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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Jul 11. 2024

2024.07.11 (목)

책을 내라는 권유를 받았을 때 마지막까지 나를 망설이게 만든 건 글의 순서와 제목에 대한 불안감이었다. 글을 쓸 소재는 충분했고 그것을 그려낼 자신도 있었지만, 그 소재를 독자들의 관심을 끌 수 있도록 배열하고 제목을 붙이는 일이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건 기껏해야 분야별로 나누는 정도였다. 사우디는 워낙 알려진 게 없으니 정보가 필요한 사람에겐 분야별 배열이 편할 수는 있었겠다. 하지만 그럴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다행히 출판 기획이라면 어디에도 빠지지 않는다는 출판사를 만나 너무도 훌륭하게 문제를 풀 수 있었다. 비록 책을 내고 백일이 되어가도록 2쇄도 찍지 못해 선의를 베풀어준 출판사에 짐이 되고 있지만, 완성되어 나온 책 자체는 한 치의 아쉬움도 남아있지 않을 만큼 만족스럽다. 아직도 책 만들던 때를 생각하면 즐겁다.     


그렇다고 그 과정이 온전히 즐거웠던 것만은 아니다. 그동안 이런저런 경로를 통해 책 만드는 이들의 글을 읽을 기회가 많았다. 그러면서 ‘책은 편집자가 저자의 목덜미를 잡아끌고 가면서 만드는 것’이라는 정도의 기본 이해는 갖추고 있었으니 편집자와 별 마찰 없이 작업을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처음 보낸 원고에 대한 편집자 검토를 받아들고는 몹시 당황했다. 글을 난도질해 놓은 것이다. 두 번 세 번 거듭해 읽으면서 당황스러움은 분노로 바뀌었다. 손이 떨려 글을 쓸 수 없었다.     


평생 글 쓰는 것으로 밥벌이했다는 것이 과언이 아닐 만큼 내가 해왔던 일은 글쓰기의 연속이었다. 수십 년 조사보고서와 설계보고서를 썼고 사우디에서는 제안서를 십 년 넘게 썼다. 그게 무슨 글이냐고 할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독자가 동의하지 않으면 팔리지 않는 책과 독자가 동의하지 않으면 다시 작업해야 하는 글의 부담이 같을 수는 없는 일이다. 동료들도 모두 마찬가지였지만 나는 그중 유독 글에 집착을 보이는 편이어서 욕이란 욕은 다 먹고 살았다.     


나는 지금도 온라인에 글 하나를 허투루 올리지 않는다. 미리 써서 교정을 몇 번이나 보고 나서야 글을 올린다. 이미 알아차린 이도 있겠지만, 내 글은 포스팅한 후에도 계속 바뀐다. 어느 글이든 적어도 열 번은 읽고 서너 번은 고친다. 그런 내 글이 누더기가 되어서 돌아왔을 때 그걸 받아든 내 마음이 어땠을지 짐작하시겠는가?     


출판사에서 눈치를 챈 것 같기는 한데, 사실 그때 책 쓰는 걸 접을까 심각하게 고민했다. 다행히 편집자가 바뀌고 책은 잘 마무리되었다. 오늘 페북에 올라온 대단한 저자와 대단한 편집자가 격돌한 이야기를 읽다가 문득 그때 일이 생각났다. 그때 내가 편집자의 지적을 받아들였다면 어땠을까? 그랬으면 책이 좀 나아졌을까? 그랬으면 독자의 관심을 조금은 더 받을 수 있지 않았을까?     


설령 그랬더라도 나는 그럴 마음이 없다. 이젠 글이 내가 되었는데 내 글을 버리라는 말은 나를 버리라는 말과 다르지 않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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