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금지법, 그리고 성소수자
독일에서 ‘성별 자기 결정법’이 통과되었습니다. 정식 명칭은 ‘성별 입력과 관련된 자기결정권에 대한 법안(SBGG)’입니다. 이 법안이 발효되면서 18세 이상의 독일 시민은 스스로 성별을 변경할 수 있습니다. 남성, 여성뿐 아니라 성별을 밝히지 않는 것도 가능합니다. 14세 미만의 어린이도 성별을 변경할 수 있는데 이 경우에는 보호자의 서류가 필요합니다. 14세부터 18세 미만 청소년의 경우엔 부모나 법적대리인 동의가 필요합니다.
다른 곳도 아니고 손녀들이 자라는 독일이다 보니 여러 생각이 듭니다. 많은 분이 아시겠지만 저는 ‘차별금지법’을 이 사회에 반드시 있어야 하는 법으로 여깁니다. 그래서 이번에 통과된 법률 때문에 여러 생각이 드는 것은 그것이 잘못된 결정이고 사회에 해악을 끼치기 때문이 아니라 그 법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거나 이해하려 들지 않은 이들 때문입니다. 조만간 이 일이 우리 사회에 논쟁거리로 등장할 텐데, 그로 인한 소란이 어떨지 짐작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지요.
저는 십수 년 외국에서 살다가 코로나가 한창이던 2021년 10월 말에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당시에는 입국자 격리가 의무였지요. 격리가 풀리자 제일 먼저 한 일이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기 위한 부산-서울 평등법 걷기에 참여한 일이었습니다.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고 묵묵히 대열을 따라 걷는 걸 본 활동가 한 분이 어떻게 참석하게 되었느냐고 물었습니다. 기독교인으로서 너무 미안해서 이렇게라도 미안한 마음을 표시하고 싶었다고 대답했습니다.
그 이유는 아래에 정리한 글과 같습니다. 4년 전 차별금지법 반대 광풍이 한국교회를 휩쓸기 시작했을 때 썼던 보고서 12편의 결론입니다.
제 신앙으로는 차별금지법을 주장해야 할 교회가 그것을 반대하는 걸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몇 달 동안 자료를 찾고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임상 기준도 확인하고 논문도 적지 않게 읽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보고서 12편을 쓰게 된 것이지요. 링크는 아래에 달아 놓겠습니다. 궁금하신 분들은 한번 살펴보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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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진 것’도 없으면서 평생 ‘가진 자’의 논리로 살아왔다. 그 논리로 약자를 비판하고, 때로는 혐오하기도 했으며, 그들을 차별하는 일에 동조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였다. 십여 년 한국을 떠나 살면서 비로소 그런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고, 그것이 예수정신과 무관한 것이 아니라 예수정신을 정면에서 거스르는 것인 줄 깨달았다. 어쩌면 내 완고한 생각이 좀처럼 고쳐지지 않으니 살던 곳에서 멀찌감치 띄워 놓으신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돌아보니 은혜가 아닐 수 없다.
차별금지법은 약자를 혐오하지 말고 차별하지 말자는 법이다. 어느 누구도 남을 혐오하거나 차별할 권리는 없다. 그것은 권리일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차별금지법은 누구의 권리도 제한하지 않는다. 이 법이 권리를 제한하기 때문에 반대한다면, 그것은 누군가를 혐오하고 차별하겠다는 선언으로 여길 수밖에 없다. 그것은 결코 예수정신일 수 없으니, 예수정신을 부르짖는 사람들이 주장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두 달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차근차근 살펴본 것처럼, 1) 차별금지법은 동성애에 반대하거나 그런 의사를 표현하는 것을 제한하지 않으며, 2) 동성애는 선천적으로 타고난 것이므로 질병이 아니며 따라서 전환치료가 불가능하고, 3) 성경에서는 성적 쾌락을 얻기 위한 폭력으로서의 성행위를 금하고 있을 뿐 성적지향으로서의 동성애는 인식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 삼위 하나님의 한 분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께서는 이에 대해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나는 자기 신앙으로 다른 신앙을 가진 사람들을 폄훼하고 적대시하는 종교는 기독교 말고 본 일이 없다. 기독교인으로서 기독교인들의 무례함에 늘 몸 둘 바를 모르고 살았다. 신앙의 이름으로 저지르는 무례함이 혐오를 넘어 이제는 차별을 정당화하기에 이르렀다. 비단 동성애 논쟁 뿐 아니다. 무슬림을, 난민을 혐오하고 차별하는 것을 오히려 신실한 것으로 여긴다. 과연 그런 혐오와 차별이 여기에 그칠지도 장담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동성애자를 혐오하고 차별하면 안 된다고 이렇게 구구절절이 늘어놓는 나도 아직 그들에게 흔쾌하게 다가가지 못한다. 어디 동성애자뿐이겠는가. 무슬림, 난민, 나와 출신이 다르고 살아온 배경이 다른 이들에게 아직도 거리감을 느낀다. 비극적인 것은 우리보다 낫게 사는 사람들에게는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법에 대해 다르게 해석할 수 있고, 동성애가 선천적이 아니라는 학술논문도 적지 않다. 수천 년 전에 기록된 성경에 대한 해석이 학자마다 다른 것은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예수정신이 사람에 따라,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건 아니지 않은가.
이번 차별금지법 파동이 오히려 모든 기독교인이 스스로 신앙이라고 여기던 것이 과연 예수정신에 합당한 것인지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완고한 생각의 틀을 깨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니 자기 힘에 의지해 될 일이 아니다. 삼위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를 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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