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런 프랑스어 부스트
오리악까지 7km..
뭔가 방법이 있지 않을까? 택시는 너무 쉬운 선택인 것 같았다. 호텔 주인아저씨에게 하소연을 했다.
"여기 몽티냑은 대중교통이 아예 없어서 차 없이 온 저는 안에 갇힌 것만 같아요. 올 때도 택시비 20유로를 냈는데 저녁에 재즈 페스티벌 갈 때 또 20유로, 돌아올 때 또 20유로, 낼모레 기차 타러 갈 때 또 20유로... 자전거라도 있나 찾아봤는데 몽티냑엔 자전거 대여소조차 없네요"
"어휴, 그럼 안되죠. 낼모레 역에 갈 때는 내가 데려다줄게요. 근데 아마 관광안내소에서 대여하는 전기자전거가 있을 텐데? 한번 가서 물어봐요."
관광안내소에서 대여하는 자전거의 문제는 자전거 스테이션에 주차하지 않으면 도난의 위험이 있다는 것이었다. 오리악에는 같은 자전거 스테이션이 없을 가능성이 컸다.
'이 콩알만 한 마을에 자전거 체인 파는 데도 없을 테고 자전거를 어떻게 안전하게 보관하지? 아님 정말로 히치하이킹을 해볼까? 일단 가서는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할 수 있지 않을까?'
샤방샤방하게 화장도 하고 깨끗한 옷을 입었다. 파리 어학원에서 쓰던 A4 클립보드에 종이를 끼우고
앞면에
AURIAC du périgord 오리악
뒷면에
MONTIGNAC 몽티냑
사인펜으로 큼지막하게 썼다. 지퍼백에 운동화를 넣어 배낭에 쏙 넣고 호텔을 나섰다. 시간도 많은데 히치하이킹하다 차 안 잡히면 걸어갈 생각으로.
관광안내소에 들어가니 아까는 보이지 않던 전기자전거 한 대가 정면에 떡하니 전시돼 있다. 다행히 자전거 자체에 잠금장치가 있어 오늘 밤 페스티벌의 호박마차로 간택되었다.
자전거 전용 내비게이션으로 경로 검색을 하니 30분쯤 걸린다. 마을의 다리를 건너자마자 오르막 시작. 그런데 이 전기자전거는 충전이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오르막과 내리막뿐 아니라 비포장도로의 연속이었다. 시내 아스팔트 도로용으로 만들어진 자전거가 이런 오프로드도 괜찮은 걸까 살짝 걱정이 되었다.
지방도로 보이는 아스팔트로 진입했다가도 또다시 비포장 샛길로 빠졌다. 뭔가 길이 복잡했고 길을 잃어 돌아가기를 수없이 반복했다. 공연 끝나고 깜깜한 밤엔 여길 어떻게 돌아오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도착을 하긴 하는 걸까.. 그냥 여기서 돌아가 택시 타고 다시 올까.. 하다 보니 다시 아스팔트 도로에 진입, 드디어 전방에 집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팻말이 나타난다.
Auriac du Périgord 오리악
나 정말 도착한 거??
삼십 분이 아니라 한 시간이 걸렸고 나는 마치 뚜르 드 프랑스 완주하고 온 사람처럼 온통 땀범벅이었다. 한 시간 만에 문명세계에 돌아온 듯한 이 느낌에, 마을 입구에 서서 페스티벌 표 검사를 하는 동네 사람들도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저 정말 오리악 도착한 거 맞아요??"
"너는 중국에서부터 자전거 타고 온 거니?"
검표원 중 한 아저씨가 농담을 던진다.
"일단은요 아저씨, 저는 한국사람이고요, "
주변 사람들이 빵 터졌다.
"어 너 한국 사람이면 우리 시스터를 당연히 알겠구나. 한국인이라면 그녀를 모를 리가 없지."
한마디도 농담 아닌 말이 없는 유쾌한 아저씨에게 표 검사를 받고 안으로 들어갔다.
워낙 시골이라 페스티벌이 소규모일 것은 예상했지만 설마... 저거?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이라니... 공들여 여기 온 보람이 있구나! 표 매진될까 봐 전전긍긍했던 한 달 전의 내 모습이 오버랩됐다..
잠금장치 덕에 교통수단으로 간택되었던 자전거는 막상 잠그려고 보니 장치가 고장 나 있었다. 누가 훔쳐갈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빌린 자전거니까 무대 옆 잘 보이는 곳에 얌전히 세워 놓고 작은 무대 앞 첫 줄 정 중앙 자리에 앉았다.
곧 검표원 아저씨의 시스터라는 분이 자리에 찾아와서 인사를 했다. 부산의 대학교에서 이십 년간 프랑스어 선생님을 하셨단다. Anne(안)이라고 했다. 아까의 검표원 아저씨의 이름은 Eric(에릭)이란다. 옆에는 우아한 노모가 서 계셨는데 눈에 호기심과 호감이 가득이었다.
"프랑스어 굉장히 잘하네요. 파리에 한 달 있었던 거 맞아요?"
그러고 보니 프랑스어로 오늘 하루를 살았다. 오전에만 해도 검표원에게 안 틀리고 질문 잘했다며 기뻐했는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몇 분간의 유쾌한 대화 뒤 다음날 점심 초대를 받았다. 내일 전기자전거는 한번 더 쓰게 생겼다.
자크라는 이름의 옆자리 아저씨와 한참 수다를 떠는데 관중석에서 누군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오늘의 첫 번째 뮤지션이 사람들 사이에 앉아 기타를 치며 노래를 하고 있었다. 이름도 존 피터 굿나잇(John Peter Goodnight)이라는 이 가수는 마치 1930년대 사진에서 튀어나온 듯한 복고풍의 미남. 해가 뉘엿뉘엿 지는 시골 마을 작은 광장, 옛날 프랑스 노래.. 꽤 멋진 여름 저녁이라는 생각을 했다.
존피터굿나잇 버전의 옛날 샹송이란 샹송은 다 들었겠다 싶던 즈음, 마을에 어둠이 내렸다. Entracte(중간 휴식)가 끝나고 페스티벌 주최자가 무대에 올라와 오늘의 뮤지션들을 소개한다. 저 사람이 내가 연신 귀찮게 하던 필립이겠구나.
한 시간여 이들의 연주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이런 작은 규모의 연주 영상을 유튜브로 수없이 보며 동경했는데 드디어 내가 그 scène 안에 있었다. 잭키가 발을 구르며 피아노를 치는 것, 음악이 좀 편안해질 때 둘이 눈을 마주치고 웃는 것, 피아노와 트럼펫으로 한 음씩 번갈아 연주하며 장난을 치는 것도 나는 그저 황홀하게 바라봤다. 그리고 공연이 끝났다.
무대 옆에 키가 껑충한 필립이 서 있는 게 보였다. 마지막 순간까지 별별 질문으로 귀찮게 했는데 친절하게 답해주는 그가 없었다면 여기 오지 않았을 수도 있다. 감사 인사를 하러 다가갔다.
"필립? 내가 알레씨아야. 우리 페이스북 메시지로 계속 연락했지"
"오오- 알레씨아. 결국에는 왔구나! 스테판, 얘가 알레씨안데 너네들 공연 때문에 한 달 전부터 연락하기 시작하더니 결국은 왔어. 여기 오리악엔 오로지 너희들 공연 보러 온 거야."
옆에 있던 스테판 벨몬도에게 나를 소개한다. 그 옆의 재키까지 불러들인다. 올해 5월 재키의 밀라노 블루노트 공연이 갑자기 취소돼 못 갔던 일을 언급하고 그래서 내가 자전거 타고 여기까지 왔노라고 허풍을 쳤다.
필립은 여기까지 (자전거까지 타고) 와 줘서 너무 고맙다며, 내일도 올 것인지 묻는다.
"유튜브로 찾아봤는데 블루스 하모니카는 내 취향이 아니라서.."
"하지만 1부 뮤지션들이 엄청나. 너도 꼭 좋아할 거야. 내일은 내가 너를 페스티벌에 초대할게. 입구에서 '필립이 초대했다'라고 해. 내가 말해 놓을게."
이제 축제는 끝나고 집에 돌아갈 때, 구름마저 끼어 달도 없이 아주 깜깜했다. 어느덧 친구가 된 옆자리 자크, 걱정되던지 이런 제안을 한다.
"차 트렁크에 자전거를 싣고 몽티냑까지 데려다줄게. 도로에 조명도 없고 아무래도 너무 위험한 거 같아."
사실 나도 좀 무서워서 얼른 '그래 고마워!' 하고 자크의 차를 찾아 따라나섰다. 그런데 뒷좌석을 눕혀도 무겁고 큰 전기자전거가 다 들어가지 않는다. 무리했다가는 차에 흠집을 낼 것 같았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어쩔 수 없이 자전거를 타고 돌아가야 할거 같아. 뭐 곰이나 강도가 나오는 동네도 아닌데 용기를 좀 내봐야지."
농담이었지만 진심이었다. 만약 위험한 동물이 나올 수 있거나 치안이 불안한 곳이었으면 민폐를 끼쳐서라도 자전거를 트렁크에 싣고 돌아갔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는 평화로운 프랑스 시골. 더 훌륭한 뉴스는, 내가 온 길은 자전거 내비 앱이 '마운틴바이크'용으로 잘못 찾아준 경로였다는 것. 처음부터 지방도로를 타고 왔으면 매우 단순하고 쉬운 길이었다.
이렇게 아무런 조명 없이 깜깜한 공간에 있었던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천천히 페달을 밟았다. 자전거 전조등만으로는 광량이 충분치 않아 전방 2미터 도로 선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 길이 꺾어지는 것을 못 보고 직진하다 추락할 가능성에 대비해 도로 중앙 분리선에 붙어 갔다. 다행히 통행량은 많지 않아 차가 다섯 대 정도 지나간 게 다였다.
처음엔 눈 감고 자전거 타는 것 같은 느낌에 긴장했으나 시간이 갈수록 굉장히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도 없는 도로, 완전히 깜깜한 가운데에 자전거를 타는 것이 꼭 꿈속에서 페달을 밟는 느낌이랄까.
30분쯤 달렸을까. 드디어 전방에 빛이 보이기 시작한다. 몽티냑 시내에서 멀지 않은 로터리다.
내일은 에릭, 안, 그들의 어머니의 집에 점심 초대를 받았다. 드디어 이번 프랑스 한달살이에서 첫 친구들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