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생일>
2008년 4월. 내가 고등학생 때의 일이다. 난생처음 외국 땅을 밟을 기회가 생겼다. 장소는 일본. 인생에서 마지막으로 떠난 학교에서의 수학여행이었다. 무려 일본이라니. 얼떨떨할 만큼 기분이 좋았던 나는 주체할 수 없이 들떠있었으나 도저히 간과할 수 없는 문제가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수학여행비 납입고지서.
그랬다. 그놈의 돈.
학교에서 무슨 행사가 생겼다 하면 바로 뒤따라 오는 것은 낼 돈이 되겠느냔 걱정이었다. 아주 객관적으로, 모든 자기 연민의 시선을 배제하고 건조하게 서술해 보건대, 나는 장녀였고 집안의 정신적 가장이었으며 삶을 영위하기 위한 모든 행정적 업무의 담당자였기 때문에 돈 문제는 제일 먼저 선행되어야 할 고려 대상이었다. 아주 당연하게도.
다행히 나는 어떻게 하면 아무도 상처 받지 않고 일을 진행시킬 수 있을지에 관해서만 고민했다. 아주 어릴 적부터 뿌리 박힌 전략적 마음가짐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지 모른다. 그래도 내심 한 학년에 단 1명 받을 수 있다는 지원금을 받기 위해 교무실에 가 부러 큰 소리로 신청서를 요구했던 내 모습은 어머니가 몰랐으면 했다. 그리고 내겐 이 복합적 이미지들이 잔뜩 뭉쳐진 과거를 유독 선명하게 기억하게 하는 순간이 있다.
2014년 4월 16일. 하루 종일 대학 내 도서관 근로 장학일을 하고 있던 내게 일어난 잊을 수 없는 일이었다. 멀티미디어실 컴퓨터 화면에 저마다 크게 떠오른 글자는 바로 우리 학교 5km 근방에 위치한 익숙한 이름의 학교였다. 그리고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내가 가진 상식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할 것이라 생각했던 비극이 멈출 생각을 모르고 전개되기 시작했다.
내가 6년 전에 탔을지도 모르는 배를 타고, 내가 건너갔을지도 모르는 항로를 따라 찬란한 생명의 불씨들이 바다와 파도에 휩쓸렸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생존자를 찾던 매체들은 이제 단어를 바꾸어 미수습자 명단을 알려왔다. 이 국가적 재난이 가져온 파급에 어느 일각에서는 마치 주식 놀이를 하듯 여론의 동태를 살펴가며 경쟁적 프레임 게임을 시작하기도 했다.
그러나 내 마음에 유독 선명히 다가오는 것은 그러한 행태에 관한 구조적 감상들이 아니었다. 사회에 대한 증오도 분노도 그 무엇도 아닌, 오직 개인에 대한 깊은 통증이라 설명해야 맞을 것이다.
아이들이 부모님에게 보낸 마지막 연락, 해맑은 미소로 동영상을 찍던 얼굴들이 마음에 와 박혔다. 생업이 바빠 자식의 마지막 연락을 받지 못했다던 어느 어머니의 사무침이 꽂힌다. 못 해준 것들만 생각난다는 부모와 마지막 순간까지 대견한 모습을 보이던 아이들의 마음이 하나씩 아프게 다가온다.
못해줘서 미안하다. 그토록 갖고 싶었던 운동화를 끝내 사주지 못했다. 다음 생에는 더 좋은 집에서 태어나거라. 자신을 책망하는 유가족들의 모습에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다. 그 속에서 나는 우리 어머니가 보였다. 감당하기 힘든 재난이 다가왔을 때 가장 먼저 힘을 잃는 것은 가난한 사람이다. 가진 것이 없기 때문에 제일 먼저 자기 자신을 버린다.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공감할 수 없는 영역이다. 커다란 어둠이 다가와 사람의 모든 것을 마비시켜 버린다. 그 어둠에 삼켜진 사람은 자신의 잘못이 아님에도 모든 일 앞에 자신부터 무너뜨리게 된다.
물론, 나는 감히 그들을, 그들의 마음을 절대 짐작할 수 없다. 그러나 괴로워하는 이들 중 그 누구에게도 잘못이 없는 재난 때문에, 왜 그들은 그 누구에게도 잘못이라 말할 수 없는 가난의 원인까지 거슬러 올라가 스스로 멍에를 지고 죄를 만들어 고통의 지옥에 서있어야 하나. 대체 왜.
영화 <생일>은 사고의 순간이 아닌 그 이후의 이야기를 그린다. 그 안에서 그려지는 사람들의 모습이 위와 같다. 그들은 전례 없이 독특하거나 개성 있지 않다. 어떠한 특징이 있어서 이러한 비극을 당한 것이 아니다. 그저 지극히 평범한, 그리고 삶을 치열하게 살던 사람들일 뿐이다. 그래서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 나도 당신도 있다.
이 글을 읽기 힘든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본능적으로 오래 지속되는 비극의 감정을 회피하고 싶어 하는 것이 사람이라는 것, 안다. 나도 그렇다. 그러나.
언급하기 조심스러워 의견 피력이 쉽지 않은 이 사고에 대해 용기를 내어 글을 써보는 이유에 누군가 조금은 공감해주었으면 한다. 비극은 함께 슬퍼하고 기억하며 공감해주어야 온전한 비극으로 기억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야만.
정치적 거사를 위한 도구라던가, 보상금을 받아내기 위한 비장의 무기, 대학을 쉽게 갈 수 있는 치트키, 혹은 지겹게도 시끄럽게 울려대는 달갑잖은 사이렌 등의 수식어 앞에,
빛바랜 헤드라인으로 남지 않을 수 있다.
다가가기 조차 힘든 비극에 대해 당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행동은 비극을 비극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그 비극에 대해 함께 공감하고 슬퍼하고 기억해주는 것이다.
어렵지 않은 일이다.
종이에 도장 하나 찍어주는 일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