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6.12~07.31
큐레이터 일지(2023.06.12~07.31)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어느덧 한 해의 절반이 지났다’는 표현은 식상하지만
사실이고 다소 묘합니다. 이 표현 또한 진부하지만
‘시간이 참 빠릅니다.’ 특히 요새 더욱 실감나지 않던가요.
그러니 지난 여섯 달이 어떠하였든, 그 시간들을
후회하거나 아쉬워하기보다는 이제 남은 여섯 달의
다가오는 하루하루에서 올해의 다짐을 실현하고 성취하길
바라겠습니다.
시작하는 7월과 주말에는 스틸북스에서 책과 음악으로
한숨 고르고 의지를 다지는 휴식을 만끽하시길!
2023.06.30
스틸북스에서 일하는 즐거움 중 하나는 새로운 세계를 만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책장을 펼치면, 턴테이블을 켜면 미지의 세계가 감각적으로 다가옵니다.
몰랐던, 잊혔던 세계는 비단 물성에만 해당되지 않습니다. 다르게 말해, 스틸북스의
고객이 곧 새로운 세계입니다. 제품에 대한 안내를 도와드리다 보면 고객님과
대화를 나누게 되고, 그때마다 ‘이런 세계가 있구나’ 깨닫습니다. 지난 번에는
매우 사랑스럽고 특별한 세계를 만났습니다. 윤슬처럼 반짝이는 눈빛으로 스틸북스를
요리조리 구경하던 꼬마 고객께서 턴테이블로 LP를 듣고 싶어 하더군요.
음악이 흘러나오자 꼬마 고객께선 꺄르르 웃고는 다른 LP를 들고 와서 턴테이블로
직접 켰습니다. 우리에겐 익숙해진 턴테이블 켜는 일이 아이에겐 몹시 특별했고
신기했나 봅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음반을 알려주고는 “감사합니다”라고 예쁘게
인사하고 떠난 꼬마 고객님 덕분에 스틸북스가 새로워 보였습니다. 무엇보다도
호기심과 웃음으로 탐구하는 꼬마 고객님의 세계로 내딛고 나니, 저도 매사
궁금해하기를 포기하지 않고 싶어졌습니다. 지겹고 지치는 일이 있더라도
놀랍고 새로운 일은 언제나 우리의 태도에 있음을 여러분과 이리 나눕니다.
2023.07.03
온전한 시간을 누릴 수 있는 주말입니다. 이번 주말은 무엇을 계획하셨나요?
아직 계획이 없다면, 제가 질문 하나 할게요: “스틸북스 내 서적과 음반,
음향 기기, 그리고 작품 사이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정답은 없습니다.
자유롭게 궁리해보아요! 여러분이 생각하는 동안, 제 답을 들려드릴게요.
여러 공통점이 있겠지만, 저는 아무래도 ‘집적체(集積體)’라는 특징을
최적의 공통점으로 뽑고 싶어요. 지금 우리가 읽고 듣는 물건들은 해당 물건이 창조 혹은
발명된 이래 발전한 기술의 절정과 각자의 개성 및 신념으로 제작되었습니다.
인쇄 기술이 구현한 다양한 서적의 형태와 공학 기술이 체현한 소리의 높낮이가
느껴지시나요? 더불어, 물건에 담긴 글과 음악이라는 작품은 셰익스피어와 바흐라는
뿌리의 줄기고 열매겠죠. 결정적으로, 이 물건과 작품이 탄생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축적되어야 했을까요? 어느 것마다 지식과 마음의 모음일 수밖에 없습니다.
스틸북스의 서적과 음반, 기기 그리고 작품은 누군가의 열정과 성실의 집적체입니다.
이 물건들과 작품들로 느껴지는 우리의 감정은 그 집적체의 ‘표출(表出)’이 됩니다.
여기, 스틸북스에서 직접 및 표출에 대한 영감을 잔뜩 얻고 이번 주말, 주중에 아껴둔
에너지와 창의력을 마음껏 폭발시키는 건 어떨까요? 혹시 아나요? 여러분 중
누군가의 발명품이자 창작품이 훗날 스틸북스에 들어서게 될지? 그런 의미에서
큐레이터도 이번 주말에는 그간 밀린 작품을 좀 끝내야 될 텐데요.
2023.07.07
스틸북스를 지키고 있으면 무언가 선명해집니다. 바로 망설임입니다.
사실 스틸북스의 물건들은 첫눈에 사로잡히긴 쉬워도 선뜻 결정하긴
어렵긴 하죠. 그래서 모든 물건마다 고객들의 망설임과 그로써 두고 간
아쉬움이 묻어 있고, 그게 제 눈에 밟힙니다. 진하게 남은 주저에
마음이 쓰이는 건 저 또한 반드시 결정을 내려야 하는 고민에 사로잡혔기
때문입니다. 이 고민의 고통이 몹시 괴롭습니다. 주저하지 않고 서슴없이
결정할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요?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고민의 깊이와 시간이
고민의 대상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증명할 것입니다. 좌고우면하는 연유는
대상에 사랑을 쏟기에 적합한 환경과 시간을 헤아리기 위함입니다.
그러니 스틸북스 큐레이터는 책을 고르고 스피커를 선별하는 여러분의 망설임을
매우 소중히 여깁니다. 그리고 신중한 고민 끝에 내린 시원한 결정을
응원하고 축하합니다. 저는 결정 이전의 고민이 당신을 더욱 성장시켰으리라
확신합니다. 그렇게 가까이 다가가며, 마음껏 사랑하세요. 큐레이터는 망설임이
남긴 마음들을 보듬고 있겠습니다. 그렇게, 저도 주저함을 끝마치게 되겠죠.
2023.07.11
비가 많이 올수록 심란해집니다. 따라서 혼란한 날씨 속에서도
스틸북스를 기꺼이 방문한 고객 여러분께 고맙습니다.
요즘 문화 작품의 시류는 ‘지나서 온’ 과거를 새롭게 해석하는 것입니다.
특히 과거에는 당연시했지만 21세기에 들어서 의문이 드는 특징들을
시대의 변화에 맞춰 변화시키고, 현재의 시점에서 과거를 포용하고
전진하는 작품을 접하면 나 자신을 다시 보게 된달까요.
늘 되돌아보고 미련을 갖거나 후회하고 반성할 줄만 알았지,
받아들일 과거는 받아들이고, 발전 가능할 과거는 발전시킬 엄두를
왜 못 냈을까요? 그리고 날 망가트린 시간은 없음을 왜 생각해내지
못 했을까요?
여러분이 어렵게 당도한 스틸북스가 여러분의 발걸음과 기분을 상쾌하게
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특별 선별한 책으로 고민을 날리고, VR기기로 여행을
잠시 떠나고, 고성능 스피커가 튀기는 음악에 몸을 맡겨 보세요.
그렇게, 가뿐하고 안전하게 귀가하길 바랍니다.
2023.07.14
스틸북스 큐레이터에게도 여러모로 버티기 힘든 사건과 사정, 감정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누군가 옆에서 말을 걸었습니다.
“지금 흘러나오는 노래가 뭐에요?” “재미있는 공간이네요.”
“노래 진짜 좋아요!” “우와, 신기해요.”
“직업 만족도가 높으시겠어요.” “마음에 들어요.”
“공간이 정말 예뻐요.” “감각적이에요.”
“안녕하세요.” 그리고 “고맙습니다.” “자주 놀러올게요.”
그럴 때마다 같이 남기는 고객님의 미소에 복합적이지만
벅찬 기쁨을 숨길 수 없었습니다. 한편, 저에게 미소와 기쁨을 준
고객님도 그때 그런 때였는지, 스틸북스가 그럴 때마다 찾는 곳이었는지
자못 궁금해집니다. 그러니 그럴 때마다, 그럴 때마다, 그럴 때마다,
그럴 때마다, 그럴 때마다, 그럴 때마다 스틸북스로 오세요. 환영해요.
2023.07.17
큐레이터도 스틸북스에 발을 들였을 때 여러분과 비슷한 기분이었습니다.
이곳은 또 무얼까? 익숙하지 않은 곳은 사람을 늘 어리둥절한 앨리스처럼
만들 듯, 저도 처음엔 몹시도 어리둥절했어요. “이곳은 어떤 공간인가요?”
질문하는 분도 종종 계셨지요. 그래서 저는 당장 열고 싶어 못 견딜 책으로
여러분을 안내하고, 듣기만 해도 곧장 들썩일 수 있는 음악으로 여러분을 인도했습니다.
이슬떨이로서 바삐, 또 걱정스레 행보하다 목로(沐露)함에 결국 팍삭하고 마는데,
속을 꽤 태웠습니다. 혹시 길을 잃지는 않으셨을까? 제 걱정과 반대로,
여러분은 수직적인 장벽 혹은 수풀을 기꺼이 젖히고 각자 찾는 보물을 쟁취하더군요.
때로는 직접 들여다보는 수고를 감내하고, 때로는 큐레이터에게 물어가며
행복과 관점의 방향을 손수 결정하는 여러분의 모습에 이 노정에서 예상한 적 없는
감탄과 기쁨을 경험했습니다. 꼭 큐레이터 때문이 아니더라도, 함께한 매니저분들의 노고를 더해,
여러분, 스틸북스라는 신세계에서, 스틸북스라는 넓은 대지에서 행복했나요?
여러분의 대답 전부 감사히 들리는 것 같은 가운데, 이 말씀은 꼭 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이 스틸북스에서 가장 행복했습니다.
저도 이제 다시, 여러분처럼 여행자가 됩니다. 이 인연의 노중(路中)에서
다시 만나요. 저는, 제 직업인 글을 하는 작가를 너무나 많이 사랑합니다.
2023.07.24 또는 31
제목으로 쓴 노래와 열고 닫을 때 들은 노래가 궁금하다면
공간 전체를 보고 싶다면
https://blog.naver.com/awholenewword/223172149019