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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잉여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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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May 02. 2024

2024.05.02 (목)

결혼해서 지금까지 이사를 열 번쯤 했다. 사우디 다녀와 다시 그 집으로 돌아간 것까지 따져도 그 정도이니 그리 많은 편은 아니다. 그런데 서울로 돌아와서 채 삼 년도 안 되는 사이에 이사를 세 번이나 했다. 집도 세 번 고치고. 돌아온 건지 아닌지 애매한 상태로 지내다 보니 그리되었다. 서울로 돌아온 것이 아주 귀국한 것이 되기까지 일 년도 더 걸렸거든.


서울로 돌아올 때 트렁크 두 개 들고 왔는데 그 사이에 이삿짐이 화물차 한 대로 다 싣지 못할 만큼 늘어났다. 아무것 없어도 사는데 불편하지 않다는 걸 깨달았고, 그래서 그렇게 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줄 알았다. 착각도 유만부득이지.


마지막 집이라고 생각하고 이사 왔으니 다시 이사할 일은 없을 것이다. 세상에 장담할 일이 어디 있을까 마는, 아무튼 그런 생각으로 거동이 자유롭지 못하더라도, 혼자 살게 되더라도 큰 불편 없이 지낼 수 있도록 요모조모 신경을 썼다. 가능한 한 없애고, 줄이고, 단순하게 만들었다.


편치 않은 허리를 생각해서 높이를 조절할 수 있는 책상도 장만했다. 작년부터 책상이 앉아있는 시간이 늘어나다 보니 그렇지 않아도 문제가 있던 허리가 슬슬 애를 먹이기 시작했거든. 무릎 의자를 사놓고도 책상 높이가 맞지 않아 사용하지 못했는데, 높이를 맞춰놓고 써보니 무릎 의자가 정말로 허리 아픈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기는 하겠더라. 자세에 따라 맞는 책상 높이를 찾아서 기억시키는 동안 지금까지 사용하던 책상이 조금 낮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책상을 5센티미터 정도 올리니 자세도 곧아지고 허리 통증도 줄어들었다.


저녁 먹기 전에 이삿짐 정리를 다 끝냈다. 식사하면서 적절한 때에 적절한 거처를 허락하신 은혜에 감사드리고 고단해서 하루 건너뛰려던 성경 쓰기를 다시 꺼내 들었다.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은밀한 중에 보시면 죄밖에 안 보이실 텐데. 그건 안 갚으셔도 되는데. 걱정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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