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운은 대담한 자들을 돕는다
밀라노에 돌아가는 멀고 즐거운 여정의 시작.
택시비를 아끼겠노라고 이른 아침 이민가방을 끌고 10분이나 걸어 지하철 역에 도착했다. 마지막 남은 한 장의 지하철 표를 상콤하게 넣고 오스테리츠역으로 향했다. 여기서 브리브 라 가이야(Brive La Gaillard)라는 곳까지 가서 기차를 갈아타고 콩다 르 라당(Condat Le Lardin)이라는 곳에서 하차할 예정이다.
숙소가 있는 몽티냑은 그곳에서 10km쯤 떨어졌으나 대중교통이 연결되지 않았다. 히치하이킹을 하거나(이민가방 들고?) 기차에서 누군가를 붙잡아 차를 얻어 타거나(역시나 이민가방..) 이도 저도 안 되면 사설 택시라도 불러 타고 가야 한다. 공연이 열리는 오리악이라는 동네는 몽티냑에서도 또다시 7km 떨어진, 재즈 페스티벌이 아니었으면 평생 나와 스칠 인연이 별로 없을만한 시골 마을이었다.
컴파트먼트형 기차를 선택한 이유는 나름 같은 '방' 안에서 마주 보고 여행할 다른 승객과 말이라도 나눌 기회가 생기지 않을까 해서였다. 파리에서 한 달간 머물며 깨달은 점은 내가 타인에게 쉽게 다가서지 않고 생각보다 새로운 친구를 잘 사귀지 못한다는 사실이었다. 새 친구를 사귀는 일이 흔치 않던 최근 몇 년, 이미 여기 오기 전부터 막연히 가지고 있던 느낌이기도 하다. 나 스스로가 점점 닫힌 사람, 부족한 게 없고 줄 것도 없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마음 한 구석에 있었다. 아쉬울 게 많고 타인의 도움이 필요할 파리 한 달 살이가 이를 반증하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지만 마지막까지 '친구' 한 명을 제대로 만들지 못하고 끝나 버렸다. 일상으로 돌아가기 전 마지막 사흘, 이 여행에서 눈과 귀를 열고 주위에 관심을 가지면 친구가 생기지 않을까?
맞은편엔 다운증후군을 앓는 어린아이와 아버지가 앉아 있었다. 아이 아버지가 내 무거운 이민가방을 올려준 이후로 긴 여행 내내 말이 없었다. 오랜만에 타 보는 컴파트먼트 칸의 풍경도 옛날과는 다르다. 다들 스마트폰을 보느라 눈을 마주칠 기회조차 없다. 어린이가 있으면 먼저 친구가 된 다음 부모와 말을 섞게 되는 경우가 많지만, 맞은편 아이는 너무 어리기도 하고 장애가 있어 계속 눈길을 주고 있기도 편치 않았다.
비록 기차에서 말 섞기에는 실패했지만 멋지게 실전 프랑스어를 구사할 기회가 있었다. 이틀 뒤의 기차표가 이상해 검표를 마치고 나가려는 검표원을 불러 세웠다.
"J'ai un autre voyage après demain. le billet me semble différent. je dois l'imprimer?" (낼모레 탈 기차표가 다르게 생겼는데 프린트해야 하나요?)
평소엔 프랑스어으로 질문을 하고도 막상 상대가 답을 하면 패닉에 빠지곤 했는데 이번엔 정신 차리고 알아듣기까지 클리어. 어느덧 내가 영어를 쓰지 않고 문제 해결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고 기뻤다.
브리브 라 가이야에 하차해 더 작은 기차로 갈아탔다. 고만고만한 동네 마을들을 도는 기차인 것 같다. 공연 보러 가는 잭키 테라송(Jacky Terrasson)의 성과 같은 Terrasson이라는 마을도 중간에 지나쳤다. 혹시 이 동네 출신인가?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별 특징 없는 그냥 '시골'이다.
하차. 내 맞은편에 앉았던 남자애 짐이 많다 싶더니 기차역 플랫폼에서 기다리고 있던 엄마와 뜨거운 포옹을 한다. 방학을 맞아 고향으로 돌아온 유학생이겠지. 그런데 그 와중에도 나는 '쟤가 여기서 내릴 줄 알았으면 일찌감치 말 섞었다가 차 얻어 타고 가는 건데' 이런 생각이나 하고 있었다.
자- 이제부턴 어떻게 한담?
최초로 프랑스어 전화 통화를 시도해 택시를 불러야 하나? 한가한 역사 안에 두 사람이 얘기하고 있었다. 그중 하나에게 "저 여기 택시..."까지 하자 "응 내가 택시기사야"라는 답이 돌아온다.
이 미지의 구간을 어떻게 통과할지 그간 걱정이 많았는데 이렇게 쉽게 일이 풀리다니 믿을 수 없었다. 이탈리아어에 이런 말이 있다.
'La fortuna aiuta gli audaci.' (행운은 대담한 자들을 돕는다.)
경로가 완벽하게 나오지 않았어도 일단 오길 잘한 것이었다.
몽티냑은 작은 마을이었다. 중심가가 걸어 10분 만에 통과할 사이즈였으나 근방에서는 그나마 가장 큰 '대장' 격의 마을이란다. 마을을 가로지르는 아름다운 강이 있고, 관광안내소와 그 근처 몇몇 식당 등을 제외하면 돌집들이 늘어선 좁은 길 몇 개가 동네 끝이다.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숙소를 잡은 몽티냑에서 오늘 저녁 재즈 페스티벌이 열리는 오리악까지 운행하는 줄 알고 있던 버스가.... 없다.
"엥? 그럴 리가요, 내가 분명 구글맵에서 봤는데요."
"버스요? 그거 애들 학교 때문에 일주일에 두 번인가 밖에 운행 안 할 텐데."
관광안내소 직원의 말에 다시 구글맵을 보니 버스정보 옆에 괄호치고 수요일이라고 쓰여 있다. 나는 왜 또 이걸 못 본 것인가!
두 마을 사이는 7킬로가 좀 넘는다. 걸어가기엔 좀 먼 거리. 번개같이 스치는 생각에 구글맵에서 'vélo'(자전거)로 검색하니 중심가에서 좀 떨어진 곳에 뭔가 가게 이름이 하나 나온다.
"그래, 자전거로 가는 거야!"
내리꽂는 땡볕에 한참을 걸어 도착했건만 구글맵에 나온 자전거 가게에는 다른 간판이 걸려 있었다. 혹시 자전거 가게가 근처에 있는지 물었다.
"자전거는 모르겠지만 오토바이랑 트랙터도 있는 데는 있어."
혹시 이사 갔나? 일말의 희망을 가지고 찾은 가게는 오토바이/트랙터 판매처였다. 가게 주인은, 몽티냑엔 이제 자전거 가게가 없다며 옆 도시 사를라(Sarlat)에 가면 된단다.
"별로 안 멀어요. 버스도 있고."
친절하게 포스트잇에 적어 준 상호로 검색을 하니 걸어서 35분, 대중교통으로 4시간 27분..
몽티냑에 갇힌 것 같은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