히지 않았다. 그래서 계획이 발표된 이후 네옴시티를 움직일만한 동력이 무엇이 될 것인지 틈날 때마다 찾아봤다. 네옴시티 홈페이지에는 위에서 언급한 캐치프레이즈 정도만 확인할 수 있었다. 2023년 7월 말,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네옴시티 전시회가 열린 일이 있었는데, 그때 전시품도 몇 개 되지 않은 곳에서 혹시나 질문에 대한 단서를 찾을 수 있을까 싶어 두어 시간 동안 전시물을 하나하나 뜯어보았다.


네옴시티는 발표 당시 대표 사업인 ‘더 라인’과 함께 해양리조트 ‘신달라’, 산악리조트 ‘트로제나’, 그리고 산업도시인 ‘옥사곤’으로 이루어져 있다. ‘신달라’나 ‘트로제나’가 수입원이 되기는 하겠지만 그것으로 900만 인구가 먹고살 일은 아닐 것이니 네옴시티의 엔진은 ‘옥사곤’이 될 것으로 짐작했다. 하지만 ‘옥사곤’ 레이아웃을 살펴보니 그렇지도 않았다. 거기에 들어있는 것은 water & food innovation hub, urban cluster, 제조업,해양연구소, 항구 및 물류단지, 카고와 그곳 주민을 위한 배후시설뿐이었다. 면적도 48제곱킬로미터로 서울 서초구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혹시나 하고 ‘더 라인’을 살펴봤지만 그곳에는 주택, 의료, 문화, 교육, 판매 시설 뿐이었고 기업활동이 가능한 시설로는 오피스가 유일했다.


현 상황을 종합해보면 ‘더 라인’에는 사우디인들보다는 외국에서 새로 유입되는 부유한 외국인들이 더 많이 살 것으로 보인다. 그리로 옮기는 사우디인들도 그렇고 더구나 그곳에 살겠다고 찾아오는 외국인들이 과연 무엇으로 수입을 올릴 것인지 아직도 답을 찾을 수 없다. 마침 네옴시티에서 ‘옥사곤’ 계획을 담당하는 한국 교민이 가깝게 지내던 이웃이어서 전화해보니 밝힐 수는 없지만 놀라운 계획을 준비하고 있다고는 했다. 그래도 서초구 만한 넓이에 지나지 않는 산업단지에서 특별한 부가가치를 올릴만한 산업을 유치했다는 발표도 아직 나지 않았다는 것은 인구 900만 명에 이르는 네옴시티 계획의 실현 가능성을 상당히 떨어트리는 요인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인터뷰나 강의 영상을 수없이 돌려보는 편이다. 혹시 잘못 설명한 것은 없는지 살피기도 하지만 내 논리가 허점은 없는지, 팩트체크 과정에서 행간을 놓치지나 않았는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르면 상황이 바뀌고, 상황이 바뀌면 판단도 바꿔야 하고.


오늘도 예전에 했던 강의 중에서 네옴시티의 도시 성격에 대해 의문을 표했던 부분을 돌려보는데 문득 사우디 정부가 네옴시티가 발표한 계획대로 가지 못할(혹은 가지 않을) 것으로 예상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외적으로는 인구 900만 명을 수용하는 도시라고 발표했지만 내심은 몇십만 명 규모의 도시를 생각했던 것이 아닌가, 뭐 그런 생각을.


그렇다면 당초 900만 명이던 계획이 어느새 150만 명으로 줄어들고 그것이 다시 30만 명에도 이르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은 관측이 아니라 원래 시나리오에 들어있던 것으로 봐야 하는 게 아닐까 싶더라는 말이다. (실제로 2005년 시작한 킹압둘라 경제도시(KAEC)도 2020년 인구 200만 명을 목표로 삼았지만 시작한 지 20년이 된 지금 인구가 채 1만 명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런데 궁극적으로 인구 100만 명 정도의 중소도시를 생각한다면 ‘옥사곤’이 그렇게 커야 할 필요도 없고.


갑자기 모든 현상이 딱딱 아귀가 맞아들어간다. 이러다 뇌피셜이 현실이 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사우디 PIF 운용자산 확대 계획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